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탐구
실수가 반복되면 사람은 쉽게 위축된다.
주위를 둘러보면, 열정적이고 능력 있는 스마트한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그들 중에도 때때로 허당스러운 모습이 드러나곤 한다.
예를 들어보자.
사장님까지 참석한, 다소 긴장된 분위기의 회식 자리. 나는 고기를 굽다가 동료에게 접시가 필요하다는 걸 눈치챈다. 센스 있게 접시를 챙기러 일어나지만, 순간 손이 미끄러져 옆에 있던 유리그릇을 와장창 깨뜨린다. 엄숙했던 자리가 단숨에 얼어붙고, 모든 시선이 나에게 향한다. 나는 연신 “에고, 죄송합니다”를 외치며 허둥지둥 수습한다.
집에 돌아오면 생각이 꼬리를 문다.
“열심히 잘하려고 했는데, 왜 이런 허술한 모습이 드러날까?”
“불완전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런 장면은 회식 자리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발표나 모임처럼 여러 사람 앞에 설 때도 비슷하다. 소수 앞에서는 괜찮은데, 사람이 많아질수록 ‘집단의 평가’를 의식하며 쉽게 위축된다. 심리학적으로는 ‘평가불안(performance anxiety)’이라고 부른다. 시선이 집중되는 순간, 실수로 망신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지는 것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바로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나를 인간답게 한다. 허당스러운 나, 위축되는 나, 당당한 나 — 그 모두가 온전한 나의 퍼즐 조각이다. 불완전함을 인정할 때 우리는 성장할 수 있고, 타인과도 더 깊이 연결된다.
우리는 종종 완벽해 보이고 싶어 한다. 그러나 때때로 허술함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를 드러내야 할까, 감춰야 할까?”
내 지인 중 한 명은 자신의 능력을 자주 언급한다. 덕분에 대단해 보이지만, 동시에 허풍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문득 “자기 PR”과 “겸손”의 차이는 무엇일까 싶다.
아마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 PR은 ‘나는 이 일을 잘해낼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의 표현이다. 하지만 지나치면 자아를 과장하게 된다. 반대로 겸손은 미덕이지만, 과하면 자신감이 없거나 실력이 부족해 보일 수 있다. 결국 균형이 중요하다.
문화적으로도 차이가 있다. 동양은 겸손을 미덕으로, 서양은 자기 표현을 능력으로 본다. 그래서 가장 바람직한 태도는, 구체적 성과를 사례로 드러내되 그것을 팀워크의 결과로 인정하는 방식일 것이다. 이것은 어떤 문화권에서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결국 중요한 건 타인의 시선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이다.
허당 같은 실수, 위축되는 순간, 자랑과 겸손 사이의 줄타기… 그 모든 경험 속에서 우리는 균형을 배운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불완전한 나조차도 나의 진실한 한 조각임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조금 더 자유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