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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나 Aug 22. 2018

모두가 옳다고 생각할 때 - 파수꾼

짜릿한 군중을 속의 당신 향한 경고

파수꾼 / 하퍼 리 / 열린책들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3.1운동이나 붉은 악마의 함성소리를 기억하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분명 평소에는 서로 투닥투닥하다가도 어떠한 계기만 주어지면 똘똘 뭉쳐 하나가 된다. 이러한 하나 됨은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피가 끓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하지만 연합이 언제나 옳게 작동되는 것만은 아니다. 특정한 단체의 사상, 이념 등에 휩쓸려 잘못된 연합이 일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놀랍도록 잘못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모른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옳은 일을 하고 있으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배신자나 적폐 세력이라 외친다.


그렇기에 모두가 하나로 뭉쳐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때,

우리에게는 우리를 경고해줄 파수꾼이 필요하다.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가서 파수꾼을 세우고 그가 보는 것을 보고하게 하되
- 이사야 21장 6절






평범하고 선량한 미국 남부 시골 도시


뉴욕에서 살던 진 루이즈는 휴가를 맞아 고향인 메이콤으로 돌아온다.


작고 좁아 이미 족보를 타고 올라가 보면 이미 거의 한 가족이라고 볼 수 있는 메이콤 마을은 한국 시골처럼 서로의 숟가락 개수도 알만한 그런 동네이다.


휴가 온 그녀가 하는 행동은 특별하지 않다.

연인과 데이트를 나가고, 그녀가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애티커스 핀치)와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고,

구식같은 생활을 강요하는 꼰대같은 이모와 설전을 펼치고, 괴짜같은 삼촌을 방문한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다.





평온 아래의 불편한 진실


전반부 동안 작가는 이 마을이 일상이 얼마나 평온하고 평범한지 보여준다. 이슈라고는 고작 핏줄과 평판을 따지며 서로 상종하네 마네를 따지며 뒤에서 흉을 보는 정도.


하지만 이 곳에도 밖에서부터 불어온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그로 인해 평범한 일상이 위협받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마을에서 가장 평판이 좋지 않은 난봉꾼부터 주인공 진 루이즈가 가장 존경해마지 않는 변호사인 그의 아버지 애티커스 핀치까지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열등한 검둥이들을 계속해서 차별 아래 두기로 결의한 것이다.


그리고 이 광경을 본 진 루이즈는 이 마을에, 그리고 자신에게 정의로움의 상징과 같았던 아버지 애티커스 핀치에게 큰 충격과 배신감을 받게 된다.


급기야 아버지와의 절연 선언을 하며 아버지의 사무실 밖으로 뛰쳐나와 뉴욕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싼다.





모든 사람들이 한 목소리를 낼 때


인종차별 정책 폐지에 반대하다니 정말 시대에 뒤떨어진 시골 사람들이다. 혹은 인간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린 단순히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미국에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던 시기를 지났고, 사람은 누구나 피부색에 관계없이 평등하다는 것을 교육받고 자라난 세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메이콤에 살았다면 어떨까. 혹은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이 메이콤과 같은 상황일 수도 있다.



평화, 연합, 행복


사실 위에 열거한 모든 단어는 정말 좋은 것들이다.

정말 우리 삶에 필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저 단어들이 들어간 구호 뒤에 숨겨진 것은 무엇인지 우리는 스스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메이콤의 사람들도 분명 위의 단어를 구호로 삼아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마을의 평화를 위해.

마을 사람들 모두가 연합하여.

자식들에게 행복한 삶을 물려주고자.


위와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깃발 아래 뭉치지 않는 사람들은 정신이 나갔거나, 사리분별을 못하는 사람이라는 취급을 받는다.

실제로 주인공 진 루이즈는 자신의 이모에게 뉴욕에서 뭔갈 잘못 먹어서 그런 것이라는 취급을 받는다.





휩쓸리지 말고 분별하라


파수꾼은 경고의 소리를 내는 사람이다.

위협이 찾아왔을 때, 혹은 틀린 길을 걸을 때 높은 망루에 서서 멀리를 내다보고 바른 길로 이끌어 준다.


누군가 무언갈 사면 따라 사야 할 것 같고, 모두가 가지고 있으면 자신도 가져야 할 것 같다.

물건뿐 아니라 뉴스도, 정보도 의견도 모두 주변 사람들 혹은 대다수의 생각에 맞춰가고 있지는 않은가?

다수가 '좋아요'를 누르면 자신도 유별나지 않게 '좋아요'를 누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충분히 교육받은 양심을 가진 한 사람으로써

왜 그래야 하는지 한 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각자의 삶을 충분히 살 수 있는 개인들이 끊임없이 스마트 폰에서 이야기해주는 소위 말하는 '트렌드'를 따라서 자신을 바꿔 나가고 있다.


충분히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을 만큼 배웠고, 자라서 어른이 되었는데

여전히 왜 누군가가 이야기해주는 옳아 보이는 소리만 들으며 따라가는 것일까. 이상하지 않은가?




소설의 결말로 돌아오자.


파수꾼의 주인공 진 루이즈는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배워왔던 가치 - 정의, 지식, 성경 - 에 반한 사람들의 행동에 맞선다.


손을 치켜들고 목소리를 높이고 당신들이 틀렸다고, 당신들이 옳지 않은 행동을 하고 있다고 마을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댄다. 그런 그녀에게 마을에서 괴짜 취급을 받던 삼촌이 와서 이야기한다.


너는 이제야 자주적인 사람이 되었다.

각자의 양심이라는 파수꾼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진 루이즈, 이 아가씨야. 너는 너만의 양심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어딘가에서 그 양심을 따개비처럼 네 아버지에게 붙여 놓았던 거야. 자라나면서, 또 어른이 되고도, 너 자신도 전혀 모르게 너는 네 아버지를 하나님으로 혼동하고 있었던 거야."






각자의 양심이라는 파수꾼


혹시 우리도 옳아 보이는 누군가에게 우리의 양심을 맡겨 놓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처럼 부모님일 수도 있고, 친한 친구 혹은 어떤 커뮤니티나 뉴스가

당신의 양심, 철썩 같이 옳다고 믿는 당신의 주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들은 결코 당신의 양심을 대체할 수 없다.


결국 판단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당신이다.


우리는 옳아 보이는 누군가의 의견에 따개비처럼 붙어서 가서는 안 된다.

오히려 주변 모든 사람들이 옳다고 해도 그것에 휩쓸리지 않을

옳고 그름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 - 양심이라는 파수꾼이 필요하다.






혹시 주변에서 옳다고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에 속아

파수꾼 이여야 할 당신이 스스로의 양심이 지금 눈을 가린 채 잠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파수꾼은 안녕하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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