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접기는 손에서 손으로 전승되어온 놀이이기에, 그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일본에서는 이미 19세기에 조형 놀이로서 유행했고, 20세기에 들어와 오늘날과 같은 종이접기가 되었다. 일본인들은 이 종이접기를 하나의 문화로까지 승화시켰다. 명칭도 일본어 ‘오리가미(折紙)’로 굳어져 이는 전 세계에 통용된다. 종이접기 용어와 방식도 일본이 국제 표준이다. 미국과 유럽 등지의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는 오리가미란 이름으로 일본식 종이접기를 가르치고 있다. 또 정사각형으로 재단된 몇 색깔의 색종이를 겹쳐서 묶는 다발을 역시 ‘오리가미’라는 이름으로 사고팔았기 때문에 그 용지도 ‘오리가미’라고 일컫는다.
일본 항공사에서 일하며 도쿄 구석구석을 돌아다녀 본 나는 이 오리가미의 다양한 쓰임새를 보아왔다. 식당에서는 오리가미로 젓가락 받침대를 만들어 썼고, 종이로 된 앞치마도 제공했다. 깜찍한 모양의 봉투나 상자, 가방을 직접 접어서 만든 여러 모양의 종이 주머니부터 다양한 형태의 포장 방법까지, 일본인들의 종이접기 사랑은 유별났다. 시내 백화점에서 종이접기 전시회와 체험교실에 참여하는 가족들을 보며 놀라기도 했다. 기내에서 종이접기 하는 아이들을 자주 봤었고, 때문에 우리 비행기에도 어린이 탑승 기념품으로 오리가미가 항상 탑재돼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날 비행에서 종이학을 접고 있는 아주머니를 보고도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길고 지루한 비행시간을 때울 겸 종이접기 하는 승객들을 그간 많이 봤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비행기부터 시작해 돛단배를 만들기도 했으며 장미나 산타클로스 같은 것을 조용한 기내에서 묵묵히 접고는 했다. 그것들을 비행기에서 내리는 길에 챙겨서 내리거나 우리 승무원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다. 어쩔 때는 그냥 좌석에 놔두고 내렸다. 그런데도 여느 다른 승객들처럼 평범하게 종이학을 접고 있는 아주머니가 갑자기 눈에 띄었던 이유는 그녀가 종이학을 끈질기게, 어쩌면 파랗게 날이 선 듯한 눈빛으로 접고 있었기 때문일까.
아주머니는 아이 두 명을 데리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둘 다 남자애들로 큰 애는 초등학생 저학년으로 보였고, 작은 아이는 아직 유치원생으로 보였다. 아이들은 비행기에 타자마자 동그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좌석 위에서 방방 뛰어댔다. 리모컨도 마구 눌러 승무원 호출 버튼이 잘못 눌리기 일쑤였다. 우리는 이륙 전부터 아이들의 호출로 몇 번이고 왔다 갔다 해야 했다. “이 버튼은 비상 상황이나 꼭 필요한 일이 있을 때만 눌러주세요?”라고 몇 번이나 말해도 소용없었다. 아이 엄마는 그럴 때마다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죄송하다고 했다. 그녀는 유독 활달해 보이는 아이들을 챙기느라 조금 피곤해 보였다. 가느다란 코와 쌍꺼풀은 없지만 시원한 눈매로 이목구비가 뚜렷했는데 립스틱 하나 바르지 않은 화장기 없는 민얼굴이 핏기 없이 서늘했다. 환했지만 만지면 차가울 것 같은 시린 안색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영화 많으니까요, 그거 틀어주세요. 언제든지 필요하신 거 있으면 부르시고요. 저희 다 아이라면 사족을 못 쓰니까요. 아이들이 너무 귀엽네요!”
그녀가 나를 힐긋 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 아이가 없는, 나 같이 젊은 처녀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거라는 눈빛이었다. 시애틀에서 출발해 도쿄로 향하는 비행기였다.
서비스하는 동안 아이들은 영화를 보느라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역시 아이들에겐 디즈니가 최고였다. 엄마 승객은 얼마간 밥을 먹는가 싶더니 종이학 접기 삼매경이었다. 모든 서비스가 끝날 때쯤 그녀의 테이블에는 종이학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어쩌다 작은 아이가 칭얼거리기 시작하면 큰 애가 달래주었다. 큰 애는 울상인 작은 아이를 데리고 갤리에 와서 사과 주스를 얻어 갔고, 화장실 앞에서 기다려주는 의젓함도 보여주었다. 나는 그런 형이 너무 귀여워 지나갈 때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와중에도 엄마 승객은 연신 종이학만 접어댔다. 좌석 아래 놓인 작은 손가방에서 형형색색의 오리가미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종이접기를 좋아하는 아주머니라고만 생각했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잘 놀았으니 크게 개의치 않았다. 아이들도 얼마간 엄마를 따라 종이학을 접는가 싶더니 다시 디즈니 영화를 보았고, 그림이 그려진 스케치북에 삐뚤빼뚤 색을 채워 넣었다.
다른 승객들은 옆 좌석의 일행과 조용히 담소를 나누거나 멍하니 영화를 보았고 대부분은 잠이 들어 있었다. 나는 기내를 한 바퀴 둘러본 후 조명을 끄고는 갤리로 돌아왔다. 갤리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며 비행 관련 메모와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한참 끄적거리고 있는데 큰 형이 갤리로 빠끔히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사과 주스 드릴까요?”
아이는 통통하게 차오른 볼을 더욱 동그랗게 만들며 대답했다.
“아니요! 동생이 오렌지 주스! 오렌지 주스 먹고 싶대요.”
그 오동통한 볼을 꼬집어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참았다. 나는 오렌지 주스를 컵에 따르며 문득 생각난 듯이 물었다.
“아, 그런데 엄마가 무척이나 열심히 종이학을 접고 계시던데. 엄마가 종이접기 좋아해요?”
아이는 엄마를 대신해 결의에 찬 듯 말했다.
“음. 좋아하는 건 아닌데… 종이학 천 마리 접어야 한댔어요. 그저께부터 계속 접고 계세요.”
나는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가 오렌지 주스를 내밀며 반사적으로 물었다.
“왜요?”
아이는 천진하게 대답했다.
“누나는 그것도 몰라요? 종이학 천 마리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 대잖아요.”
아이는 바짝 붙은 나와의 거리가 불편한지 오렌지 주스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지금 할머니가 아프셔서 보러 가는 길이에요.”
나는 무어라 바로 말을 잇지 못했고, 아이는 주스를 받아들고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오렌지 주스 감사합니다!”
나는 그제야 엄마 승객이 비행 내내 종이학 접기에 질기도록 매진하던 이유를 알게 됐다. 그녀는 병상에 있는 어머니를 위해 종이학을 접고 있던 것이었다. 종이로 천 마리의 학을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미신에 나 역시 학창 시절 종이학을 접어본 경험이 있다. 백 마리를 접기도 전에 포기해버렸지만 말이다. 그녀는 오늘 이 비행에서 종이학 천 마리를 접으려는 것일까.
나는 끄적이던 메모를 접어놓고 기내로 나섰다. 소등된 어두운 기내에서 엄마 승객은 여전히 종이학을 접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는 알 수 없는 낭패감에 휩싸인 듯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서둘러 갤리로 돌아와 따뜻한 물에 홍차를 진하게 우려냈다. 레몬도 한 조각 넣었다. 나는 따뜻한 홍차를 들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저... 이것 좀 드셔보세요. 따뜻한 홍차에요. 몸의 긴장이 좀 풀어지실 거예요.”
그녀는 내 거동을 살피며 홍차를 건네받았다.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아니에요. 아이들이 영어도 곧잘 하던데, 시애틀에서 사시나 봐요.”
“네. 애들 아빠가 미국인이에요. 아이들 낳고서는 시애틀로 와서 살고 있어요.”
지척에 살아도 먹고살기 바빠 자주 보지 못하는 게 가족인데, 비행기로 10시간 가까이 걸리는 곳에 있는 부모의 병중 소식은 얼마나 아득하게 느껴질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나는 그녀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부르라는 식상한 말만 남기고 돌아섰다.
갤리로 돌아오니 삼삼오오 모여 있던 동료 승무원들이 물었다. “종이학 접던 승객이랑 얘기하던데, 무슨 일 있었어?” 나는 동료들에게 그녀의 사연을 털어놓았다.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이코노미 클래스 동료들 모두는 각 클래스로 흩어졌다. 퍼스트 클래스와 비즈니스 클래스, 이코노미 클래스에 비행 기념품으로 탑재된 오리가미를 전부 꺼내오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오리가미를 나누어 들고는 종이학을 접기 시작했다. 비즈니스 클래스와 퍼스트 클래스 승무원들까지도 이야기를 전해 듣고 종이학 접기에 동참했다. 클래스는 다르지만, 모두가 각자 맡은 클래스에서 종이학을 접었다. 오리가미가 모자르자 각자 비행 준비물로 챙겨 다니는 메모지 및 종이를 사용해 접기도 했다.
그렇게 14명의 승무원이 착륙 직전까지 접은 종이학은 한아름이 되었다. 나와 이코노미 클래스 사무장은 착륙 사인이 울리기 전, 종이학이 그득히 담긴 봉투를 엄마 승객에게 주저하며 내밀었다.
“저... 저희도 기도드릴게요.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더 일찍 도착해서 다행이에요. 얼른 가보세요. 비행 수고하셨습니다….”
그녀는 봉투 끝까지 빼곡히 담겨 금방이라도 한두 마리가 떨어져 버릴 것 같은 종이학들을 무연히 내려다보았다. 아, 그녀의 다부진 입에서 가느다란 소리가 새어 나왔다. 쉽게 말을 잇진 못했다. 엄마 승객은 결국 고개를 떨어뜨리며 우리를 바라보지도 못한 채 두 손으로 얼굴을 부여잡고는, 아주 작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파리한 얼굴을 파묻은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총총히 배어 나왔다. 옆에 앉은 아이들은 종이학이 담긴 봉투를 내려다보며 연신 "우와, 많다, 우와"를 외쳤다. 나는 더 무슨 말을 할 수 없었고, 눈물이 날 것만 같아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고 바라본 동료의 눈에도 눈물이 한 움큼 고여 있었다.
이내 곧 착륙 사인이 떨어졌고 우리는 착륙 준비를 하기 위해 각자 맡은 구역으로 돌아갔다. 좌석 위 수납함을 꾹꾹 눌러가며 승객들의 좌석 벨트, 수하물, 테이블, 발 받침, 팔걸이 등을 점검하면서도 가슴에서 뜨거운 게 자꾸만 차올랐다. 이러다가는 영문도 모르는 승객들 앞에서 울어버릴 것 같아 서둘러 안전 점검을 마쳤다.
안전 점검을 마치고 착륙 사인을 보내고는 승무원 좌석에 털썩 주저앉았다. 고개를 돌려 하늘을 내려다보니, 도쿄 지상의 풍경이 몽글몽글한 구름 아래로 막막하게 펼쳐져 있었다. 나는 그저 이 구름 아래에 있을 엄마 승객의 어머니가 조금만 더 기다려주길 바랄 뿐이었다.
종이학 다들 접어보신 적 있잖아요. 제가 중학생 때는 좋아하는 남자애에게 종이학을 주면서 고백하는 게 유행이기도 했는데... 지금 종이학을 접는다면, 무엇을 바라면서 접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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