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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Beyou Nov 27. 2020

취준일기1. 면접 취소, 그리고 자아성찰

결국 자아실현

하지만,

어느 순간 '취준', '대기업'이라는 마법에 걸려
맹목적으로 취업에 달려들었던 것이다.


오늘 나는 코로나로 면접이 취소됐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뤄졌다. 해당 빌딩에 확진자가 생겼단다. 나는 빌딩 앞에서 2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지만, 바로 집으로 가면 되는 거였다. 면접 30분 전에 전화로 다소 난처하신 목소리로 해당 인사팀은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황당하고, 어안이 벙벙하여 앉아있던 벤치에 계속 앉아있었다. (코로나 2단계로 어디 카페도 입장이 안됐다.) 집에 가려고 일어나니 회사 빌딩에서 우글우글 사람이 나온다.


 코로나로 참 많은 변화가 있는 해이다. 코로나가 처음으로 심해지는 때에 대학원 졸업을 위해 교수님께 논문을 직접 가져다 드리지 못하고, zoom을 통해 피드백을 받고, 마스크 끼고 도서관에서 논문 쓰고, 어찌어찌 졸업을 했다. 코로나 1기 졸업생이랄까. 졸업 후, 졸업의 기쁨을 만끽하느라 신명나게 놀았다. 그리고 찾아온 취준 생활. 나는 학부 졸업하고 바로 대학원에 입학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취준을 제대로 겪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원 다니면서 취업 준비를 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어떻게 동시에 하지?', '왜 저렇게 고생하지?'라는 정도의 가벼운 놀라움 정도가 있었다.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보니 다들 그렇게 열심히 하는 이유가 있더라. 쉽지 않았다.


 8월부터 지금까지 포트폴리오 제작, 자소서, 면접 준비 등의 과정을 거치고 끝에 다다르고 나서야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취준 일정에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물론 주체적으로 취준을 하기가 힘들다고 생각은 한다. 기업의 일정에 나를 맞춰야 하니까.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 '나'에 대한 질문이었다. 나는 취준을 하는 동안 '기업'의 입장에서 나를 이렇게 생각하면 좋아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자소서, 면접 꿀팁대로 나의 취준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래야 붙여주니까. 면접은 다른 이야기였다. '왜 지원했는지', '우리 회사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생각하다 보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회사'가 좋아하는 역량에 나를 끼워 맞추려고 했다. 물론 이 역시도 필요한 과정이다. 하지만, 말하고 싶은 것은.. 이 과정에서 내가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분명 UX전공자로서 UX를 깊이 배우는 것이 계속 내 꿈이었다. 학부 졸업하고, 대학원을 입학한 것도 그 때문이고, 졸업하고도 전문 에이전시에 들어가서 전문 역량을 키우는 것이 다음 스텝이었다. 누군가를 인터뷰하고 그들의 이야기에서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일, 문제를 해결하는 일.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즐거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 '취준', '대기업'이라는 마법에 걸려 맹목적으로 취업에 달려들었던 것이다.


 이건 내가 원했던 것이 아니다.

(사실 이제는 내가 UX를 하고 싶은지도,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긴 하다.)


 하지만 왜 그랬을까?

 나는 나도 모르게 회사의 네임밸류에 나의 능력을 기대려고 했던 것 같다. 마치 회사 네임이 내 능력을 대변해줄 것처럼. 회사에 가서도 나는 능력을 키워야 하고, 꾸준한 노력을 해야 하는데 가면 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마치 고등학생이 대학생이 되면 공부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하지만, 내가 나의 능력을 성장시키려면 나는 꾸준히 나를 들여다보고, 나의 능력을 키워야 한다. 서툴더라도 꾸준히 노력하면서 묵묵하게 말이다.


 채용공고가 뜬 기업에 입사한 이후의 내 모습을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다. 기존에 가고 싶었던 전문 에이전시에서의 미래는 야무지게 설계해놓고, '대기업' 입사 후의 내 미래는 상상이 잘 안됐다. 회사가 별로라는 것이 아니라, 준비 과정에서 내가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채용 공고가 뜨면 마치 내가 그 기업을 목표로 했던 양 준비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곳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가면 끝! 이라고 생각했던 곳으로 봤던 것 같다. 거기 가면 만렙 찍었으니 됐지 뭐.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은 이러나 저러나 회사들에게(?) 참 실례되는 생각이다.


 평소에 자신이 있었는데 면접 준비만 하면 자신이 없어지는 이유였던 것 같다. 나를 회사에 8 정도 맞추고, 2가 내 모습이었다. 나는 나를 회사에 '지나치게' 맞추다 보니 나를 잃어갔고, 오늘 감사하게도(?) 면접이 취소가 되면서 내 취준의 길에 의문을 품고 돌아보게 되었다. 갑자기 머리가 맑아졌다. 앞으로 나에게 어떤 길이 펼쳐질지 모르겠지만 오늘의 생각이 내가 어떤 일을 하던 나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급 해하지 말자. 나는 내가 만드는 것이다.

우연하게도 면접이 취소되어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늘 친구가 취준이 끝나고 보니, 많은 것을 배웠던 것 같다고 하더라. 아마 이런 배움도 포함하는거겠지?



나의 취업일기 첫번째는 어쩌다 얻게 된 중요한 깨달음을 적게된 것 같다.

취준을 하는 분들에게나, 비슷한 생각을 했던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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