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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지야 Feb 14. 2021

선배, 왜 이직은 결혼 전에 해야 해요?

“저 이직 하려고요”

"내년에 결혼한다며? 올해 안에 이직 꼭 해"


선배, 왜 이직은 결혼 전에 해야 해요?


「아이 없는 기혼 여성」 흔히 취업에 가장 불리한 조건이라 말하는 범주다. 물론 그들이 반드시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같은 조건에서 두 차례 이직에 성공했다.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며 재취업에 성공한 이도 있었고,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대기업으로 옮겨간 지인의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기혼 여성’으로 취업, 이직을 준비해 본 경험이 있다면 혹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다면 알 것이다. 그 범주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겪어야 했던 불쾌한 감정을.  







판교에서 진행된 그 날의 면접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팀 회의에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현재 회사가 직면한 문제까지 오픈하며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이다. 출근일까지 협의한 뒤 면접을 마쳤다. 그는 '드디어 팀원을 구했다'고, 나는 '드디어 취업에 성공했다'고 내적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겉옷과 가방을 챙겨 일어나려 할 때, 불현듯 그가 이야기했다.

“참, 결혼은 아직 안 하신 거 맞죠?”



마치 오랫동안 공들여 준비한 발표 자료가 통째로 날아가 버린 느낌이었다.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것은 그쪽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굳이 내가 보는 앞에서, 유리 벽에 이력서를 대고 X 표시를 했다. 「유부」라고 휘갈겨 쓰는 그의 뒷모습에서 쓴맛이 났다. 사무적으로 바뀐 그의 말투는 나를 더 서글프게 만들었다.

"논의 후 연락 드리겠습니다."




유부녀가 누구 잡아먹냐!

비슷한 상황을 몇 번 겪자 속상함을 넘어선 화가 났다. 그리고 주눅 들었다. '예비 임신부'라는 것에 나조차 나를 민폐라고 여기게 된 것이다. ‘결혼’, ‘임신’ 등의 키워드는 나를 점점 더 예민하게 만들었고, 자존감과 자신감을 앗아갔다. 거주지를 옮겨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당장 주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마음을 다잡고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결혼하셨나요?"

"네. 했습니다. N연차입니다."


"아... 임신 계획은 있으신가요?"

"딩크족은 아닙니다. 하지만 당장 아이를 갖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지금은 필드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큽니다. 저는 일에서 얻는 성취가 가장 높습니다. 아이를 낳더라도 계속해서 일할 것입니다."




결혼과 임신은 죄가 아니다. 

움츠러들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 그리고 1) 회사에서 어떤 일을 더 하고 싶은지 2) 어떤 성과와 성취감을 기대하는지에 대해 이어 말했다. 사적인 대화는 길어질수록 불리해진다. 그렇게 자연스레 주제를 바꿔 넘어가면, 대체로 관련 질문은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출산육아기 대체인력 지원금>
고용노동부에서는 육아휴직 또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부여에 따른 사업주의 노무비용을 완화하여 근로자의 고용안정 도모를 위해 대체 인력지원금을 지원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링크참조)


기혼 여성 고용을 어려워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다. 내가 그러했듯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이기 때문이다. 인력난에 시달리는 기업에서 직원 한 명의 공백은 타격이 클 것이다. 그러나 일과 가족 모두를 해내고 싶은 것이 '욕심'은 아니다. 공백기를 예측 할 수 있는 근로자가 처음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을 이유는 없어야 한다.

 





낙인찍히지 않는 세상

앞서 이야기를 나눴던 후배는 결국 결혼한 뒤 이직을 했다. 그녀 역시 몇 번의 불쾌한 경험을 했지만, 계속해서 커리어를 강화해 나갔다. 그녀처럼, 더 많은 기혼 여성들이 이직을 준비하고 면접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더 많은 성공 경험이 쌓여 마침내 어디에서도 '기혼 여성'이라는 타이틀이 불리한 조건으로 낙인 찍히지 않기를 바라본다. 



"선배, 저 이직하려고요!"

"그래? 결혼 준비랑 병행하려면 바쁘겠네. 경력 관리는 잘 했어?"


당연한 것이 당연해지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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