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지인딸로부터 여성지인분의 부고소식을 들어서 좋은곳으로 가셨을테니 너무 걱정하지말고 나중에 놀러오라는 이성적 답장과는 다르게 가슴이 먹먹하다. 인생은 이성따로 감정따로인 것이었다. 지난 여름까지 아무렇지않게 문자도 주고받았는데 이렇게 갑자기 지인의 딸로부터 죽음소식을 전해받을줄은 전혀 생각못했고 놀란가슴을 진정시키는 중이다.
(이곳 브런치엔 가까운 인연들의 죽음을 겪은뒤 슬픔을 딛고 일어선 작가님들이 보이는데 참 강인한 분들이시다)
그저께는 저녁에 마트나가는길에 출발후 5킬로쯤 되는 도로에서 로드킬당한 동물을 보았다. 장보고 돌아오는길에 차를 세우고 동물을 박스에 태운뒤 돌아와 마당 새로심은 나무밑에 묻고 차량을 환기시켰다. 새끼너구리였는데 머리부분을 치여서 죽은거였다. 죽은너구리 픽업하는데 30초(도착5분전에 장갑끼고 목격장소에 차세운뒤 뒷차오기전에 최대한 신속히 픽업)땅파고 묻는데 5분 차량환기시키는데3분 해서 10분안쪽으로 장사를 치뤘는데 아는동물이 아니라 그런지 연민이들긴했어도 감정의 동요는 크지않았다.
이번에 새삼 생각이든건 모든 존재의 탄생과 죽음은 세상에 파장을 일으키는데, 존재의 본질이 苦(고통)이므로 주변에서 그에따라 느끼는 것도 고통이다. 일단 태어날때 본인부터 운다. 죽을땐 관계적으로 가까이있는 인연은 큰 슬픔을 느끼고 잘 모르거나 먼 인연은 작은 연민정도만 느끼고 중간정도에 있는 인연은 중간정도의 충격과 슬픔을 느끼는 것이다.
가족인 딸에 비하여 상당히 멀리있는 중간정도의 거리에서 맞는 지인의 죽음이지만 나의 감정도 또다시 커다란 물결에 전복되어 부고소식을 들은 어제부터 떠다녔던 것이다. 지난밤엔 촛불을 켜고 지인에 대해 생각했다. 아침엔 지인 이름을 쓴 종이를 태우며 좋은곳으로 잘가시라고 혼자서 인사했다.
이 세상에 살면서 감정의 평온을 지키며 살기란 거의 서쪽으로 매끄럽게 지는 달을 따라가는 것마냥 불가능에 가까운것같고 다가오는 수많은 물결들을 헤치며 나아가는 고된 전투와 같은 것이다. 물결 하나는 지나갔어도 사회적존재인 인간에게 관계란 불가피한것이고 그들의 탄생과 죽음은 여전히 진행형이기에 감정은 여전히 불안에 떨고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