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이 강남보다 좋은 이유
강남이 아무리 좋다지만 서울에서 내 마음이 가는 곳은 사대문 안이다. 그 중에서도 삼청동에만 가면 마음이 편안해 지는데, 관광객들의 여유넘치는 에너지가 그 장소를 더욱 더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오랜만에 점심시간을 활용해 경복궁 돌담을 따라 한 바퀴 걷고 삼청동 초입까지 들어가 보았다. 순식간에 나는 사원증을 목에 건 광화문 직장인에서 서울 나들이 나온 20대 학생으로 돌아가 있었다.
근 15년만에 와보는 삼청동은, 물론 가게가 많이들 바뀌긴 했지만, 옛날 분위기가 그대로였다. 모두 다 돌아보진 못해 아쉬웠지만 그 중에서도 옛날에 가끔 가던 분식집이 눈에 보여 나도 모르게 들어갔다.
혼밥에 아주 익숙한 나지만 분식집은 도전해보지 못해서- 쭈뼛쭈뼛 한명이요, 하며 들어서는데 순식간에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한 듯 했다. 플라스틱 의자며, 뽀글머리를 하고 떡볶이 색이랑 똑같은 두건을 써 누가 누군지 구분 못하겠는 아주머니 두 분, 벽에 걸린 옛날식 달력. 이 모든게 15년 전으로 시간을 돌려버리는 마법을 부렸다.
원래는 쌀집이었던 곳을 개조해서 만든지라 간판부터가 특이하다. 서울 한 복판에서 시골 읍내에 나온듯한 분위기를 뿜는 곳은 여기 뿐일 것이다 - 내 옆 자리에 앉은 외국인 관광객들 빼면. 이 파란 눈을 한 관광객들은 어디서 보고 여길 찾아온걸까. 나보다 더 매운 떡볶이를 잘 먹는 걸 보니 신기하다.
떡꼬치에 오뎅 두 꼬치나 먹었는데 삼 천원만 내고 나오니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요즘 시대에 한 끼 배채우고 이 돈밖에 안내는 곳이 있다니!
사무실에 복귀해 컴퓨터를 켜고 다시 직장인으로 변신하자 잠시동안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여행을 하고 온기분이라 멍 해졌다. 그래 꼭 어디 비행기 타고 가야만 여행인가. 이게 진정한 여행이지. 쌓여있는 이메일에 진한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 쾡한 눈으로 모니터를 쳐다본다. 이건 여독이 오른 회사원의 모습과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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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문 안이 강남보다 좋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으뜸은 '낭만'일 것이다.
사회 초년생 때 첫 직장이 선릉-논현 근처에 있었는데 서울 촌놈이었던 나는 그런 세계가 있는 것에 충격을 받았던 경험이 있다. 당시에는 9호선이 연장되기 전이라 신논현 역까지 운동삼아 걸어가는 일이 잦았는데, 그 골목 골목에 해가 어둑어둑 할 무렵 머리를 하는 예쁜 언니들이 많아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골목을 누비는 고급 세단들이 참 많다고만 생각했었지.
그 세단들이 예쁜 언니들을 실어 모두 유흥업소로 간다는 것을, 그 언니들은다 나가요 언니들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고급 외제차, 고급 룸살롱, 성매매, 그리고 성형과 명품. 그게 내가 느낀 압구정이남 선릉이북 지역의 지배적인 문화이다. 강남도 사실 뭉뚱그려 말할 수는 없고 테헤란로 이북과 이남의 분위기는 또 아주 많이 다른데, 내가 싫어했던 분위기는 '외지인들이 유입되어 만들어낸 환락문화' 였던 것 같다. 돈이면 다 된다는 물질만능주의가 싫었다. 이건 내가 이상주의자 인프제이기 때문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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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을 넘긴 나는 어쩌다 보니 광화문에서 일하게 되었다. 점심 시간 짬을 내 경복궁을 한바퀴 돌기도 하고 삼청동 시간여행을 하기도 하고, 주변의 미술관 박물관 그리고 관광객들의 설레임 에너지가 합해쳐 광화문 업무지구의 우울함을 상쇄시켜주는 것 같다.
6시를 넘기면 지옥철로 바뀌는 광화문역을 피해 빠르게 퇴근한다. 광화문에서 일할 수 있음에 오늘도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