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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보기식 건물배치

by 까마귀의발

학생때 서울의 운현궁에 견학차 구경갔을때 처음으로본 마주보기식 방사배치가 있다. 예전에 왕과 왕비 혹은 세자와 세자비가 쓰던 방들인것 같았고 중앙의 홀을 중심으로 양쪽에서 서로 마주보게 배치해놨었다. 인상깊은 방사 배치여서 나중에 나도 집이 생기면 방사를 저렇게 배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생각은 어느날 현실이된다. 그래서 평소 어떤 생각을 하느냐, 그리고 주변환경이 어떤생각을 하도록 영향을 미치는가가 한 사람의 삶에있어 결정적인 영향이된다. '멩모삼천지교'라고 맹자의 엄마도 이점을 알고 아들 교육을 위해 세번이나 이사를 간것이다.


스무살 무렵 가졌던 나의 생각은 이십여년이 지나 어느날 현실이되어있었다. 오늘 강원도 나의 눈보라언덕집 창고에서 보니 방사가 그렇게 배치되어있었던 것이다.

-(이어서)-


글을 쓰다 지인이와서 밭일을 도와준다고 하루가 지나가버리고 하루지난 오전에 다시 이어서쓴다.

나의 창고와 마주본 집에서 어제 일이 있었다. 집주인인 지인이 주변에 심어놓은 농작물을 수확한다고 집에 다녀간 것이다. 강원도의 밭이란게 규모가 커서 지인네밭은 그중에서 작디작은 편에 속했지만 지인을 도와 둘이서 농작물따는데 하루종일 걸렸다. 나는 이 매력적인 눈보라언덕집을 빌려쓰는 유로(공식적으로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지인이 일할때 옆에있다는 이유로) 종일 밭노동에 동원되어야했던 것이다. 게다가 내 지인도 서울에서 이사온지 10년이 넘었지만 작년엔 이 밭의 농작물을 사람이없으니 누군가 따가서 하나도 못건지고 올해가 처음으로 제대로 수확하는 거라서 생초보인데다 여자라 무거운 수확물 운반 등 힘든 일은 모두 내몫이어서 기가 빨리는 느낌이었다. 이런걸 노동착취라 하는것 같았지만 농작물 심은이래 제대로된 첫수확이라며 기뻐하는 지인을 보며 아무말 안하고 묵묵히 도와주기만 했다. 박스에 포장된 농작물들을 지인이 경매장에 팔러 어제 떠나고 어지러운 마주한 집 안을 뒷정리하며 애를 키우는 엄마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아이의 성장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며 어느날 다큰 새가 둥지를 떠나가듯 성인이된 아이는 떠나가고 빈자리만 남고 어쩌다 찾아올 뿐이지만 건강하게 자란 아이가 밝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만으로 자신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가치를 느끼고 만족해하는 엄마의 마음.


아침엔 안개낀 주변 숲에서 노루거나 사슴이 울었다. 고라니가 더 많지만 고라니 소리는 조금 괴성에 가까운느낌이 있고 아침에 울은건 조금더 운치있는 사슴 울음소리였다. 이곳이 마음에 드는건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서 동물들이 근처에 종종 놀러온다는 점이다. 어제 지인과 일하며 나중에 나도 산밑에 밭이 생기면 멧돼지한테 먹이를 줘서 길들여 키울거라고 말했다. 요새 아프리카열병때문에 포상금이 걸려있을테니 포수가 오면 숨을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주겠노라했다. 사람들은 멧돼지가 무서운 맹수인줄 알지만 그건 포수가 잡을라 그러니까 당연히 미쳐서 돌변한거고 사실은 순하고 겁도많다고 얘기했다. 지인은 아무말없었다.


이어서.

어쩌다 보니 지금껏 한번에 짧막한 글을 올려왔던 것과는 다르게 3일에 걸쳐서 글을 쓰고 있다. 중간중간에 계속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럴경우 여러가지 향기가 섞여있는 커피처럼 글에서 여러느낌이 난다. 모든 생명체는 날마다 변화하여 어제와는 또 다르고 나 또한 그렇기 때문이다. 특히 책을 읽는 경우 사람은 더 빠르게 변하는데 오늘 아침에 책을 두장이나 읽은 것이다. 같은 사람이 쓴 글이라고는 생각이 안들만큼 앞부분과 뒷부분의 느낌이 달라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아무튼 주말아침에 눈이녹은 강원도 창고의 창문을 열었더니 마주한 건물의 문이보여서, 조선 최고의 건축가가 지었을 운현궁에 비한다면 초라하기 짝이없는 이름없는 창고건물이지만 구조가 비슷한걸 보며 사람의 활동반경이 아무리 넓어도 이전에 가졌던 어떤 생각이나 의지의 범위안에 있다는걸 느꼈다. 잘 생각해야하는 것이다.


마주보기식 건물배치가 인상깊었던 이유는 거기서 생활의 방식이 느껴져서다. 친하거나 가까운 상대라도 자신의 공간을 따로 주고 나의공간과 상대의 공간 사이에 빈공간을 두되 입구는 서로 등돌린 반대방향이거나 여기저기 뚫어놓는게 아니라 상대의 공간을 향해 만들어두는 방식이다. 새를 키우든 들냥이를 키우든 아니면 마당의 뱀이든 들꽃이든 각자의 공간을 존중해주되 적당히 거리를 두고 관심도 열어두는 것이다. 아마도 공간이란 것은 이런 이유로 해서 생명체들이 먼저 생겨난뒤 각 존재들사이에 거리를 유지하기위해 생겨난 것이 아닐까한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나의 주장에 반박할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번주에 새장공사를 다시 해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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