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재즈를 하고 있었구나!’

by Chris

"처음으로 졸업 공연을 연습하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공연이 끝난 뒤, 뒷풀이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엠마가 말을 꺼냈다.


"그럼 그 전에는 행복하지 않았어?"

"성취감 같은 건 있었죠. 그런데, 행복하다는 느낌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뭔가 가슴 한 가운데 찡한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이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초승달 같은 눈매로 해맑게 웃음을 짓는 모습을 보자, 굳이 묻지 않아도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았다.


같은 시공간에 있던 누군가가 “행복하다”고 말하는 건, 스스로 그렇게 느끼는 것 이상으로 기쁜 일이었다. 그 단어는 등불처럼 켜져 일주일 동안 함께한 모든 시간에 불을 밝혔다.


집에 돌아와 우리가 행복을 느낀 그 근원을 더듬어 보니, 그것은 윈턴 마설리스가 말한 재즈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 듯했다. 그는 재즈의 본질을 이렇게 말한다.


『자기 표현과 자신의 방식을 가질 수 있는 권리, 그리고 공통의 목표를 향한 협력,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책임감 사이에서의 적절한 균형.』- 윈턴 마설리스, 제프리 C. 워드, 《재즈 선언》 中


‘우리는 재즈를 하고 있었구나!’



이튿날 그의 책을 마저 읽다가 이런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당신이 당신의 스윙을 발견할 때 혹은 한 그룹이 스윙을 탈 때 시간은 날아가 버린다. 하지만 그 시간은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당신이 그곳에 도착하면, 리듬을 타는 것 자체가 목적지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스윙의 기쁨이다.』


공연은 3분 미만이었지만 우리가 도착한 곳은 무대 위가 아니었다. 함께 리듬을 타고 웃던 그 자체가 목적지였다.


한때, 춤을 유산소 운동처럼 한 적이 있었다. 나 역시 춤을 즐긴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춤 자체가 주는 희열이라기보다 주어진 것에 몰입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에 가까웠다.


“음악을 듣고 춤을 추고 있어요!”

“아니, 넌 그저 운동을 하고 있을 뿐이야.”

“그럼 내가 하고 있는 건 도대체 뭐지?”


선문답처럼 마음속에선 알듯 모를듯한, 아리송한 대화를 하다가 잠이 든다. 그러는 와중에도 이 길 위에서 하루를 살아가고 누군가를 만나고 잠깐의 깨달음을 얻고, 망각과 후회를 반복한다. 그러다 어느 시기에 이르면, 잊고 있던 소중한 가치 하나가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도 또렷하게 보이는 불씨가 된다.


그건 나 역시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함께한 시간 속에서 행복하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 서로 존중하고 번뜩이는 창의성을 공유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또 살면서 느낀 것들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최고의 XX”가 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팀이 있다.


그 안에서 나는 가진 게 없어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웃는 댄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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