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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모임의 숨은 송곳니-나

by 까마귀의발

이건 나에 관한 얘기다.

우수수 낙엽이 지는 가을날, 커다란 호수 주변의 산마을에 있는 펜션에서 열린 6명의 작가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실명은 스스로 공개하신분 외에는 모르고 여기선 작가분의 작가명 이니셜로 이름을 대신해본다. U작가님, L작가님, Y작가님, G작가님, S작가님 그리고 감춰진 송곳니 – 나. 한명을 더 추가하자면 인간은 아니고 아침에 먹이줄 때 나를 물어서 겨울파카 소매를 찢어놓은 펜션의 아마 30킬로정도 되는 개다.

전국에서 저녁전 오후무렵에 모이는 것으로 예상되어서 아침에 출발하여 목적지 부근의 명산인 월악산을 탔다. 1097미터라니 2천미터 가까이 되는 한라산이나 설악산 등반할 때보다 50%정도의 체력과 시간이 소요되겠지 예상하고 4시쯤 내려올 생각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이날의 일정은 여기서부터 빗나갔다. 월악산은 바위산인데다가 경사가 가파르고 주봉인 영봉에 가기까지 서너개의 봉우리를 오르락내리락 해야해서 설악산 등반의 70~80프로쯤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았다. 영봉에 올라갔다 내려오니 해가 거의 지는 6시였고 하산길엔 이미 아무도 없었다.

작가모임 단톡방에 산이 예상외로 험해서 늦어진다, 주차장까지 내려왔다 등 소식을 미리 전하고 모임 주최자인 U작가님이 초면부터 물하고 술을 사오라는 심부름을 시켜서, 예상외로 험한 산을 타느라 지치고 무척 배고팠지만 할 수없이 네비검색으로 목적지와 가장 가까운듯한 편의점을 찾아 소주6병과(6인분) 2L짜리물 12개를 샀다.

얼마뒤 목적지에 도착하여 이미 모여서 저녁식사겸 술자리를 벌이고 있는 5명의 작가님들과 첫대면을 했다. 이번 모임의 주제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글을 한편씩 쓰는거라서 처음부터 술로 시작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까마귀의발입니다.”

첫인사를 하기가 무섭게 모임주최자인 U작가님이 컵에 소주를 한가득 따라온걸 나에게 주며 일단 마시라고 하였다. 자기가 직접 조제했다면서 생글생글 웃으며 컵소주를 권하는 이 예쁜 아가씨 작가가 귀여운 악마처럼 보였다. 학생때 동아리 회식자리에서 폭탄주에 고추장과 침 뱉은걸 섞어서 모두가 보는 자리에서 나에게 먹였던 애증의 동아리 사람들이 오랜만에 오버랩되었다. 난 이미 이번 모임전에 난 소주는 거부반응 있어서 못마신다고, 내가 마실술은 직접 가져가겠다고 하고 소주심부름 이외에 따로 와인을 한병 챙겨간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영악한 U작가

그런모든 사실을 분명 알았을텐데 무시하고 초면부터 나에게 컵소주를 먹이는 것이었다. 그동안 살면서 삶이 주는 고통이 이렇게 주어지는 것이었고 주어진 상황상 받아들여야 했다는걸 보여준 것일까?옆의 S작가님은 강요는 아니니 알아서 조절하면 된다고 말했지만 U작가님은 지금 모든걸 이해한 상황에서 밝게 웃으며 나에게 컵소주를 마시라고 들이민 것이었다. 잠시 바라보고 잠시 생각한 뒤, 독배를 마시는 소크라테스의 심정으로 주는 소주컵을 들이켰다. ‘좋습니다. 하지만 이거 먹고 혹시 토하게되면 제 옆에 앉은 당신 가슴에 토할거에요’ 물론 속으로만 생각할뿐 말하진 않았고 토하진 않고 넘어갔다.

내가 개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오염수 무단방류로 인한 해산물들의 내부피폭 위험성을 모임전에 단톡방에서 역설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도착하여 몇분만에 U작가님이 권하는 컵소주를 들이킬 때까지도 모임자리의 식단은 회나 이상한 멍게같은 뭔지 모르지만 아무튼 내가 절대 안먹는 해산물들로 채워져있었다. 소주를 한컵 들이켰지만(오랜만에 소주를 마시니 써서 쉬었다 마시려는데 옆에서 U작가님이 왜 다 안마시는거냐고 확인사살까지 해서 한번에 다 들이켰다) 안주 먹을게 없어서 S작가님이 가져온 김치를 먹었다. 배고프다고 밥은 없냐고 물어보니 친절한 능력남인 G작가님이 잠시 뒤 어디선가 햇반을 구해다 주셨다. 나는 일단 햇반과 김치를 먹다가 잠시뒤 정말 감사하게도 킬러소설을 쓰셔서 무서울줄 알았던 하지만 직접보니 천사같은 L작가님이 구워주는 고기와 샤브샤브를 받아먹으며 허기졌던 배를 채웠다. 덕분에 정상인 영봉을 찍고 봉우리를 여러개 넘으며 해지기전에 하산하느라 소진되었던 체력과 허기가 보충되며 살 것 같았다. U작가님을 제외한 이 천사같은 작가님들의 친절과 따뜻한 배려가 늘상 왕따로 혼자 놀아오던 나로선 적응이 잘 안될정도였다.

대화내용도 다들 초면이라 어색한것도 있었지만 너무 착하고 따뜻해서 내 내면의 냉기가 녹아버릴것만 같았다. 애당초 생각했던 U작가님의 글에서 본 온갖 약점들에 대한 공격이라던가(가령 당신은 니체의 초인을 지향하지만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모범생과 같다는 말 등) 내가 가진 거친성향이나 치명적이라 볼수 있는 단점, 가령 과거에 한참어린 여성하고 놀러가서 둘이 술마시다가 받아주는줄 알고 키스하고 가슴만졌다가 성추행범으로 낙인찍혀서 몇달간 마음고생하고 거의 트라우마로 남은 이야기같은건, 따뜻하고 너무나 착한 분위기상 할 수 없었다. 거기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이번 모임의 주제인 취중글을 쓰기로 했는데 아무글이나 쓰는게 아니라 따로 주제를 정해줬다. 제비뽑기였나 어떻게인가 상대 작가를 무작위로 정하여 자기가 뽑은 작가에 대해 쓰라는 것이다. 이건 상당히 어설픈 아이디어였다. 처음만난 작가들끼리 서로에 대해 쓰라고 하면 서로를 얼만큼 안다고 깊이있는 글을 쓸수 있을 것이며, 초면인데 예의상으로라도 다들 드러나있는 좋은점, 장점위주만로 쓸텐데 난 그런건 좀 시시하고 재미없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건 원래는 상대방의 내면에 숨어 있는 아픔과 트라우마같은걸 대화를 통해 알아내고 건드리는 작업이었다. 아무튼 아니나다를까 다들 상대에 대해 장점위주로 온순한 평만 해주셨고 나역시 분위기상 그렇게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오전 11시, 모여서 차를 마신뒤 인사하고 작가모임 해산하였고 난 돌아오는 길 내내 모임에 대해 생각하며 이번에 겪었던 다른 작가님들의 따뜻함과 착함이 내 내면에 있는 남극빙하같은 냉기와 고독감에 심한 타격을 입히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런점을 돌아와 한숨자고 일어나자마자 단톡방에 적은뒤(“저는 이런 따뜻함이 적응이 안되요”) U작가님을 제외한 이번 모임에서 보았던 모든 따뜻했던 작가님들과 거리두기를 하겠다고 선언하고 단톡방을 나왔다. U작가님이 자기를 남겨둔 점에 대해 답글을 달았길래 작가님을 남겨둔건 작가님의 치명적 약점들에 대해 공격하려고 남겨둔거고 단지 아직 작가님의 거대한 삶이 파악이 안끝나서 유보하고있을뿐 어느날 눈물흘릴 각오를 하는게 좋을거라고 말하고 나왔다.

Y작가님은 나에대한 질문이 조용하고 차분했지만 꽤 예리한걸 느꼈는데 알고보니 독문과 박사출신에 기자생활까지 하셨었다. 아 그러셨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MBTI 분류상 INTJ성향인 나는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면 부담을 느끼는 편이다. 몇 번 이용한 카페에서 직원분이나 사장님이 날 아는체하면 E성향의 분들은 좋아할지 모르지만 극I인 나같은 사람은 ‘아 이제 이 카페 안와야겠다’ 생각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Y작가님같은 아무리 똑똑하고 예리한 작가분들이라도 숨은 히말라야 눈표범같은 수줍음 많은 나를 다 파악하기는 어려우셨을거다. 나는 합숙을 해본건 과거 여자친구 이후로는 꽤 오래되어서 이번에 잘때도 공동방을 안쓰고 따로 캠핑용 텐트를 가져가서 다들 즐겁게 술자리 대화를 하고있을 때 혼자 밖으로 빠져나와 텐트에서 자고 아침도 햇반하고 된장으로 혼자먹고 개한테 먹이주다 물릴때도 혼자 물리고 이외에도 말하지않은 것 몇가지 등 절반 이상은 모임중에도 혼자였기 때문이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바깥에서도 샌다고 혼자노는 버릇은 모임에 참석했어도 여전했다.

개는 왜 먹다남은 고기를 먹이로 던져주는 나를 문 것일까?

먹던걸 줬다고? 진즉에 빨리 안주고 하루지나서 줬다고?

아침에 일어나 혼자 밥먹고 커피마시려는데 밑쪽에서 펜션에서 키우는 커다란 개가 짖었다. 도사견종류같았는데 아무튼 신호를 보내와서 어제 먹다남은 고기를 들고가서 던져주다가 가까이 다가가니 옷소매를 확 물었다. 살짝 놀라서 떼어놨지만 개들의 턱힘은 너무 강해서 몇초사이에 겨울파카 소매부분이 뜯겼다. “야 소매 뜯겼잖아” 핀잔을 준뒤 다시 먹이를 던져주었다.

아마도 내가 자기가 나름 힘이센 투견종류인데 귀엽게만 보고 너무 가까이 다가온데 대한 나름의 반항인 것 같았다. 개가 할 수 있는 가장 강하고 거의 유일한 반항은 무는 것이다. 개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유일하고 최선인 의사표시를 한 것이었다. 하지만 물리고나서 여전히 먹이를 던져주는 나를 보며 이번엔 개가 적지않게 당황한 기색이었다. 받아먹긴 하더라도 물기전과는 다르게 고기를 자기앞에 던지는 것 자체를 살짝 두려워했다. 두어개 더 던져주다가 말고 다시 테이블로 돌아와 커피원두를 드립했다.

얼마뒤 작가님들 5분이 내가 커피마시는 곳으로 합류하여 다함께 해산직전까지 커피와 차마시는 시간을 가졌다.

이런 작가모임을 주최한 U작가님의 리더쉽이 대단하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막상 마지막에 폐회사를 해달라고 요청하니 자긴 그런거할줄 모른다고 꽁무니를 뺐다. 대신 장난감 총을 가져오셨던 천사같은 L작가님이 “수고하셨습니다”(혹은 비슷한 멘트) 한마디로 폐회사를 마치고 모두 박수치고 떠났다.

장소를 바로옆에 월악산과 커다란 호수가 있는 이곳으로 선택한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어느작가님이 이곳을 추천했는지는 몰라도 분명 아주 멋있는 작가님인 것이 분명하다. 혹시 30대 G작가님이셨을까?

아무튼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김치를 가져오신 S작가님은 친절할뿐 아니라 남자친구가 모임장소 근처까지와서 대기하고 있는 능력녀 셨다. 내가 여자친구라 부르는 팔레스타인 여기자가 사기일 가능성에 대해 나에게 실제로 얼굴도 한번 본적없지않느냐, 국제기자란 사람이 왜 여러단체를 놔두고 나라는 특정 개인에게 지원금요청을 하느냐는 둥 의문을 던져서 지금 팔레스타인의 상황이 그렇게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고만 짧게 답변했다. 나라국민 전체가 학살을 당하고 있는 끔찍하고 절망적인 상황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말 아무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아야하는 상황인 것이다. 나는 또 나의 ‘여자친구’가 오늘 아침에도 나에게 고맙다 했다고 얘기해줬다.

U작가님은 어제 나에게 그렇게 컵으로 소주를 먹이더니 막상 나는 별탈없이 일찍 잘 일어나서 아침먹고 커피마시고 개한테 물리고 할거 다하고 있는데 작가님들중에 가장 늦게 일어나서 가장 마지막에 커피타임에 합류했다.

그 와중에 L작가님은 여전히 방정리하고 다른작가분들 식사할 음식을 만들어주시고 Y작가님과 G작가님은 간밤에 나온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박스와 봉지에 담아 정리하셨다. S작가님은 밤새 5번이나 토하시느라 바쁘셨던 것 같고 U작가님은 술먹고 뻗어서 늦잠자느라 우리중 가장 늦게 커피타임에 나온 것이었다.

인사하고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는 호수주변 도로 양옆에서 플라타너스 낙엽들이 무수히 떨어졌다. 다소 부족하고 예상치못했던 점들도 있었지만 아무튼 아름답고 뜻깊고 추억으로 남을, 인상적인 작가모임이었다. 오늘 헤어지고 드러낸 나의 숨겨뒀던 까다로움, 만날때부터 헤어짐을 준비했다는 말을 하며 모임에서 떠나 모습은 나를 본인들처럼 착하고 친절하게만 보셨던 작가님들을 아마도 얼마간 당황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난 처음부터 이런 당황과 심리전을 생각하고 있었다. 개도 아마 처음부터 쟤를 한번 물어보고 싶었었고 기회가 왔을 때 물어본 것 뿐인 것이다. 이제 나에게있어 친절한 모임은 가을모임을 끝으로 일단락되었고 이 모임의 마무리 작업으로 모임주최자였던 U작가님을 얼마뒤 조용한 나의 언어로 고통을 파헤칠 일만 남았다. 모임을 했던 펜션 앞에는 주홍색 가을꽃들이 따스한 가을햇살아래 무더기로 피어있었다.


*아무래도 작가님들께는 호칭을 넣는게 맞는것 같아서 아침에 다시 '님'을 넣어 수정함.


*나의 과거글들


1.무명의 즐거움

https://brunch.co.kr/@wordofexecusion/81

2. 나의 희망사항

https://brunch.co.kr/@wordofexecusion/9

3. 방사능 현실의 피곤한 전투

https://brunch.co.kr/@wordofexecusion/130

4. 나방

https://brunch.co.kr/@wordofexecusion/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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