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 사랑해

그때 그 시절 나와의 암호

by Walter

흥얼 흥얼, 두근 두근, 들썩들썩.


음악이 흘러나오면 어디서든지 손가락을 튕겨보고. 발로 박자를 맞춰보고. 아는 노래라도 나오면 흥얼흥얼 멜로디를 입 밖으로 소리내본다. 음악을 이토록 좋아하게 된 게 언제부터였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중학교 2학년, 오후 9시, 티비 채널 43번에서 우연히 흘러나온 애니메이션 주제곡이었다.


‘꿈속에서 널 보았어’라는 멜로디를 부르는 여가수의 목소리는 맑고 뚜렷하고 애틋하고 힘이 넘쳤다. 자연스레 귀를 귀울이게 되는 드럼, 베이스, 후반부의 일렉기타 솔로까지. 무엇보다 그 전체를 아우르고 주도하는 깨끗한 음색.

홀린 듯 노래를 감상하고서 제목과 가수를 잠깐 보여주길래 얼른 외워뒀다. 가수 ‘윤하’의 ‘꿈속에서’라는 노래. 포켓몬 극장판에 엔딩곡으로 나온 노래였다.


그때부터였나, 가수 윤하의 노래를 주구장창 듣고 다녔다. 비밀번호 486, 혜성, 기다리다, 연애조건 등등 잘 알려진 노래부터 스물 두 번째 길, 파란색 레몬, Audition 등 팬들이 주로 듣는 노래. 그리고 피쳐링으로 참여한 우산, 오늘 서울은 하루종일 맑음 같은 참여 곡과 일본어로 되어 뜻은 몰라도 들어도 질리지가 않던 일본 발매곡들까지.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치않는 내 이상형의 조건은 ‘목소리가 좋고, 눈빛이 아름답고, 말투가 예쁜 사람’이 되었다.

고등학생 1학년, 기타를 매고 학교 통학버스를 타던 그때는 얼마나 가수 윤하를 좋아했던지, 진짜 늦은 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동그란 보름달을 보면 윤하 얼굴이 겹쳐 보이고 그랬다. 윤하 트위터 계정으로 짤막한 응원글도 보냈다가 친구들한테 들켜서 카카오 스토리로 박제되기도 하고 그랬었더랬다. 무튼 그렇게 좋았다.


급식실 가는길에 이번에 새로 나온 신곡이라며 친구들에게 이어폰을 꽂아주면 친구들은 진저리를 쳤다. 자기들은 윤하보다 윤아가 더 좋단다. 그건 우리 엄마 아빠도 동의하는 바라서 할 말은 없었지만, 그래서 친구 다리를 한번 걸고서 도망갔지만, 그래도 그렇게 좋았다, 윤하의 노래와 분위기와 목소리가.

대학교 때에도 많이 들었다. 방황하거나 힘들거나 할 때. 윤하의 스물 두 번 째 길에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어디쯤 가고 있을까’라는 가사가 있다. 한창 전공공부가 적성에 안맞고, 친구들과의 관계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고, 욕심과 이상과 현실이 조화를 이루지 못 할 때 늦은 밤 학교를 산책할 때는 꼭 이 노래를 들으며 발을 움직였다.

괜히 북받쳐 큰 소리로 따라 부르다가 아차 하고선 이어폰을 빼고 주변을 둘러본 적도 빈번했다. 꼭 방심하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다가 뒤에서 누가 쓱 나타나 앞으로 빠른 걸음을 옮기며 내 심장을 들었다 놨다 하며 얼굴을 붉히게 했던 날이 부지기수였다.


‘전 목소리 예쁜 사람이 취향이에요.’ 나의 욕심을 채워주려 전화 할 때마다 높은 목소리를 내려 노력해줬던 그 때 그 사람은 잘 지내고 있을려나. 소식을 들을 순 없지만 (사실은 드문 드문 접하게 되지만) 여전히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 잘 지낼만한 사람이고.

야 야, 이 사람 목소리 되게 좋다하고 들려주면 뾰루퉁 해지기도 하고 카페에서 되게 좋은 목소리가 들리길래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고 만우절 장난을 쳤다가 펑펑 울었던 사람이었지. 그때는 그렇게 좋았다가도 또 이제 이렇게 멀어지기도 하나보다. 한번씩 매달렸다 붙잡았다 다시 연락을 했다가 등등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많았지만 여기까지만. 고맙다는 마음만 간직하기로만.

어쨌던 저쨌던, 중학생의 늦은 밤의 그 때 그 노래 [꿈속에서]를 듣고 펑, 내 머릿속과 마음속과 몸속에 터져나갔던 그때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홀린 듯 아버지 기타를 들고 기타를 튕기며 독학을 해보고, MP3를 사고, 비싼 헤드폰 사진을 스크린샷으로만 간직해 두고 두고 꺼내보고, 윤하의 사진과 동영상을 팬심으로 모으고, 주구장창 노래를 들어대고, 덕질을 하고, 이상형이 생기고, 목소리에 관심이 생기고, 이제는 드럼까지 배워보고.

스물 두번째, 스물 세번 째, 스물 다섯 번째, 스물 일곱번째를 거쳐 이제 서른번째 길이라고 흥얼거릴 때면 내 마음을 흔들어주었던 그 떨림이 여전히 잔잔하게 마음을 진동시키는 그 설렘이 그대로 남아있다.


노래 한곡으로 시작된 내 음악인생의 빅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늦기전에 나도 유튜브영상을 올려보고 싶다. 기타치는 드린이. 정도면 적당하지 않을까. 잘하기는 바라지 않는 것이 마음에 좋겠다. 그냥,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주는 것도 충분하고, 평범한 사람이 고군분투 하는 게 또 재밌을 수도 있으니까. 아마도?

윤하 팬 끼리 결혼을 한단다, 그래서 윤하가 축가를 불러줬댄다. 그리고 세상에, 윤하가 결혼을 한댄다. 하하, 30살 넘기 전에 결혼 해야되지 않겠냐고 라디오에서 말하는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30살은 조금 넘었지만 너무 축하할만한 소식에 내 입도 귀에 걸렸다.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니, ‘뭐? 소녀시대 윤아가 결혼을?’하길래 그냥 끊었다.


10년 넘게 좋아하던 가수의 결혼 소식은, 마치 머나먼 거리를 여행하던 우주 탐사선의 1차 연료통이 제 역할을 다하고 분리되어 인사를 건네는 것만 같았다. 당신의 또 다른 시작이 내게 얼마나 기쁨을 주는지 모르겠지. 그리고 나의 음악에 대한 열정 또한 앞으로도 긴 긴 여행을 펼칠 거라는 사실도. 전할 수 없지만 꼭 전하고 싶었던 사실.


글쎄, 팬이 함부로 사랑을 논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내 청춘의 외로움과 기쁨과 아픔을 달래주었던 당신의 노래들을 사랑하고 애정한다. 당신의 목소리에 위로 받기로 마음먹었던 어린 시절의 나를 사랑해본다. 그러니 당신도 평생 꽃길만 걷길. 앞으로도 좋은 노래를 더 많이 선물해주길.


나만의 감성을 키워주고 보듬어준 당신께 전하는, 전하지 못할 편지.

비밀번호, 486. 사랑한다는 그때 그 시절 나와의 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