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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성 Feb 09. 2023

너는 좋겠다 잘하는 게 많아서

정리하고 집중하는 힘에 대하여

일과 생활 사이의 경계가 애초에 또렷한 편은 아니었다. 기자의 일상이라는 것이 그렇다. 사건이 터지면 움직여야 한다. 밤 늦게까지 '뻗치기'를 해야 하는 일도 생겼다. <GQ>에서 일할 때부터의 일상은 마감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한 달중 1주는 기회 2주는 취재, 나머지 1주는 마감이라고 하면 비슷할까? 사실상 기획은 눈 뜨고 있는 모든 순간에 하는 거지만... 그러니 역시 눈 뜨고 있는 모든 순간에 일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 셈이다. 


창업 이후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혼자 결정할 수 있다는 점,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비합리나 정치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장점 정도가 있었지만 일하는 시간은 분명히 늘었다. 당연하잖아? 월급을 주는 주체가 사라졌다. 내가 벌어서 내가 받아야 한다. 내가 벌어서 직원과 동업자와 협업하는 프리랜서에게 지급해야 하는 돈이 생겼다. 이게 꽤나 살 떨리는 일이다. 


나의 아주 미미한 자부심이랄까. 지금까지 월급 지급을 밀린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직장에서 받았던 수익은 아직 회복하지 못했다. 내 월급은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시점 정도로 줄여둔 지 몇 달 됐다. 그런 채 올해의 목표를 세우고 스프린트를 위한 환경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직장에서 받던 수입과 소비 규모가 이미 잡혀 있는 상태에서의 독립이었기 때문에, 창업 이후에도 여러가지 가욋일을 했다. 그게 나의 영향력이자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기업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MC로 활동하거나 각종 외고를 썼다. 강연을 하거나 세 번째 책을 계약하기도 했다. SBS 라디오 <김선재의 책하고 놀자>에 한 달에 두 번 출연하고 있다. 투자사는 일단 하고자 하는 일에 집중하시는 게 어떻겠느냐는 조언을 했다. 나는 이 모든 일이 결국 지금의 사업에 도움을 주는 일이라고 답했다. 그렇게 몇 년을 살아 남았다. 


최근에는 생각이 좀 바뀌었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도 대견한 일이지만, 이렇게 계속 '살아남은' 채로 사업을 계속 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유튜브 채널 중심으로 시작한다고 말했지만 유튜브 채널만 하고 있다. 그마저도 단 한 번의 비상 없이, 정말이지 꾸준한 상승세로 구독자 2만6천여 명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2023년  2월 현재) 아주 기본적인 수준의 비즈니스가 가능한 규모. 첫 번째 문턱은 넘은 느낌이 있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속도라면 문제가 있다. 


제 체널입니다 :-) 자동차에 집중한다는 사실이, 자동차만 다룬다는 이야기만은 아닐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2022년 하반기부터 꾸준히 일을 정리해온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이런 속도를 앞으로도 유지할 수는 없기 떄문이었다. 계획은 행동으로 옮기기 전까지는 그저 말 뿐이기 때문이었다. 했던 다짐을 또하고, 통찰한 것을 다시 통찰 하면서 이론만 단단해진 사업가에게 매력이란 없을 것이었다. 나와 회사는 이제 모서리에 서있다. 잘 하고 있다는 말을 신뢰한다. 평온해보인다는 말의 이면에 의도가 없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내 안에 있던 절박함의 결을 조금 더 바라보려고 한다. 더 절박해져서, 조금 더 집중하면서,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전략을 짜고, 어제보다 심플하게 행동하는 하루를 설계하려고.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다는 말은 분명한 장점이자 매력일 것이다. 자동차를 다루는 사람이 옷과 책와 IT 역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십수 년의 기자/에디터 생활이 몸에 베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인생은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이 아닌 것이다. 


내일은 몇 개의 약속을 정할 생각이다. 고마운 사람과 보고 싶은 사람, 만나야 하는 사람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시간을 배열해야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상당부분을 포기하고 해야하는 일의 전부를 취할 수 있는 마인드 셋을 개발해야 한다. 나 자신이 어플리케이션이라면, 80퍼센트의 코드는 완성된 것 같다. 나머지 20퍼센트를 마저 쓰고, 실행시킨 후에 버그를 잡아야지. 


분명히 배워가고 있다. 창업가에게 필요한 정리와 집중의 매력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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