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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영어 교사 Jan 07. 2021

열정과 끈기, 그 사이 어딘가에서

길 고양이 밥을 주러 따라나선 길

지난 2020년, 분수에 맞지 않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브런치에서 받았다. 한 번의 탈락과 두 번의 도전, 운이 좋았던 건지 나빴던 건지 두 번째 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들었고, 내 이름 앞에는 또 하나의 수식어가 붙었다. ‘작가’라니, 내가 ‘작가’라니!

여보  작가 됐어.”
“무슨 소리야 그게? 작가라니?”
“브런치라고, 뭐 인터넷에 글 쓰는 데가 있는데 거기 합격했어.”

별일 아니라는 듯 말을 내뱉었지만, 그때 나는 당장이라도  인생이 바뀌는  알았다. 사람들은 곧 내 글에 환호성을 내지를 것이라 기대했고, 머지않아 세상은 곧 숨겨져 있던 나를 발견하고 떠 받드리라 생각했다. 매 순간 들떠서는,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가슴을 부여잡고 매일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또 썼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키보드 자판 소리를 덮었을 때, 이게 바로 열정인가 생각했었다.

매일매일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정해진 시간표대로 수업을 해야만 하는 기계처럼 살아오던 내게 브런치는 작은 불쏘시개가 되어줬다. 가끔은 좋은 글을 썼지만 때로는 떳떳하지 않은 글을 대충 완성하고는 ‘발행’ 버튼을 눌렀고, 너그러운 독자님들의 ‘라이크’ 알림을 갈구했던 여러 달. 도박이나 마약에 빠지는 게 바로 이런 느낌일까. 뭔가에 홀린 듯, 단지 내 길고양이들 먹일 사료를 싸고 있던 아내에게 말했었다.

“자기야 쫌 만 기다려봐. 사료 정말 비싼 걸로 사줄게.”

뜨겁게 타오르던 열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 식어버리는 속도는 남들과 다르지 않게 내게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되었다. 마찬가지라는 말이 부끄러울 만큼 더 빠르게 식어갔다. 하루, 이틀이 일주일이 되고 나는 점점 글을 쓰지 않게 되었다. 글감들을 메모하고 퇴근 시간만 기다렸던 나는 예전처럼 숨이 죽은 채소처럼 집에만 오면 바닥에 눌어붙었다. 간간히 브런치 글들을 둘러보며 ‘라이크’를 눌러대던 일도, 어느 순간부터 내 마지막 글의 발행 날짜를 누가 볼까 망설여저 그만두었던 어느 날 저녁.

여보 내일 쉬는 날이니까 나랑 애기들  주러 같이  갈래?”

부엌에서 사료를 담아내던 아내가 어깨너머로 던진 말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알딸딸한 취기를 느끼며 방바닥에 눌어붙어 있던 나는 왜인지 모르게 선뜻 따라나서기로 했다.

따뜻한 물을 받고 사료를 위생 봉투에 담은 아내가 핫 팩 하나를 건넨다. 역시 아직 나를 사랑하는구만. 뭐 잠깐 나오는데 핫팩이라니. 포옹이라도 한 번 해줘야겠다고 생각하는 찰나에,

요즘 날이 추워서. 애기들  얼까  핫팩 주문했어. 얼른 흔들어서 데워줘.”

핫팩을 사정없이 위아래로 흔들면서 괜히 나쁜 말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일단 참았다. 뭐야, 핫팩이라니 참나.


지난여름, 집이 너무 더워 견딜 수 없을 때마다 우리 부부가 찾던 아파트 단지 내 정자에서 우리 부부는 길 고양이 가족을 만났다. 엄마 고양이 한 마리, 새끼 고양이 네 마리. 그중 새끼 세 마리는 어딘가 사라져 버렸고 남은 고양이 한 마리와 놀아주느라 여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른다.

아침저녁으로 찬 기운이 느껴지던 가을, 우리는 어미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새끼 한 마리를 집으로 데려왔고,   이후부터 지금까지 아내는 매일 밤마다 어미에게 밥을 주러 나간다.



한 시간 전부터 내린 눈이 신발을 절반만큼 덮을 정도로 쌓여 있는 길을 오늘도 따라나선다. 안으면 머리가 내 가슴에 닿을 만큼의 키가 오늘따라 더 커 보였다. 장마가 그치고 나뭇잎이 노랗게 물들어 갔을 때, 첫서리가 내려 가지 끝에 남은 마지막 잎사귀가 떨어져 나갔을 때도, 오늘처럼 눈이 펑펑 쏟아지는 밤에도 부랴부랴 사료를 싸들고 나가는 건 무엇 때문일까?

“자기야 이거 만져봐. 어제 놓고 간 게 아직도 따뜻해.”

임시로 만들어 줬던 고양이 집 앞에 놓인 물그릇을 들고 빼낸 핫팩 하나를 내게 건넨다. 못 미더워하며 만져본 핫팩은 예상외로 온기를 머금고 있었고, 물그릇에 든 물은 찰랑거렸다. 이 녀석, 대단하구만.

지나고 보니 내가 작가가 된 즈음부터 아내의 밤 길 배식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달아올랐던 내 열정이 식어가던 와중에도, 아내의 발걸음은 여전히 온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계절이 바뀌어도 식지 않고 끈질기게 남아, 밤새 물이 얼지 않게 따뜻함을 유지한 핫팩처럼 오늘 밤도 눈 길 위에 발자국을 새겨나가고 있었다. 아내가 밟은 발자국을 따라 밟아가며 그 온기를 느껴본다.

“아니 대체 언제까지 밤마다 나가야 돼?”
“나야 모르지. 언제까지 나갈지.”

멍청한 질문에 고마운 답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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