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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효이재 Jun 06. 2024

[인사이트] 인간 행동을 결정하는 '경로'

Max Richter - "Infra 5"

사회심리학자, 행동경제학자들을 통해 밝혀진 사실은 사람은 상황, 구조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상황의 작은 차이가 때로는 인간의 커다란 행동 차이를 부릅니다. 이에 따르면 어떤 특정 상황에서의 경로요인이 인간 행동을 유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경로 요인이란 특정 강도나 안정성으로 행동 의도를 끄집어내거나 유지하는 자극 혹은 반응 경로를 말합니다.


 보험이나 금융상품에 대한 정보(를 가장한 홍보) 전화를 받은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이들은 전화를 통해 굉장히 많은 혜택을 전달하고 우리를 솔깃하게 만듭니다. 다만, 핵심은 그 혜택을 알리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이 전화의 핵심은 ‘그 자리에서 의사결정 하도록’ 종용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구매자가 사려는 것의 장단점을 다른 것과 비교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실제 구매를 결정하지 않고는 다른 문제에 주의를 돌릴 틈을 주지 않습니다. 정교한 경로요인을 설계한 것입니다.


 리처드 니스벳_Richard. E. Nisbet과 리 로스_Lee Ross는 스탠리 밀그램의 ‘전기충격’ 실험을 분석하면서 이것은 인간 본성의 추악함이 드러난 것이 아니라 ‘경로요인’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경로의 관점에서 보면 실험 상황은 ‘저항의 경로’가 막혀 있었습니다. 실험에서 분명 회의하고 저항한 사람이 있었지만 실험자들은 권위주의 적이고 단호하게 받아들일 수 없음을 천명하고 실험을 ‘명령’하고 ‘통제’했습니다. 결국 이 실험의 본질은 인간은 경로의 영향을 받습니다. 정확히는 ‘권위주의 적이고 강한 통제에 따른 경로 혹은 저항 경로의 차단’에 인간이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 드러난 것에 있습니다.


 "어떤 것도 말이 되지 않고 행동과 주변에서 벌어지는 결과에 관해 자신이 이해한 것이 분명 제한적이고 부족할 때 사람들은 대부분 단호하게 행동하거나 독립성을 주장하지 못한다. 평상시와 달리 우유분단해지고, 권위에 도전하거나 역할에 따른 기대를 부정하지 못하며 침착하게 확신에 차서 지시하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의지한다."[1]


 앞에서 언급했지만,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다룬 ‘비행기 추락에 담긴 문화적 비밀’,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대항항공 비행기 추락’ 사건은 특정 개인들의 ‘실패’가 아니라 조직의 상황과 경로 차원에서 바라볼 때 근본적 해결이 가능한 문제였습니다. 그가 제시한 사례 외에도 전세계 곳곳에서 매우 유사한 상황, 맥락을 가진 사고가 많았다는 것이 이를 방증 합니다.


 경로의 차원에서 대한항공 사례를 설명하자면, 물론 이들에게는 형식적인 ‘저항의 경로’는 있었지만 실질적 ‘저항의 경로’가 막혀 있었습니다. 매뉴얼 상에는 부기장 역시 위기 상황에서 비행기 조종간을 당길 수 있었지만, 실질적 ‘관행’ 상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기장의 명령을 거역하고 자신의 판단대로 어떻게 ‘저항’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논의와 훈련이 사전에 전혀 이뤄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때문에 그들이 처한 상황은 그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가와는 별개로 정확히 ‘스탠리 밀그램’의 전기충격 실험의 맥락과 동일 해집니다. 그리고 바로 이 맥락이 7~80년대 권위주의가 팽배했던 세계 항공업계가 겪은 크고 작은 추락 사건을 관통하는 화두였습니다.


 대한항공을 포함한 세계 항공기 업계가 깨달은 것은 ‘문화’와 ‘경로’의 중요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권위주의적 문화와 관습은 형식이 있더라도 이에 대한 유연한 사고와 실천을 어렵게 만듭니다. 문화라고 하는 것은 단지 추상적이고 모호한 분위기나 관습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문제(여기서는 문화)를 개선하려면 반드시 ‘전략과 프로세스, 그리고 그에 근거한 유연한 행동 연습’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조직에 문제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경로’가 마련된다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자, 이제 우리는 왜 많은 선도 기업들이 ‘솔직함_Candor’, 때로는 ‘급진적인 솔직함_Radical Candor’ 그리고 이를 위한 ‘심리적인 안전_psychological safety’이 왜 그토록 중요한 것인지 좀 더 다차원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두 부류의 키워드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우리에게 실질적인 성장과 혁신, 때로는 적확한 위기대응을 위한 실질적인 ‘상황’과 ‘경로’를 마련하기 위함에 있습니다. 다만, 이 구호가 그저 피상적으로 해석되어 본질적인 맥락은 상실 한 채 그냥 ‘생각나는 아무 말을 할 권리’, ‘무턱대고 편안할 권리’로 오용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 리처드 니스벳Richard E. Nisbett, 리 로스Lee Ross(김호 옮김), 사람일까 상황일까The Person and The Situation, 푸른숲,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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