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싱 피싱
썩둑, 썩둑.
칼로 잘 익은 사과를 써는 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진다.
아침 식탁엔 사과와 얇게 썬 당근, 요거트에 알룰로스 한 방울.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한다.
그 순간, 핸드폰에 울린 낯선 전화.
“고객님의 계좌가 위험합니다.”
짧은 한마디가 심장을 얼어붙게 만든다.
스며드는 불길함에 생각이 번쩍인다.
설마 내 모든 생활과 정보가 감시되고, 범죄의 표적이 된 걸까?
불안이 몰려온다. 보이스 피싱일 거야. 스스로를 다독여도, 공포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개인 정보 유출은 단순히 돈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듯한 불안감이 따라온다.
잠깐의 방심이 전 재산을 위태롭게 했다는 자책이 밀려오고, 범죄자에 대한 분노는 더 커진다.
해외에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어떻게 알았는지, 부모님께 보이스피싱 문자가 날아왔다.
내용은 이랬다.
“자녀가 물에 휴대폰을 빠뜨려 연락이 되지 않는다. 이 앱을 설치해 보조하면 휴대폰을 다시 사용할 수 있다.”
나는 그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한 채 해외에 있었고, 부모님은 순간 크게 당황하셨다. 다행히 카톡 통화로 직접 연결해 오해를 풀 수 있었고,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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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를 돌아보면 기술의 양면성을 쉽게 목격한다.
발전은 삶을 편리하게 했지만, 동시에 범죄자에게도 새로운 무기를 쥐여줬다.
내 주변에도 피해 사례가 꽤 많다.
나 역시 가슴을 쓸어내리는 오싹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다.
오프라인 쇼핑보다 온라인 거래, SNS, 금융 앱을 더 자주 쓰는 지금,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은 때로는 유용함보다 섬뜩함을 안겨준다.
과거의 사기가 전단지나 단순 전화였다면, 이제는 해킹과 AI 음성 합성까지 위협한다.
반복되는 뉴스와 피해 소식은 “피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심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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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 피싱의 피해는 돈만이 아니다.
한 번 속임을 당하고 나면, 은행 직원의 친절한 목소리조차 의심하게 된다.
일상 속 전화, 문자, 온라인 결제에 불안이 서성인다.
하이데거는 기술 발전이 인간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기술의 논리에 종속된다고 말했다.
스마트폰과 AI의 편리함에 기대는 동안, 정작 스스로 생각할 능력을 잃어가고 있진 않을까.
또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쉽게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 에 빠진다.
“내 아이디가 해킹당했어”라는 생각이 들면, 뉴스나 사례 중 해킹 관련 정보만 눈에 들어온다.
반대로 안전을 보장하는 정보는 잘 보이지 않는다.
기술이 주는 과잉 정보에 비판적 사고 없이 의존할 때, 인간의 자유와 본질은 약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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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역시 예외가 아니다.
중국과 동남아 등지에서는 국제 범죄조직이 콜센터를 운영한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해킹·피싱은 심각한 문제로, 각국은 GDPR이나 사이버 보안 법안 같은 제도를 강화하며 대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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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개인과 사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첫째, 개인은 비밀번호 관리, 의심 연락 거절, 금융 습관 정비 등 기본을 지켜야 한다.
둘째, 사회는 보안 기술 강화와 더불어 피해자 심리 회복 지원에도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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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첨단 기술은 분명 우리의 삶을 넓히고, 새로운 배움을 안겨준다.
그러나 그 빛을 온전히 누리려면, 기술을 쥔 손의 의도와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주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결국, 기술의 색깔을 결정하는 건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인간의 선택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