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했다고? 에이씨. 뭐야”
축하 인사를 바란 것은 아니지만 대뜸 욕부터 먹을 줄은 몰랐다. 유부녀가 일하기 좋은 직장이라 말하던 회사 소개에 임신부는 논외였던 모양이다. 그렇게 나는 조롱과 비아냥의 경계에서, 권고사직으로 가장한 해고를 당했다. 임신 10주 차의 일이다.
억울함과 속상함 그리고 원망이 뒤섞였다. 분명 계획된 일은 아니었다. 이직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았던 때, 테스트기에 뜬 두 줄을 보고 누구보다 더 놀란 사람은 나였다. '왜 하필 지금…'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눈칫밥 실컷 먹을 생각에 안 먹어도 배가 부른 것 같았다. 육아 휴직은 못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머금고 꺼낸 이야기. 그러나 ‘해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곳은 육아용품을 판매하는 회사였기에.
“임신 계획은 언제 있어요?”
30대에 접어든 뒤, 면접을 볼 때마다 한 곳도 빠지지 않고 나의 ‘사적인 영역’에 대해 물어왔다. 마치 지원동기처럼 필수 질문으로 따라다녔다. 몇 번 어색한 공기를 겪은 뒤부터 결혼 여부와 임신 계획에 대한 답변을 미리 준비해 갔다. 최대한 후속 질문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잘 넘어갔더라도 복잡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출근 일까지 협의가 끝났던 한 회사에서는, 뒤늦게 기혼임을 알고 노골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하기도 했다. 그는 내 이름에 크게 X 표시를 하며 ‘유부’라 적었다.
안타깝게도 이런 일은 나에게만 일어난 특별한 경험이 아니었다. 『육아 말고 뭐라도』의 공동 저자,베베템 양효진 대표 역시 임신 사실을 밝힌 후 폭언에 가까운 말을 들어야 했다. 코코아 그룹 김성 대표는 3년간 임신하지 않겠다는 계획을 이야기한 뒤 겨우 취업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3년 후, 협의됐던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온 그녀의 자리는 없었다. 부당 발령을 받은 것이다.
물론 이와 정반대의 일도 있다. 『스웨덴 라떼파파』의 저자 김건 작가의 이야기다. 그 역시 이직한 지 몇 달 되지 않았을 때 육아 휴직을 신청하게 됐다. 남성들의 휴직이 당연시되는 스웨덴에 살면서도, 그는 회사에 폐를 끼친다 생각했다. 'K-정서'가 남았던 탓이다. 그러나 그의 매니저는 오히려 휴직을 축하하며 응원해 줬다. 그가 맡고 있던 프로젝트는 비싼 값의 컨설팅 업체가 대신했고, 동료들은 축하 파티를 열어 줬다. 당연히 그가 복직했을 때, 그의 자리는 그대로 굳건히 머물러 있었다.
임신, 휴직, 복직 과정에서 끊임없이 '퇴사'의 고비가 찾아오는 우리와 다른, 꿈같은 세상이었다.
회사 규모가 작은 경우, 휴직으로 자리를 비운 직원의 일을 동료들이 분담하는 경우가 많다. 실무진도 그들의 볼멘소리를 들어야 하는 경영진도 모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복직 후에도 이런 일은 계속 반복된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아이가 있는 여성, 임산부, 기혼 여성을 기피하는 이유가 아닐까.
당연한 것들이 당연해지는 세상을 꿈꾼다
임신이 민폐가 아닌 세상
임신 계획을 묻지 않는 면접
불안감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육아 휴직
사회와 단절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임신과 출산
그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내일의 나를 준비해 본다.
* 참고서적
- 육아 말고 뭐라도 (김혜송, 이다랑, 원혜성, 김미애, 김성, 양효진 공저 / 세종서적 /2019)
- 스웨덴 라떼파파 (김건 / 꾸리에북스 /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