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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sun Cho Jun 01. 2021

이 문을 열고 나가면 뭐가 있을까

-벼넥시트, 가능할까요?

선후배, 동기들과의 대화는 항상 변호사 시장의 동향에서 시작해서 

세금, 부동산으로 이어지다가 깔대기처럼 벼넥시트로 이어진다. 


1906년 1호 변호사가 탄생한 이후 변호사 3만명 시대에 이른 지금은

발에 채이는 것이 변호사고, 인터넷 초록 화면창을 검색해보기만 해도 만나기 쉬운 것이 변호사이다.


변호사 중개 플랫폼의 출현으로 변호사와 상담을 하는 것도 사건 의뢰를 하는 것도

매우 쉬워진 요즈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변호사들은 벼넥시트를 이야기한다.


대한변협신문 만화


주) 벼넥시트: '변'+'Exit', 한 마디로 변호사업계를 탈출한다는 의미, Brexit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측됨


1. 벼넥시트, 왜 하시게요?


변호사들이 본업을 접으려는 이유는 다양하다.


여성 변호사들의 경우는 출산을 하는 경우 아무래도 육아에 대한 부담이 생기다보니 

변호사로서의 업무를 내려놓고 육아에 집중하는 경우가 있다.


겨우 3개월의 출산휴가밖에 쓰지 못했지만 3개월간 회사를 비우는 것도 눈치가 많이 보였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보통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쯤 다시 본업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의 완전한 벼넥시트라고 보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다.


요즈음 들어서 변호사들이 일시적 휴업이 아닌, 완전한 벼넥시트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일단 변호사 시장이 포화되어 변호사들이 나누어 먹을 파이가 너무 줄어들었다는 점,

변호사는 서비스를 파는 직역인데 이와 같은 서비스 판매 시스템으로는 얻을 수 있는 소득에 한계가 보인다는 점이 가장 클 것이다.


그리고 정보통신기술을 비롯한 현대의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데 변호사들이 제도와 규제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다보니 변화를 빠르게 읽어낼 수 있고, 그러다보니 규제의 울타리 안에서 틈새시장을 찾아서 새로운 가치 창출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2. 벼넥시트, 그러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1) 건물 임대


벼넥시트의 사실 가장 클래식한 방법은 부동산임대가 아닐까 싶다. 

변호사들은 보통 방 1개가 있으면 내일 당장이라도 개업이 가능하다. 

여기에 직원을 따로 둘 수도 있고, 다른 변호사들과 직원을 공유할 수도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협회 변호사 초빙 게시판. 공간을 공유할 변호사를 찾는 공고가 가득하다


그렇다보니 변호사 중에는 초기비용을 좀 들여서 변호사사무실을 잘 꾸며놓고 자신이 사용하고 남는 공간을 개업을 희망하는 변호사들에게 빌려주고 비용을 받는 경우도 있다. 본인이 공간을 임대했다면 전대차가 될 것이고, 공간을 소유하고 있다면 임대가 될 것이다.


공간임대만 잘 된다면 본인은 변호사로서의 본업을 하지 않고도 상당한 수익창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공간임대를 통한 벼넥시트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실제로 선배 변호사들이 꽤 해오던 방식이다. 


2) 강의하는 변호사 


전문서비스 제공자로서의 업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도전해볼 수 있는 분야로 전문강사를 고민하는 변호사들은 예전부터 있어왔다.

나 역시 약 15년 전에 신림동 고시촌에서 다양한 수험강의를 들었고, 그 당시에도 변호사 자격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변호사 업무를 하면서 수험강의를 하는 여러 변호사 강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전형적인 변호사 업무가 송무 중심으로 진행되다보니 소송법 관련 과목에 있어서는 변호사 전문강사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실제 사례 이야기도 함께 들을 수 있으니 동기부여 및 자극 면에서 수험생들에게 어필하는 점도 있었다.


내가 수험을 마친 후 법학전문대학원, 이른바 로스쿨이 생기고 온라인 변호사시험 강의사이트가 생기게 되면서 더욱 많은 변호사들이 변호사시험 대비 수험과목 강사로 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외에도 각종 대학에 법학전문대학원이 생기고, 실무 위주의 강의가 필요해지면서 많은 변호사들이 대학교에서 강사로 일하거나, 정교수로 임명되는 경우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3) 상품판매에 뛰어든 변호사 


예전에 우리 사무실에서 잠시 함께 하셨던 변호사님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변호사님은 법학전문대학원이 생기기 전에는 보험상품 판매를 오래 하시다가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해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게 된 케이스였는데, 변호사의 수익창출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할 수 있었다.


보통 개업시장에서 변호사들이 수익 창출을 하는 방법은 조금 정형화되어 있다. 소송을 진행하는 업무를 수임해서 의뢰인을 대리하여 송무를 진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송무의 문제점은 단발성이고, 해당 사건이 다음 사건의 수임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이혼사건을 많이 진행하는 동료변호사에게 듣기로는 특히 이혼사건과 같은 비밀리에 진행되는 사건들은 내가 변호사로서 의뢰인에게 최상의 결과를 선물하더라도 그 의뢰인으로부터 사건 소개가 진행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생각해보면, 잘 이혼을 마쳤다 하더라도 이혼을 고민하는 주변 지인들에게 

"내가 OOO변호사 통해서 이혼했는데 너무 좋았다"라는 취지의 추천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다보니 나를 비롯한 내 주변의 개업한 동료들은 단발성 수입이 아닌 고정적, 안정적인 비용창출을 꿈꾼다. 변호사와 같은 서비스 직종은 지금 당장 꽤 좋은 수익을 내고 있다 하더라도 내가 건강이 악화되는 순간 수입원이 하루아침에 끊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중장년에 다다른 주변 변호사들의 고민은 더욱 깊다. 특히 주변에서 들려오는 "OOO 변호사가 뇌출혈로 쓰러졌다"라는 이야기라던가 "OOO판사 과로사로 숨져" 등의 뉴스기사를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런 면에서 서비스가 아닌, 상품 판매의 꿈꾸는 변호사들이 늘어가는 것 같다. 

서비스는 내가 건강하고 온전해야 제공이 가능하지만 상품은 개발해서 상용화를 시키고 나면 나의 건강과는 무관하게 수익창출이 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많은 시간을 들여서 사건 수임이 아닌, 상품개발에 열중하는 변호사들이 늘어났고 최근에는 용감했던 그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는 기쁜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동료변호사와 함께 참여해서 참가기념품만 획득하고 돌아온 처참한 실패의 기억


2년전 나는 변호사 AI 대회에 참석했다. 

사법연수원 동기 중 뇌과학을 전공한 변호사님이 수년간 개발해서 완성한 변호사 인공지능과 실제 변호사들의 업무수행능력을 비교해보는 시험적인 대회였는데, 부끄럽게도 나를 비롯한 인간변호사팀이 모두 변호사 AI에게 처참하게 패배했다. 


물론 이 대회는 정형적인 틀을 가지고 있는 근로계약서의 분석 대회였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탑재된 프로그램이 인간보다 월등하게 빠를 수밖에 없었을 수 있다. 그리고 당장은 변호사 AI가 인간 변호사의 모든 업무를 대체할 것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본인의 변호사로서의 업무경험과 뇌과학자로서의 장점을 모두 활용해서 이런 프로그램을 개발했다는 점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컴퓨터 프로그램 외에도 건강한 식문화를 만들겠다는 모토로 그래놀라를 구워서 소위 대박을 낸 변호사도 있고, 아기화장품을 개발하는 변호사도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그 변호사들이 본업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의 성공을 거둔다면 주변에서 동요하는 변호사들이 늘어날 것 같다.

 

4) 자기계발 동기부여 멘토 


사람들이 변호사들에 대해서 가지는 생각 중 하나는 "그 많은 공부량을 어떻게 소화했으며 자기관리는 어떻게 했을까?"일 것이다. 나 역시 수험생활 내내 마음이 흔들리고 공부가 하기 싫으면 '고시계'라는 수험잡지에 나와 있는 합격자들의 수험기를 읽었고, 이 사람들이 부족한 시간관리를 어떻게 했는지, 공부가 하기 싫을 때는 어떻게 자신을 붙잡았는지를 읽어보고 따라해보려고 노력했다.


시간이 흘러 최근에는 유튜브라는 매우 쉬운 동영상 공유 매체를 통해서 변호사들이 자신의 수험생활, 공부방법, 자기관리비법 등을 대중과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재미있게도 실제로 변호사시험이 아닌 다른 유사직역의 수험(노무사, 세무사, 회계사, 공무원 시험,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변호사들의 자기관리비법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사법시험이 현존하는 시험 중에서 가장 단순암기량이 많은 시험이다보니 이 시험에 통과한 사람들에 대한 자기관리비법이 본인이 준비하는 수험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성공한 변호사 유튜버들의 컨텐츠는 공부법, 자기관리방법이 많다


실제로 내가 근무하고 있는 사무실에 함께 적을 두고 있는 변호사 중 한 분은 법무관 시절부터 자기관리 유튜브를 준비했다고 한다. 송무로 바쁜 와중에도 정해진 시간에 라이브방송을 하고 자기관리비법, 수험스킬 등을 공유했다. 다른 직역의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멘탈관리비법을 공유하기도 하고, 객관식 문제나 주관식 문제의 시험에 대비하는 실용적인 접근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소위 그 채널은 대박이 나서 그 변호사님은 현재 송무에는 종사하지 않고 계시다.


그 외에도 최근에 사람들은 '미라클모닝'에 푹 빠져 있는 것 같다. 한 미국변호사가 회사를 다니면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자신의 자기계발과 본인의 공부를 위해서 시간을 보낸다는 유튜브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이 변호사가 본인의 경험을 공유하는 책을 내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변호사의 새벽기상에 동참하고 있다. 


결국에는 하나의 혹독한 시험을 통과해서 자격을 취득한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갈고 닦아 도야하는지를 보면서 본인 역시 자신을 반성하거나 가다듬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변호사 중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자기계발, 동기부여 멘토로 활동하는 분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3. 나는 벼넥시트를 꿈꾸는가


1) 어떻게 공부해서 딴 자격인데, 라는 본전의식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법과대학 4년, 수험기간 5년 총 10여년을 하나의 자격시험 준비에 바쳐서 29살에 시험에 합격

30살에 사법연수원에 들어갔다. 

보통 사법시험 불합격을 "1년의 징역형"이라고 표현한다.

1년에 1번 기회가 주어지는 시험에서 불합격하면 같은 과목을 1년 더 공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 주변 사람들의 시간은 흐르지만 시험을 준비하는 나의 시간은 합격을 하지 않는 이상 흐르지 않는다.


더구나 대부분의 자격시험이 그렇겠지만 자격시험과목은 합격하지 않는 이상 실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면 무조건 빨리 합격해서 이 지긋지긋한 고시실, 신림동 독서실을 탈출하는 것 외에는 차선책이 없다. 

시험에 합격하기 전 내 소원은 언제나 시험합격이었지만, 막상 합격하고 나니 딱히 빌 소원도 없었다


실제로 사법시험에 합격했을 때부터 나의 시간은 흐르기 시작했다.

시험공부를 할 때의 나의 삶은 고시실, 신림동, 학원, 집을 오가는 흑백영화였는데

2009년 10월 신림9동에서 합격사실을 확인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부터 칼라영화로 바뀐 것 같은 느낌이다.

 

시험에 합격하고 은행에 가서 첫 계좌를 만들 때 비밀번호 누르는 단말기를 처음 봐서 당황한 나에게 

은행 직원이 "어디서 살다 오신거에요?"라고 픽 웃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할 만큼

나는 20대를 전부 하나의 자격증을 얻기 위해서 공부를 했고, 30살부터 비로소 남들보다 조금은 뒤쳐진 내 인생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변호사들은 전직을 꿈꾸다가도 내가 이 시험에 바친 노력과 시간을 생각하게 되고,

소위 '본전의식'이 업계를 떠나려는 내 발목을 잡아서 계속해서 이 업계에 남아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바로 나였다. 


하지만 변호사 일을 시작하고 내가 모르던 세상을 알게 되고, 신림동에 처박혀 있느라 보지 못했던 사회의 변화들을 느끼게 되다보니 내가 알던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 이제야 다가왔다.

그리고 더불어 30대에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다보니 체력도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송무를 하다보니 사건에 대한 스트레스가 예상보다 너무 심해서

자다가도 놀라서 깨고, 주말에 아이랑 놀다가도 내 사건이 잘못되면 어쩌나 생각에 울기도 했다.


송무를 하던 자문을 하던 내 의뢰인의 고민을 내가 나눠지다보니 일과 삶이 분리가 되지 않았다.

그러면, 혹시 어느 단계에서 일과 삶이 완전히 분리되는 그런 다른 분야가 있지는 않을까?

그런 분야가 있다면 내가 굳이 이렇게 마음이 많이 힘든 일을 하며 밤잠 설치지는 않아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고

그렇게 내 본전의식이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2) 저 벼넥시트 좀 하고 오겠습니다


말로만 벼넥시트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자조어린 농담이나 주고받다가 본격적으로 벼넥시트 생각이 들게 된 것은 최근이었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반까지 업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서 거의 울분이 하늘을 찌를 때쯤

지인이 페이스북에 벼넥시트에 관한 글을 지속적으로 올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우연히 지인을 만난 자리에서 벼넥시트를 하는 방법에 대해서 물어보았더니 그 지인이 제시한 방법은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상품은 유형의 물건이 아니라 이미 대기업에서 설계를 끝내서 출시한 무형의 물건인 이른바 보험상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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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세무사들이 자신의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보험상품 판매에 뛰어든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어본 것도 같았는데, 그런 차원에서라면 법률전문가인 변호사가 의뢰인들에게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것도 꽤나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나 역시 상속과 절세를 고민하는 의뢰인들을 많이 만나는데, 이에 대한 해결책이 보험이 될 수 있다면 이를 내가 영업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도 같았다.


하지만 변호사와 보험설계사의 차이점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변호사는 의뢰인들이 나를 찾아서 오는 반면, 보험설계를 하는 경우에는 내가 구매자를 찾아서 설득을 해야 하는 점이 달랐다.

그런데 내가 보험상품을 판매할 만한 적극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가? 라고 하면

그건 아니라는 결론이 들었다.


나는 의뢰인들이 전화를 할 때도 가끔은 많이 두렵고, 

누가 사건 상담을 한다고 사무실에 온다고 해도 한편으로는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오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전형적인 소심한 인간이다. 


결국은 지난 세월동안 나를 키워오면서 깨달은 나의 성격과 내가 고민하는 새로운 직업을 가지고 고민을 해보다보니 이 쪽은 내가 가서 잘 할 수 있는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이 분야를 권유해주신 그 지인은 나와는 다른 적극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몇 년 후에는 완전한 벼넥시트를 하지 않을까 예상된다.


4. 앞으로의 법률시장은 아무도 모른다


2000년 초반 청운의 꿈을 품고 고시실에 처박혀 있던 20대의 나에게 

미래에서 온 누군가가

"니가 살 미래에는 변호사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변호사 AI가 생길거야

변호사 월급은 예전보다 동결 혹은 감축일 거고

니가 아무리 시험에 붙어도 지금 회사다니고 있는 친구들이 승진해서 버는 연봉이랑 큰 차이 없을걸?"

이라고 말해줬다면 어떨까?


내가 이 직업을 꿈꾸던 20대에 그렸던 미래와 현재 일하고 있는 30대 후반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

업무환경은 많이 팍팍해졌고, 경쟁은 치열해졌으며, 폭발적으로 늘어난 변호사들이 고만고만한 법률시장의 파이를 아귀다툼을 해서 나누어 가져야 한다.


이와 같은 상황은 5년, 10년 후에는 더욱 많이 바뀌어 있을지 모른다.

본전의식으로 현재에 안주해 있기에는 앞으로 닥칠 미래의 전망이 그리 밝지 않기 때문에

나나, 동료변호사들은 앞으로도 만나면 후렴구처럼 벼넥시트를 이야기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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