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만 물어보자. 너 회사 그만둔 거 후회해? 안 해?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 그녀는, 나와 함께 일하던 직장 동료였다. 그녀는 6개월 된 아이의 육아와 복직 사이에서 고민하다, 결국 회사로 돌아가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했다. 대신 남편이 육아 휴직을 쓰기로 했다고. 진심으로 잘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복직을 일주일 앞둔 그녀의 마음은, 엄마로써 편치 않았던 모양이다. 시들어 버린 그녀의 말에 "뭐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해?" 하고 답하려던 것을 서둘러 지웠다.
유치원에 입학하던 해부터 회사를 퇴사하는 날까지 단 한 번도 어딘가에 속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소속감" 어느 학교, 어느 회사에 속해 있다는 것이 나의 정체성을 대신했다. 때때로 일탈을 한적도 있으나, 어디까지나 소속감이 주는 가이드라인 속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래서 퇴사 후 처음 마주한 감정도 '무소속이 주는 공포감'이었다. 경력 중단에 대한 두려움, 평생 다시 일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 이제껏 쌓아온 커리어가 다 사라져 버렸다는 허무함. 어느 광고 속 대사처럼 "엄마라는 이름은 경력이 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내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시간은 그대로 흘렀고, 나는 '육아하는 백수'로 3년의 시간을 보냈다. 이력서에는 공백기가 생겼고, 월급 통장에는 더 이상 입금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시간이 마냥 무의미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하고 싶은 일에만 몸을 썼고, 마음이 시키는 일만 했다. 그것은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것과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이었다. 내면에 차곡차곡 쌓인 그것들은 어느새 나를 새 길로 인도해 주었다.
알을 깨다
이보다 더 알맞는 비유는 없을 것이다. 어딘가에 속해 있었더라면 가지를 뻗어도 직무와 연관된 범위 안에서 움직였을 나다. 그러나 잃을 게 없으면 용감해진다고 하던가? 이미 내 손아귀를 벗어난 기업명과 직무, 직급 앞에서 나는 훨씬 더 다양한 세상을 탐색할 수 있었다. 이 시간이 수험생 때, 취준생 때 있어야 했음을 뒤늦게 아쉬워했을 뿐. 그것은 '가족과 함께 더 오랜 시간을 집중해 보낼 수 있다'는 최초의 결심을 배제하고라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때때로 들려오는 지인들의 승진과 보너스 소식은 여전히 부럽다. 더 좋은 회사로 이직했다는 말을 들으면 홀로 낙오된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기도 하다. 후회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찾은 '가치'를 좀 더 믿어 보기로 했다. 성적에 맞춘 것이 아니라, 합격해서 일하는 게 아니라 오롯이 내가 느끼고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시작한 진짜 '나의 일'. 그렇기에 내게 퇴사는 이따금 후회스럽지만, 결코 후회스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그녀는 내게 꼭 듣고 싶었던 답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후회해. 그러니까 회사 관두지 말고 복직 꼭 해"
"후회 절대 안 해. 그러니까 그만두고 싶으면 회사 그만둬"
어느 쪽이었을까. 끝내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 나는 결국 바보같은 답변만 보냈다.
"후회할 때도 있고, 후회하지 않을 때도 있지. 근데 어느 쪽이라도 다 괜찮은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