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산 임차인의 법인 등기가 오늘 완료되어 다시 계약서를 작성하고 남은 열쇠를 넘겨주고 마무리했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지산임대가 되고 회사일도 떠나기 전에 마무리 할 건 다 했다.
산수 치과치료는 이번 주와 다음 주 토요일까지 하면 되고(교정이 문제다.) 산하는 체험학습 일주일 동안 내가 몇 끼라도 챙겨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항공사 사정으로 비행기표가 변경되었는데 터키 경유시간이 12시간에서 2시간으로 확 줄었다. 처음엔 변경되었다고 해서 순간 짜증 났는데 훨씬 더 나아진 거다.
새옹지마.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어떤 안 좋은 일이 벌어져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도 매일매일 두근거린다.
설렘이 아니라 어디서 어떤 문제가 터질지 모르는 불안감이 마음에 도사리고 있다.
어제 읽은 주역 내용 중 집이 없는 사람이 전세기간이 다 되어 나가야 할 때의 상황을 풍지관(風地觀)으로 설명했던 것이 지금 내 마음과 비슷하다.
바람이 대지 위를 불고 있으면서 정처 없이 방황하는 마음.
그럴수록 주변 상황을 잘 살피고 환경에 적응하라는 건데 떠나기 전의 내 마음은 여전히 앞이 흐리다.
간이 콩알만 한 나는 나 없을 때 내가 했던 일로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된다. 그래서 요령 안 피우고 더 신중하게 확인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려 일을 한다. 남한테 욕먹기 싫어서이기도 하고 나만의 책임감이기도 하다.
그냥 나한테 애썼다고 해주고 싶다. 앞으로의 내 운명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지만 모든 건 내가 선택한 거니까 받아들이고 적응하고 해결할 일이 생기면 풀어 나가면 된다. 아자 아자 파이팅!
산하 생일이다. 기숙사에서 미역국은 둘째치고 아침이나 먹었는지 모르겠다. 가족이 함께 있는 것이 당연한 것 같은 사회에서 자녀들이 크면(고등학생 이상만 되어도) 따로 사는 게 서로 트러블이 없다고 생각하는 나와 달리 희는 갈수록 큰 자식들을 정서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떼어놓지 못하는 것 같다. 본인이 중학생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고 통제하고 싶은 가부장적 생각의 발로일 수도 있다.
어제 기분 좋게 맥주와 회를 먹으며 이야기하다 또 욱해서 산수와 한바탕 했다.
내 속이 좁아질 대로 좁아져 있어서인지 산수의 말하나 행동하나가 모두 마음에 안 든다.
특히 나의 나쁜 모습을 산수가 자꾸 흉내 내는 것처럼 닮는 게 느껴져 화나고 미안한 여러 감정이 뒤섞인 느낌이다.
화를 가라앉히면 다시 창피함에 어쩔 줄 모르고, 사과를 하긴 했지만 이런 마음이 서로 계속 반복되니까 의미 없는 형식적인 미안함일 뿐인 것 같아 속상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몇 개월이라도 내가 나갔다 오면 좀 나아질까. 회사의 일들과 사람들을 모두 잊고 싶다.
분명 좋은 인연들도 있었지만 나와 너무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 같아 그 이질감을 참기 힘들었다. 내 자식들, 내 부모형제들과도 그러는데 누구에게 뭘 바라겠는가.
그러면서도 다시는 그런 조직 속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여기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나를 대견하다고 등 두드려주고 싶다.
오늘부터 하나하나 출국 준비하고 금요일에 산하 데려온 다음엔 가족들에게 맛있는 거 하나라도 해주자. 웃으며 기분 좋게 헤어져야 한다.
어떤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
부디 좋지 않은 일은 나한테만 일어나길..
엄마께 가야 하는데 이런저런 핑계와 합리화로 가지 않았다. 코로나 무섭다고 수도권에서 사람 오는 거 지방 사람들이 싫어한다고까지 하시는데 굳이 가서 걱정 끼치고 싶지도 않고 이 시국에 외국 나갔다 온다고 하면 엄청 심하게 걱정과 화를 표출하실까 봐 말도 못 꺼내겠다.
셋째 언니 말대로 그냥 가서 전화만 드려야 할까 보다. 내일 산하 데려 오고 화요일에 졸업사진 찍으러 또 학교 다녀와야 하니 장시간 운전이 생각만으로도 좀 피곤하다.
앞으로 6개월이나 쉬는데 뭘 그런 걸로 우는 소리냐.
자식들만 챙기고 부모님은 나몰라라냐.
하는 다른 쪽 마음의 소리가 나를 나무라지만
내 자식들은 온전히 내 책임이고 아직 내 손이 필요한 나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을 하고 만다. 부모님들께는 다녀와서 더 잘하지 뭐. 그러려면 나부터 추슬러야 하니까.. 하는 합리화로 마음정리를 한다.
하나의 문을 닫고 뒤돌아서서 다른 문을 열려고 하는 지금 불안함과 설렘이 뒤섞여 있다.
나에게 주어진 그 시간들을 정말 가치 있게 꽉 채워서 써야 한다는 의무감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감을 열어 나를 깨우고 새로운 나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 후자가 더 끌린다.
앞으로의 내 인생은 그저 나 자신으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나만의 순수한 빛깔로 고유한 모양과 무늬를 만들면서.
이것도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나를 살게 하고 키우는 자양분일 수도 있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 좋은 기를 받으려면 나부터 좋은 생각과 좋은 행동, 좋은 말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