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취미가 아니다.'
우아한 취미로 생각했던 '독서'를 취미가 될 수 없다고 말한 사람은 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교수다. 책을 취미로 읽어봤자 눈만 나빠지고 앉아 있으니 건강에도 해롭다는 것이다. 하지만 말과 다르게 그는 누구보다 책을 많이 읽고 또 많은 책을 썼다. 독서를 취미로 하지 말라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가 권하는 책 읽기는 '기획독서'다. 기획독서란 내가 알고자 하는 분야의 책을 공부하듯 치열하게 읽는 것을 말한다. 달리 말하면 질문하고 답을 찾으며 읽으라는 말이다. 어떤 정보를 찾겠다는 명확한 목적이 있을 때는 목적에 따라 답을 찾으면 된다. 이런 독서는 명쾌하다. 책 전체를 읽을 필요도 없이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어도 된다. 그렇다고 지식을 얻기 위한 독서만 의미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지식 독서를 통해 우리가 '앎'을 얻을 수 있다면 문학에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소설가 김영하는 우리가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공감'을 꼽았다. 우리는 소설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와 사람을 소설을 통해 만남으로써 나의 세계를 넓히게 하는 것이 문학이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책을 읽는 것만으로 저절로 얻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학창 시절 시험을 위해 작품을 분석하듯 기계적으로 학습하며 읽어야 하는 것일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역시 '질문'이다. 공감을 위한 질문이란 등장인물에 대해 애정을 갖고 그를 이해해보려는 적극적인 노력이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인물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한번이라도 그가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찾으려 애쓸 때, 우리는 공감능력을 키울 수 있다. 설령 그것이 머리로 하는 공감이더라도 의미가 있다. 그렇게 문학 작품 속에서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경험은 자연스레 현실로 전이된다.
아이가 어릴 때, 상담선생님의 추천으로 <딥스>라는 책을 읽었다. <딥스>는 놀이치료의 대가라고 불리는 버지니아 액슬린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다섯 살 소년 딥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제대로 된 감정 표현도 배우지 못했다. 이런 아이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선생님을 만나 감정과 언어를 되찾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책이다. 선생님은 조금 특별한 숙제를 내주셨는데 이 책을 부모 입장에서 읽지 말고 아이에게 감정이입하며 읽어보라는 주문이었다. 쉽지 않았지만 책을 펼칠 때마다 다섯 살 꼬마 ‘딥스’가 되어보기로 했다. 부모의 시각에서 딥스는 골칫덩어리다. 유치원에 적응하지 못하고 문제만 일으킨다. 선택적 함구증으로 소통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딥스 입장에서 책을 읽으면 방법을 몰라 허둥대는 꼬마가 보인다. 문제를 직면할 자신이 없어 회피하고 있는 부모의 모습도 보인다.
책을 덮고 내 눈 앞에 아이를 보았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 아이의 부족한 모습만 눈에 띄었다. 늘 걱정이 앞서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전전긍긍했다. 내성적인 아이 모습이 안타깝고 때로는 화도 났다. 그런데 책에서 '딥스'를 이해했듯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내 안의 문제가 보였다. 소극적이고 예민한 아이를 향한 걱정은 사실 우유부단하고 적극적이지 못한 내 모습과 닮아 있었다. 사실 나는 아이의 약한 부분을 가장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럴 수 있어. 엄마도 그랬으니까.' 그때부터 아이와의 관계가 완전히 달라졌다.
지식을 얻기 위한 독서든 공감을 위한 독서든 중요한건 질문이다. 좋은 질문은 새로운 길로 접어드는 문을 열어준다. 소설 속 주인공을 이해하려는 노력, 어려운 철학책 속 의미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현실을 바꾼다. 꼭 어려운 책이 아니어도 좋다. 어린 아이가 읽는 그림책에서도 질문을 던진다면 책은 '앎'을 넘어 '깨달음'을 준다. 자, 이제 책을 치열하게 읽었다면 나가서 좀 걷자. 오래 앉아 있는 건 확실히 건강에 좋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