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을 때 읽는 책』을 읽고
지난 어느 겨울날, 나는 미시간의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카피라이터로 숨가쁘게 일해온 한 해의 끝. 나에게 준 선물 같은 여행이었다. 시속 130킬로로 미국을 통과하는 차 안. 순간 태어나 처음 느끼는 어떤 감정에 휩싸였다. 몸은 말을 듣지 않고, 머릿속엔 딱 하나의 생각만 맴돌았다.
이 차에서 내리고 싶다
슬며시 안전벨트를 풀었고, 밖으로 뛰어내리려 했다. 낌새를 챈 일행이 내 팔을 붙잡았다. 그제야 조금 정신이 들었다. 곤혹스러웠다. 나는 왜 그토록 기다려온 여행에서 삶을 포기하려 하는가. 대자연의 풍경을 옆에 두고 왜 죽음을 택하려 하는가. 시간이 흘러도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밤새워 도착한 나이아가라에서도, 모두 잠든 새벽녘에도, 나를 지배하는 건, 죽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도망치듯 귀국한 뒤 병원을 찾았다.
조울증.
양극단의 감정 사이를 헤엄치다 심한 경우 자살에 이르게 되는, 100명 중 1명에게 찾아오는 병. 그게 나의 병명이었다. 상태는 심각했다. 휴직을 했고, 입원을 했다.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오가며 예측할 수 없는 나날을 보냈다. 그때 한 권의 책을 만났다. 『죽고 싶을 때 읽는 책』.
제목이 가슴에 사무쳤다. 하지만 선뜻 책장을 넘기긴 힘들었다. 막연한 위로를 하는 건 아닐까, 말뿐인 조언을 해주진 않을까, 의문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심스레 펼친 책 속에서 나는 한 사람이 절망에 빠져 죽음을 상상하게 되는 여러 상황들을 직면할 수 있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경제적인 어려움, 실업과 실직, 오랜 투병생활, 가정폭력 등 현실 속의 구체적인 상황들을.
그때 비로소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어머니와 사별한 나 자신. 가족과 갈등을 겪는 나 자신. 밤샘 업무로 번아웃된 나 자신. 세상엔 나 혼자 뿐이라 여기는 나 자신. 미련하게도 하루하루를 술로 채우는 나 자신…… 그러자 지금 나의 이 아픔과 고통이, 싸우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끌어안고 어루만져야 할, 지친 나의 초상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죽고 싶다는 생각에 억눌렸던, 더욱 중요한 생각을 발견했다. 바로, 살아야 하는 이유 말이다. 뼈저린 고독과 고통 속에서도 살아야 하는 이유. 그 수많은 이유들은 모두 하나의 목소리로 소리치고 있었다.
넌 소중한 사람이야!
성인이 되면서 또 직장생활을 하면서, 누구도 해준 적 없는 말이었다.
OECD 가입국 중 매년 자살률 1위를 기록하는 대한민국. 한마디로 이 사회는 죽고 싶어 하는 이가 가장 많은 사회다. 그만큼 더 이상 자살을 내가 아닌 남의 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살’. 어쩌면 그 또 다른 뜻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경쟁이 일상이고, 빠름만이 요구되며, 대도시의 룰이 정신적 삶을 압도하는 사회. 그 속에서 우리는 지치고 또 다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우리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는 게 아닐까? 지금이라도 서둘러 기억해야 하는 게 아닐까? 나 자신보다 소중하고 중요한 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어느새 여름이 왔고, 나는 아직 나의 아픔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직장으로의 복귀 또한 아직이다. 길어진 휴식이 10개월을 채워가는 지금. 오늘도 세상은 빠르게 흘러가는데 뒤쳐지는 건 아닐까 불안해지기도, 조급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살기로 결심했다. 죽지 않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그리고 지금의 이 시간들이 남아있는 내 삶에 커다란 힘이 되리라 확신한다.
며칠 전 아침 라디오에서 마음을 흔드는 문구 하나가 귓가에 울렸다.
비극에 시간을 더하면 희극이 된다
아픈 나를 외면하지 않고, 뜨겁게 사랑하며, 충분히 기다려준다면, 내 인생도 제법 괜찮을 것 같다.
당신의 인생 또한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