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어 May 05. 2024

발걸음을 멈추고 듣던 노래를 마저 듣고,

  그러니까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았어. 출근할 때도 어렴풋이 나는 여름 냄새가 나를 설레게 하더니 퇴근할 때는 아주 화창한 햇살과 적당히 더운 온도가 나를 떨리게 하는 거야. 거리에도 활기가 넘쳐나고 온 사방이 파랗고 초록인 날씨였어. 동생 승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귀에 에어팟을 하나씩 나눠 끼고 노래를 들었어. 참 오랜만에 그렇게 했어. 고등학교 때는 자주 그러고서 둘이 산책했었는데 말이야.


  우리는 먼저 5월을 맞이하는 의미에서 잔나비의 '초록을 거머쥔 우리는'을 틀었어. 언제든 들어도 나를 초록색 무성한 나무로 만들어주는 노래지만 이 노래는 5월에 들으면 더 좋은 노래야. 첫 가사부터 오월이 나오거든.


오월 하늘엔 휘파람이 분대요


"사실 나 4월에도 들었어. 그런데 4월에 들으면 항상 뭔가 아쉽단 말이지. 아 아직 오월이 아닌데. 오월에 들으면 더 좋을 텐데 하고. 그런데 이제 오월이니까 더 마음껏 들을 수 있겠다."


  승은 노래를 듣자마자 저렇게 말했어. 나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드디어 오월이 왔다는 사실에 함께 기뻐했어. 이제 아무런 아쉬움 없이 초록을 거머쥘 수 있게 되었으니까. 우리가 오월에 느끼는 들뜨는 마음과 푸른 마음과 벌써 오월이라는 겸연쩍음과 아직 오월밖에 안 됐다는 안도를 모두 느끼며 우리는 저 노래를 들었어. 나는 노래를 듣는 내내 2022년의 대학 축제를 떠올렸어. 그때도 오월이었고, 지금보다는 더 더웠던 것 같아. 나의 첫 축제. 아픈 다리를 주물러가며 오래오래 서 있었던 그 축제. 땀과 습한 공기가 한데 모여 더 뜨겁게 느껴졌던 축제. 그 축제의 현장에 잔나비가 왔었거든. 그리고 첫 곡으로 '초록을 거머쥔 우리는'을 불렀어. 무대 위로는 비눗방울이 퐁퐁 올라오고 내 눈앞에서 잔나비가 노래를 부르고 있고. 옆에는 친구들이 있었어. 나는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벅차올라.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거든. 혼자서 2022년으로 돌아가 있는 동안 옆에서 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아마 승이 갖고 있는 초록을 거머쥔 순간들을 떠올렸겠지.

 

"언니, 뭔가 시원~하고 탁 트이는 여름 노래 듣고 싶어. 뭐 없어?"


  시원하고 탁 트이는 노래. 너무 어려운 부탁이야. '시원하고 탁 트이는'은 잘 모르겠고 여름 노래라고 하자 떠오른 노래가 있었어. 내 사랑 wave to earth와 전진희라는 가수가 부른 '여름밤에 우리'라는 노래야. 사실 나는 이 노래를 겨우내 들었지만 여름이 다가오면 꼭 여름밤에 이 노래를 듣고 싶다고 생각했어. 이름이 주는 의미가 있잖아. 가사에 오월이 나오면 그 노래를 꼭 오월에 듣고 싶은 것처럼 여름밤의 우리라면 여름밤에 들으면 더 좋을 것 같잖아. 겨울 동안 듣다가 잠시 잊고 있었던 이 노래가 생각이 나서 그 자리에서 바로 틀었어. 벌써 여름이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혼자 놀라기도 했어.


너와 함께 걷는 지금이 영원인 거야.


  순간이 영원이 되는 그 기분을 나도 알고 승도 알거라고 생각해. 우리는 만나면 꼭 연애 이야기를 빠짐없이 나누는데 그렇게 몇 시간이고 떠들다 보면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우습고도 위대하게 느껴져. 어렵고 머리 아픈 연애를 꾸준하고 성실하게 해내고 있는 서로를 기특해하며 응원하기도 해. 우리가 지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건 오늘 같은 순간이 있어서일지도 몰라.

 

  버스에서 내릴 때가 다 되었을 때 승의 추천으로 구원찬의 '내게만 느껴지는 사랑일까'를 틀었어. 구원찬의 섬세하고도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으며 버스에서 내리고, 마트를 지나치고, 횡단 보도를 건넜어. 정말 집에 다 왔는데 노래가 아직 끝나지 않은 거야.


처음으로

누군가를 바라볼 때에

그리움을 느껴


  도저히 이대로 들어가기 아쉬워서 마저 다 듣고 들어가자고 승에게 말했어. 아파트 단지를 몇 바퀴 돌며 더 듣고 싶은 노래가 많았지만 나도 승도 조금 지쳐있는 상태였기에 이 노래만 마저 들었어. 그러면서 생각했어. 오월은 발걸음을 멈추고, 혹은 늦추고서 듣던 노래를 마저 듣고 싶게 만드는 달이라고. 조금 돌아가고 느리게 가더라도 더 많은 노래를 듣게 만드는 날씨라고. 나는 이제 휘파람 부는 하늘이 어떤 하늘인지 조금 알 것 같아. 살면서 울고 웃으며 더 많은 가사를 알게 될 때마다 발걸음을 멈추고, 듣던 노래를 마저 들을 거야. 그러고서 다시 휘파람 부는 하늘을 맞이하게 되면 또 오월이 왔음에 감탄하며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걷자. 




작가의 이전글 내 손을 떠난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