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햇살> 2025년 12월호 #도넛을나누는기분
혹시 ‘시’를 만난 적 있니? 교과서에든 시집에서든 너에게 다가오는 시를 만난 적 있어? 나는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를 보다가 시가 내게 오는 경험을 했어. 김수영의 <풀>이라는 시를 읽는데, 갑자기 시가 내게 들이닥쳤어. '풀이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는 문장이 마음에 내려앉았어. 순간 가슴에 어떤 기운이 퍼졌단다. 아마 나는 그때, 절망 앞에서 바람보다 먼저 누워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되고 싶었나봐. 그날 깨달았어. 시는 해석하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는 걸.
아주 오랜만에, 옛날의 그 느낌을 만난 시집이 있어. 『도넛을 나누는 기분』이라는 시집이야. 스무 명의 시인이 자신의 청소년기를 생각하면서 시를 세 편씩 썼는데, 시를 읽다가 엉엉 울었지 뭐야. 60편의 시 속에 너무 다양한 '나와 너'가 있었기 때문이야. 청소년기를 살던 나와 60명의 친구들, 그리고 60개의 마음이 자기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그동안 청소년들과 무척 가깝다고 생각한 나조차도 발견하지 못했던 마음들이, 바람과 상처가, 견디고 있는 시간들이 읽혀서 몇 번이나 시 읽기를 멈춰야 했단다.
내가 가장 많은 글을 썼던 시절은 청소년 때였어. 그땐 정말 하루하루가 감정의 파도였지. 아무 일도 없는데 괜히 울컥하고, 작은 말 한마디에 갑자기 용기가 나기도 했어. 불길처럼 솟아올랐다가, 늪처럼 가라앉는 마음. 그걸 붙잡기 위해서 썼어. 낙서처럼 끼적인 시, 보내지 못할 편지, 순간의 감정을 쏟아낸 일기… 그게 나를 버티게 해줬거든.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수많은 감정의 파도를 삼킬 수밖에 없었던 친구들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어. 조퇴를 하고 집에 혼자 있는 게 안심된다고 말하고(<조퇴하는 날>, 황인찬), 팔목에 난 상처를 고양이가 그랬다고 둘러대고(<나만 보는 고양이>, 유계영), 솔직하게 말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매사에 꾹 참았다(<진짜 솔직히>, 유병록)고 고백하는 문장을 읽으면서 알게 됐어. 마음 한 조각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하루를 견디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말이야. 그때 비로소 깨달았어.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는 걸.
어쩌면 그래서 시가 필요한지도 모르겠어. 시를 통해서 우리는 다르지만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만나게 되니까. 내가 혼자 겪는 줄만 알았던 감정이, 사실은 누군가도 겪고 있다는 걸 알게 될 때, 우리는 조금 덜 외로워지잖아. 『도넛을 나누는 기분』이라는 제목처럼, 시는 그렇게 나눠지는 거야. 한 입 베어 물고, 나머지 반쪽을 건네는 것처럼. 내 마음을 시에 담아 보내고, 누군가의 마음을 시를 통해 받는 거지. 이렇게 생각하니 이 시집이 다양한 맛의 도넛이 담긴 상자 같아.
혹시 지금 네가 말 못할 어떤 감정을 품고 있다면 시집이라는 도넛 상자를 열어 보면 어떨까? 『도넛을 나누는 기분』이 아니어도 좋아. 책장에 꽂혀 있던 시집이든, 인터넷에서 우연히 마주친 시든, 무엇이든 상관없어. 해석하려 들지 말고, 그냥 천천히 소리 내어 읽어봐. 한 줄 한 줄 네 목소리로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시가 네게 올 거야. 마치 오래전 그날 내게 김수영의 <풀>이 왔던 것처럼.
그리고 마음이 움직인다면 너도 한번 써 보는 거야. 서툴러도 좋고, 운율이 맞지 않아도 괜찮아. 도넛도 가운데가 비어 있잖아. 완벽하게 채워지지 않아도 '도넛'은 도넛이듯이, 완성되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그게 바로 너의 시니까. 어쩌면 시를 쓰면서 너는 알게 될 거야. 네 안에 얼마나 많은 말들이 숨어 있었는지, 그 말들이 밖으로 나올 때 얼마나 가벼워지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