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나를 타산지석으로 삼길 바라며
벤츠 살 돈으로 치킨을 사 먹었다. 두 마리.
사실 이 글을 쓸까 말까 고민을 여러 차례 했었더랬다. 자랑거리도 못 되는 일이니 어디에 떠들지도 못하고 혼자 속만 끙끙 앓고 있었다. 더군다나 브런치를 통해 일상 속에서 느끼는 소소한 감정들을 글로 남기는 재미를 보고 있던, 새해 초에 이런 일을 마주하게 되니, 글이 써지지가 않았다.
내 브런치는 전공 분야의 글을 쓰거나, 일상에서 깨달은 내용들을 에세이 형식으로 남기고픈 것이었는데, 마음에 불덩이가 들어있으니 어떠한 글도 쉬이 써지지 않았다.
사실 갑작스레 마주하게 된 사실은 아니다. 알면서 그냥 외면하고 있었던 내용이었다. 그런데 일말의 가능성마저 사라진 걸 확인하고 나니 요 며칠 마음이 참 씁쓸했다.
이 이야기는 나의 오래된 주식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회 초년생이던 2006년경 주식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당시를 회고하자면 중국펀드가 한창 상승할 무렵이었고, 국내 주가는 한창 상승세를 기록할 무렵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되지 않은 터라 학자금 대출을 상환하고, 결혼 자금을 모으던 그런 시기였다. 만나는 친구들마다 펀드를 이야기하고, 주식을 이야기했다. 수도권으로 취업한 친구들은 다들 아파트 이야기에 열을 올리던 시기였었다. 다들 자기 나름의 투자 방식에 열변을 토하고 있었고, 나는 주식을 선택했다.
모든 주식이 오르던 시절, 내가 처음으로 선택한 주식은 주연테크였다. 당시 삼보컴퓨터와 경쟁하고 있던 라이벌 업체였는데, 왠지 마이너 한 저 회사가 나의 마음을 끓어오르게 했다. 당시 300만 원 정도를 투자했었는데, 처음 약간 우상향 하는가 싶더니 그 후로 쭈욱 내려갔다. 지금 생각하면 그리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당시 내겐 큰 금액이었다. 매일 주가지표를 확인하고,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난다. 주식을 권했던 직장 동료는 한국타이어 주식을 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친구는 얼마 되지 않아 30% 정도의 수익률을 나타냈었다. 한 때 삼보컴퓨터가 상장 폐지되면서 반짝 상한가를 친 적도 있지만, 이미 손실은 커질 대로 커져있던 터라 손실은 전혀 만회되지 않았다.
그 후로 주식을 좀 멀리하나 싶었는데, 주변의 누구는 자사 주식으로 몇 천만 원을 벌었다느니, 억 단위의 금액을 벌었다느니 이야기가 너무도 자주,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당시 조선주가 강세를 나타냈는데 추천을 받은 주식 정보는 조선업 관련한 부산에 위치한 중소기업이었다. 첫 주식 투자에 놀란 것도 있고 해서 처음엔 백만 원 정도만 들어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STX에 근무하는 친구의 조언에 따라 팬오션도 비슷한 금액을 추가로 매입했다. 지나고 보니 이때가 내 주식 인생에서 가장 큰 기쁨을 준 시기였다. 두어 달 때쯤 지나 수익률이 50%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첫 번째 주식 투자의 손해를 만회할 수준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 첫 차로 모닝을 사려고 돈을 모으고 있던 터라 이 금액을 모두 주식에 쏟아붓기로 했다.
모닝 살 돈으로 소나타를 살 테다.
하지만 주식에 대한 정보는 없고, 욕심만 앞선 탓인지, 손을 대는 족족 주식은 하락세만 기록했다. 당시 기억나는 것이 오리엔탈정공, 대북경협주 중 이화전기 등이었는데 코스피 등록주는 하나도 없는 그런 소형주가 주를 이뤘다. 하락분을 채워보려 물타기도 제법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의 안타까움을 전해 들은 친구들이 나만 몰래 알고 있으라면서 알려준 알짜배기 주식들은 대부분은 파란 화살을 나타냈다. 그중 하락분이 큰 것은 -90% 까지 닿아있었다. 다행히 그때도 주식을 권유한 친구들을 원망하진 않는다. 그들도 같은 파란 화살의 개미들인데 어찌 원망을 할 수 있으리오.
다만 그들과 나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들은 손절을 할 줄 알았다. 일 년쯤 지나 다시 만난 친구와 이야기 끝에 추천해 준 주식 이야기가 다시 나왔는데, 친구는 놀라며 아직도 그 주식을 갖고 있냐는 것이었다.
응 그 주식 좋다며, 그냥 마이너스 난 김에 잡아두려고. 길게 보면 언젠간 오르겠지
사실 이때까지 들어간 돈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리고 한동안 주식엔 손도 대지 않았다. 같은 부서의 주식을 잘하는 후배 A를 만나기 전까진.
늘 스마트폰으로 주식을 달고 사는 이 후배 A는 주식으로 하루에 몇 백씩 벌기도 하기에 씀씀이가 컸다. 그동안 주식에 대한 조언도 몇 차례 해주었지만, 내 입장에선 주식에 호되게 당했던지라 어리석은 나를 깨닫게 해 준 비용으로 삼고 주식은 남의 이야기로 치부한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그 후배 A가 내게 솔깃한 얘기를 전해주었다.
“선배님, 이거 선배만 알고 계세요. 00 회사가 삼* 디스플레이에 납품하는 걸로 지금 내부 계약을 맺었는데, 이거 지금 사놓으면 2개월 내에 큰 수익이 날 겁니다.”
이 말은 종일 나를 흔들었고, 그래서 다시 주식에 손을 대기로 했다.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잡주(지금 보면 삼성전기, 한국전력 등 건실한 기업도 몇 있었다.) 들을 모두 정리하고, 나와 비슷한 처지의 선배에게 이 정보를 공유했다. 역시 나와 비슷한 호구 타입의 선배라 그런지 쉽게 투자에 동의했다. 그리고 아내를 설득해 적금을 해약했다.
모든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았다.
그리고 그 계란은 한 알도 남지 않고 다 깨져버렸다.
선배의 투자금을 비롯해 모든 주식은 내 계좌로 주문하고 관리했었는데, 그나마 현명한 선배는 중간쯤에 자기 (손실분을 감안한) 투자금만큼 환급해 달라고 했었다. 이 주식 가능성이 아예 안 보인다고. 그래도 나는 일말의 희망은 남겨두고 싶던지라 주식은 환매하지 않았다. 대신 환매금만큼의 비용을 드리고 선배의 주식을 내가 구입했다. 그리고 추가 매입도 실시했었다. 사실 이게 내가 아는 이 계좌의 주식 거래의 마지막이다. 그 후 8년 정도는 그냥 묻어뒀었다. 주식거래용 공인인증서도 따로 없었고, 직장도 옮기고 난 후라 주식은 잊고 지냈다. 애써 잊으려 했던 것 같다. 환매하지 않으면 아직 일말의 희망은 있는 것일 테니. 약 -90% 수준까지는 기억이 난다. 언젠간 묻어두면 뭐 조금은 회복할 테지. 사실 원금의 20%만 회복되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 돈으로 가족 해외여행이라도 한번 다녀오면 좋은 인생 경험으로도 삼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오랜만에 연락을 준 후배 A 덕에 잊고 지냈던 주식이 생각이 났고 늦은 밤 계좌를 확인하기 위해 접속해 보았다. 손실이 얼마나 되었을지, 어느 정도 원금을 회복했을지 두렵기도 설레기도 했다. 장기 미접속 고객이라 고객센터를 통하지 않고는 계좌 확인이 불가하였다.
다음 날 아침, 한참을 기다려 증권 고객센터 상담원과 통화를 시작하였다. 증권거래용 공인인증서를 재발급받아 남은 자산을 확인하였다. 첨엔 이 화면을 보고도 상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 그 전엔 평가 금액에 마이너스도 떠있고 뭐 그랬는데 평가금액에 아무 기록도 없었다. 혹시 증권사를 다른 걸로 알고 있다 싶었었다.
그런데 주식 거래화면을 한참을 살펴보니 알 수 있었다. 이 주식이 상장 폐지되었다는 것을. 그래서 평가 금액이 없었던 것 같았다. 예수금은 어떻게 발생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뭐 그 와중에 생겼거나 그랬겠지 싶었다. 이것이 나의 치킨 두 마리 값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내 맘은 비교적 평온하다. 나를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글쓰기로 얻어지는 정화 작용 이리라. 다만 차분한 눈으로 바라보는 나는 참 어리숙하다. 그간의 내 투자 형태를 보면 안목으로 본 투자는 하나도 제대로 없고, 세평에 따라 투자 흉내만 낸 것 같다. 내 눈으로 바라본 것이 거의 없었다. 투자 실패는 필연적이다.
덧 1) 친구나 지인들에게 정보를 구했지만 행여나 손실이 발생해도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덕분에 돈만 잃는 것으로 그칠 수 있었다.
다행히 주식에 대한 주관은 없었지만, 인간관계에 대한 주관은 가지고 있던 터라 남을 탓하진 않았다. 주식 투자는 오롯이 나의 몫이고 그로 인해 얻어지는 결과도 내 몫임을 주지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들이 소중하다 여긴 정보를 나와 나눠준 것에 감사하고 있다. 결과야 어떻든 간에. 고맙게도 나의 선배도(내가 유일하게 투자를 권유했던 한 사람이다) 나로 인해 손해를 입었는데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했던가? 비슷한 바보끼리 모인 덕이다. 당시 주식을 권했던 내 착한 후배 A는 여전히 그때 이후로 내게 마음의 부담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종종 얼굴을 보면서도 그동안 주식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는데 몇 년이 지난 늦은 밤 불쑥 이렇게 주식 이야기를 꺼내는 것 보면 말이다. 하지만 그 후배 A는 여전히 고맙고도 소중한 동생이다.
덧 2) 당시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기 전 내 바구니엔 삼성전기란 황금 계란도 조금 있었더랬다. 당시 구매가가 3만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며칠 전 확인했을 때 20만 원 수준이었다(물론 삼성전기 또한 00 주식으로 모두 몰빵 하는데 동원됐었다). 삼성 전기는 케이블로 주식만 종일 보시던 동네 슈퍼 아주머님이 추천해 준 종목으로 기억하는데, 지나고 보면 그분의 말씀은 대부분 옳았던 것 같다. 그 분과 더 친하게 지냈다면 지금쯤 포르셰를 몰았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