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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 Sep 08. 2021

지금의 내가 '나'라고요.

 은이는 열두 살이고, 1월에 태어났다. 빠른 년생이 2009년에 폐지되지 않았다면 이 아이는 5학년이 아니라 6학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타고난 운동신경 말고는 또래 친구들보다 조금씩 빨랐다. 사춘기까지도. 은이의 사춘기는 올해 열한 번째 생일이 지나면서 시작되었다. 깔깔거리고 웃고 다니던 아이는 말이 없어졌고, 맨날 엄마한테 안겨서 뽀뽀하던 아이는 엄마의 손이 닿으면 허락을 받고 손대라고 소리쳤다.  조증과 울증이 번갈아가면서 왔고 울증이 왔을 땐 방구석에 처박혀서 책을 읽거나 글만 써댔다. '고양이 전사들'이라는 책에 꽂혀서 팬카페에 가입하고는 카페에서 부캐를 만들고 가상의 관계를 맺으면서 온라인 친구들과 팬픽을 쓰기에 바빴다. 그래도 자신이 해야 할 숙제나 학교, 학원 같은 건 알아서 하는 편이라서 나나 남편이 아이가 방에서 갖는 혼자만의 시간을 참아내기만 하면 크게 부딪힐 일은 없었다.


 옆에서 쫑알거리고 깔깔거리며 웃어대던 은이가 방으로 들어가 버리니 우리 부부는 은이가 많이 그리웠나 보다. 그래서 카카오스토리에 어릴 적 저장 해 둔 아이의 영상을 종종 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아이의 사춘기 이전보다 더 자주 옛 동영상들을 보았다.

그날도 남편이랑 앉아서 은이가 대여섯 살 정도 되었을 때의 사진과 영상을 보고 있었다.

 

"웅~ 귀여워, 귀여워."

"이 맘 때 은이 데리고 와!"

"이때가 세상 제일 귀여웠었는데."


이런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방에서 혼자 책을 읽던 은이가 나왔다.

 

"뭐 하는 거야! 보지 말라고! 그런 거 보지 말라고!"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나 하고 흘깃 보던 아이가 갑자기 소리를 질러대니 어리둥절하던 아빠도 화가 났다.

 

"너야말로 뭐 하는 거야?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야. 아빠가 네 동생이야? 다짜고짜 어디서 소락 때기야?"

"보지 말라고! 그런 거 보지 말라고!"


아이는 아이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화가 나서 자기의 주장만 소리 질렀다.

 

"들어가! 들어가서 네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제대로 생각해봐! 생각 정리되면 나와!!"

아빠와 큰딸의 큰 소리는 몇 번 더 오고 가다가 결국은 아이가 방에 격리되면서 '일단정지'되었다.


 한 시간 즈음 흘렀을까, 은이가 나와서 아빠 옆에 앉았다.

 

"생각해봤어?"

"웅. 소리 질러서 미안. 잘못했어요."

"왜 그랬어?"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은이는 서러움이 터졌는지 갑자기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아빠, 엄마가 어릴 때 내 사진 보는 게 싫다고. 어엉엉"

"왜? 예전엔 같이 봤잖아."

"응. 그런데 이젠 싫다고. 진짜 싫어!"

"갑자기 왜 싫어졌는데?"

"아빠랑 엄마가 그때 나만 예쁘다고 하고, 보고 싶다고 하고, 지금의 내가 아니라 계속 옛날 나를 더 좋다고 하잖아. 지금 내 모습이 난데..... 어엉엉"


 남편과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아이는 지금 커가는 자신의 모습이 부정당한다고 느낀 걸까?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서로 마주  남편과 나의 표정이 말하고 있었다.


'아, 망했다. 잘못했다!'


 나는 울고 있는 아이에게 '가슴과 가슴'을 외쳤다. '가슴과 가슴'은 우리 집 규칙 중의 하나이다. 화해나 대화가 필요할 때 엄마나 아빠 무릎 위에 올라와서 마주 보고 앉아 가슴과 가슴을 맞대고 꼭 껴안고 나서 마주 보고 서로 이야기하는 것인데, 이 순간 아이가 순순히 올라올 리가 없다.  남편과 나는 우선 아이를 옆에 앉히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우선 아빠가 미안해. 네가 그렇게 생각할 줄 몰랐어. 그래도 우리는 지금 네 모습이 제일 좋아."

"아니잖아. 그러니깐 맨날 옛날 동영상이나 사진만 보잖아. "

"아니야. 그건 그때 추억이 좋은 거야. 네가 우리랑 안 놀아 주고 웃어주지도 않고 그러니까 예전에 그렇게 지내던 추억이 그리워서 그랬어. 그때보다 자기일 알아서 다하는 네가 훨씬 좋아. 당연하지. 그때 넌 혼자 잘 씻지도 못했고, 항상 아빠나 엄마가 도와주고 따라다녀야 했는데 그때가 편하겠냐? 지금이 편하겠냐?"


 아이의 울음이 조금 누그러졌을 때 난 다시 외쳤다. "가슴과 가슴!" 은이는 그제야 미적거리면서 내 무릎 위로 올라와 날 마주 보고 앉았다. 이젠 어른의 무게가 느껴진다. 꼭 껴안자 은이는 다시 울음이 터졌다. 꼭 껴안고 등을 토닥거리면서 말했다.


 "미안해. 엄마가 몰랐어. 네가 그렇게 생각할 줄...... 담엔 허락받고 옛날 사진이나 동영상 볼게. 안 본다고는 말 못 하고. 네가 말 안 듣고 엄마 기분이 안 좋아지면 어쩔 수 없이 보게 될 텐데, 너한테 허락받은 것만 볼게."


 사춘기의 아이는 성인의 몸과 아이의 생각이 뒤섞여서 혼란스러울 때다.  2차 성징을 지나면서 어른의 몸을 가지기 시작했지만 아직 열두 살, 초등학교 5학년이니 말이다.  나름대로 그런 변화에 잘 적응하는 것 같아서 남편도 나도 아이가 내적으로는 많은 혼란 속에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그냥 아이에게 꼬맹이 은이에게 하던 것처럼 장난치고 농담을 해도 아이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장난이고 놀아주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깐.

 

"아니야. 내가 싫어하는데 계속하면 그건 학대야. 내 정신을 학대하는 거야. "


은이가 우리에게 가르쳐줬다.  


"날 부정하지 말아 줘. 지금의 내가 나야. "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우리 가족은 조금 달라졌다. 아이들의 영상을 볼 때 아이들이 싫다고 하면 우선 협의에 들어간다.  그리고 자신들 앞에서 영구 재생 금지이거나 재생 허용인지 혹은 엄마, 아빠가 저기압일 때 치트키로 쓸 것인지를 협의한다. 지금까지 나온 파일들은 나 혼자 몰래 보거나 엄마, 아빠 화풀이용 치트키로 허락을 받았다. 은이는 적극적으로 사춘기 딸을 대하는 부모의 자세를 알려줬다. 문을 완전히 닫았을 때는 이유가 있을 테니 무조건 노크하고, 무얼 하냐고 계속 물어보면 안 되고, 당연히 친구한테 더 많이 위로받을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엄마라도 몸을 함부로 만지면 안 되고, 아빠랑 엄마는 저 없이도 잘 노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당연한 것들이지만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꼬맹이 은이한테 하던 대로 행동하던 우리는 은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열심히 학습하고 업데이트하던  초보 부모 시절처럼, 다시 열심히 사춘기 딸을 대하는 법을 학습하고 업데이트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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