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전통을 지닌 일본차 '잇포다 Ippodo'
우연히 '청수사'의 붉은 단풍 사진을 본 나는 비싼 비행기 티켓을 끊고 즉흥적으로 교토로 향했다. 해외여행이 본격화되던 시기였고 또 일본의 관광비자도 풀리던 시기여서 오사카역에는 한국인들로 북적였다.
처음부터 '잇포도'에 가려던 건 아니었다. 지도를 보다가 우연히 예약한 숙소 근처에 잇포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교토 도착 당일 그곳을 찾게 되었다. 오래 전 잇포도 관련 책을 읽으면서 언젠가 교토에 가면 꼭 들러야지 생각했었는데 그 날이 이렇게 빨리 올줄이야!
잇포도는 아주 고요한 교토의 뒷골목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마터면 그곳이 잇포도인지 모르고 지나칠뻔 했다. 나는 그곳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본차 '교쿠로'를 주문했다. 일본어를 알았더라면 조금 더 차에 대하여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텐데. 궁금한 점을 물었을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물론 번역기를 활용하긴 했지만 ㅠㅠ)
교쿠로는 호불호가 강한 차 중 하나이다. 적어도 내 주변에는 교쿠로가 어떤 차인지 아예 모르거나 알아도 싫어하는 이들이 많았다. 아니 전부 그랬다. 내 주변에 교쿠로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던가.
잇포도의 교쿠로는 일품이었다. '우마미(감칠맛)'가 어찌나 훌륭하던지. 이날 마신 교쿠로가 어떤 차인지 직원에게 여쭤본 후 같은 것으로 구입했다. 하지만 여행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와 안내된 내용대로 차를 우려보았지만 현지에서 마신 맛을 구현해낼 수 없었다. 내가 우리면 왜이리 쓴맛이 강해지는 것일까. 하...
일본에 오면 여러모로 많은 점들을 배운다. 이들의 장인정신이랄까.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상인이 학자들보다 대우를 받지 못하는 면이 있지만. 그리고 모든 게 빨리 변하고 사라져버리지만. 일본은 여전히 전통있는 상점들이 대우를 받고 존경받는 느낌이 들었다.
잇포도에 머무는동안 혼자 느긋하게 사진을 찍으며 차를 마셨다. 계절과 어울리는 예쁜 단풍모양의 디저트와 교쿠로가 참 조화로웠다. 가을의 한가운데 있는 기분이 들었다. 교토에 산다면 아마도 일주일에 두세번은 잇포도에 들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동안 그곳의 호지차를 사오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워졌다.
p.201. 다도의 세계는 심오하다고들 하지요. 마루에 거는 족자를 읽고, 꽃도 그 이름을 기억해두며, 계절의 변화에 맞춰 장식을 바꾸는 것에도 신경을 쓰고, 숯이 잘 탈 수 있도록 방법을 찾는 등 그야말로 국어부터 이과 과목에 역사까지 모든 과목을 아우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체의 움직임이 중요하다고, 선생님이 자주 말씀하셨어요. 오른발부터 딛는다든지 왼손으로 내려놓는 것 같은 세세한 행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걷는 것만 해도 스스로 몸의 움직임을 의식하는 것만으로 무언가 달라진다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했을 때 눈이 트이는 것 같습니다.
또 자세도 중요합니다. 선생님은 단순히 등을 뒤로 젖히는 것이 아니라, 배에 집중하고 정수리에 실이 있어 몸이 거기에 매달려 있다고 상상하며 움직이라고 늘 말씀하셨어요.
(중략)
이렇게 몸의 움직임에 대해 생각해보면 '정(고요함, 靜)'의 다도가 단번에 '동(움직임, 動)으로 바뀌며 한없이 흥미로운 것으로 다가옵니다.
- 차의 맛 (교토 잇포도) | 와타나베 미야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