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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수진 Sep 04. 2023

나의 살던 고향은

나의 살던 고향은 / 우수진

우리 집은 탱자나무가 뒷담 노릇을 했다 귀신도 못 들어온다는 탱자나무를 심어놓고서 대문은 항상 활짝 열려있었다 심심하면  탱자나무의 가시를 툭 부러뜨려다가 손가락 껍데기만 살짝 통과하는 장난을 잘했다 가시가 바느질하듯 손가락에 달랑 거리며 매달아 졌다 마당에는 붓꽃이 만발해 그 봉오리를 터트려 손을 보라색으로 물들였다

힘든 육체노동을 해도 자고 일어나면 새날이고 그때는 젊어서 새날이더라 이제는 농사는 못한다고 엄마가 말했다 장성 하나 몫을 다 해내고 여자는 또 여자라고 중참에 밥까지 꼬박꼬박 차려내서 머리에 밥대야를 논까지 이고 지고 날랐다

옆동네에서 우리 동네까지 오줌에 떠밀려 왔다는 전설을 먹고 작은 동산에는 아카시아꽃이 무더기로 폈다 자전거를 타고 학교 마치고 가는 길은 사방이 꽃향기. 나는 자전거 받침대를 발로 툭 차고 언덕으로 곧장 달려갔다 실컷 아카시아 꿀을 먹었다

아롱이, 다롱이 백구 순심이 언제나 마당에 묶인 개가 있었고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개 삽니다 개 큰 개나 작은 개 삽니다 개 파이소 개’ 개장수 트럭에 한두 해 지나면 팔려나가기 일쑤였는데 동네 할머니들이 개가 요물 되기 전에 팔아야 된다고 해서 개가 땅 파면 팔아야 된다고 해서 새끼 낳으면 이 집 저 집 나눠주고 하얀 강아지만 키웠다 흰 강아지가 복을 가져다준다 해서 그래도 땅 파면 개장수한테 팔려갔다 강아지를 잘 모르던 시절이었다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나가는 밀양시내에는 거기서 제일 큰 보세 옷 가게가 있었다  근데 그 여사장 남편이 바람이 나서 여사장이 매장에서 목을 매달아 죽었단다 엄마 따라 시내 나가면 그 앞에 지나갈 때 기분이 오싹하고 무서웠다 진짜 죽었을까


우리 동네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남편하고 사이가 안 좋았던 여자가 집 마루에서 목을 매고 죽었다 했다 해그름에 둑 너머에서 일하고 내려오던 엄마가 그 집 마루와 눈이 마주치고 온몸이 오싹해 엄마야 하고 단숨에 내달려 집에 왔단다 술 마시고 노름하고 바람피우는 놈팡이들도 다 결혼하던 시절이었다 농사가 고돼도 넘치는 자유시간을 주체하지 못했다


동네 청년회에서 전국 방방곡곡을 관광차 대절해서 놀러 다녔다 대전에 꿈돌이 엑스포도 가고 서울도 가고 관광버스가 갈 수 있는 도시는 다 갔다 우리 가족끼리도 열심히 다녔다 매년 여름이면 얼음이 어는 밀양 얼음골 지금은 문을 닫은 부곡하와이 계곡에서 뜯어먹던 통닭 커다란 은색 쟁반 싹둑싹둑 썰리던 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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