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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수진 Sep 04. 2023

길고양이

  산책하다 한 번씩 고양이를 만난다. 밖에 나오면  이렇게 귀여운 생명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즐겁다. 어제 비가 왔는데 어디서 비를 잘 피하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몹시 추운 날에는, 두꺼운 패딩 잔 바를 입고서도 발이 통통거려질 정도로 추울 때,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길고양이를 보면 너무 안쓰럽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만차가 되어 차를 밖에 세워둘 때는 오히려 반가운 마음이 든다. 내 차 엔진룸에 들어가서 추위를 피하는 고양이가 혹시 있지 않을까. 그 또한 금세 차가워지는 쇳덩이가 되겠지만.



그런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우수진

동그맣다 새끼들을 감고 누운 허리가
그렇지 않다 아파트 뒷 베란다는

부드럽다 새끼들을 핥아내는 어미의 혀는
그렇지 않다 외부인의 침입을 막는 베란다 철봉은

따뜻하다 어미 고양이 체온은 38도 새끼는 35도
그렇지 않다 매섭고 차가운 바람 냉담하고 하찮은 시선

풍족하다 어미의 부푼 젖에서 계속해 우유가 나왔다
그렇지 않다 마실 물조차 없다

안전하다 새끼들은 어미를 믿고 품에 파고든다
그렇지 않다 사람이 박스채 새끼를 내다 버리고 수건에 싸서 집어던졌다

따뜻하다 오리털 겨울점퍼를 입고 있으니까 목도리를 둘렀고 두툼한 양말을 신고 있다 미안한 마음이 점점 더워진다 커피를 사서 들고 나왔다 뜨거운 김이 올랐다 올라오지 말지

간 밤에 눕혀둔 똥기저귀를 주워 담는다 따뜻하다 똥기저귀는 안에 있고 양수에 젖은 새끼고양이와 몸을 푼 지 얼마안 된 어미고양이가 밖에 있다
 
나는 다시 안으로 들어간다



시시한지 / 우수진


위험이 볼록한 보도를 횡단하지만

초록불이 켜지면 걷듯이

값을 치르고 나면 꽃이 세계로 들어온다

풀꽃은 길고양이의 세계를 지키는데

아메리카노 한 잔에 불필요한 말은 빼고
쓸데없는 말은 서로 마주하지 않지


시시한지
생선 몸통이 두 동강 나는 일
벌어진 살갗에 굵은소금을 쳐대도
어둠의 아가미는 아무 말 없다

시시한지
아기 똥기저귀는 바닥의 온기로 노곤노곤해지는데 양수에 젖은 눈도 못 뜬 새끼고양이가 밖에 있는 일, 생명의 온기를 빼앗기는 일, 탯줄을 단 채로 얼어 죽는 일, 1년도 채 되지 않은 고양이가 어미가 되는 일, 위험이 서슬 퍼런 밖에서 갓난쟁이 새끼 다섯 마리를 혼자 돌보는 일

마지막 신음소리는 소용이 다해

딱딱한 벽을 겨우 한 두 번 칠 뿐이므로

시시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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