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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고은 Jun 17. 2021

어느 날, 남편은 카약을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주부 이기전 직장인의 삶을 살던 시절이 저에게도 있었어요. 

이제 막 대학교를 졸업해서 하이힐을 신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던 때가 있었죠. 

지옥철이라 불리는 2호선을 타면서도 하이힐을 고집했고 사무실에 올라가기 전에 1층 커피숍에 들려 테이크 아웃한 카페라테를 한 손에 들고 또각또각 소리 내며 출근을 했습니다.


점심시간.

동료 여직원과 점심식사를 하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은 재미있고 행복했어요. 누군가 립스틱을 하나 추천해 주면 '그래? 그게 그렇게 좋대? 나도 사야겠다'하며 우르르 같은 제품을 구입하고 또 어느 쇼핑몰 옷이 괜찮고 좋은지 공유하기도 했어요. 심지어 장바구니에 있는 옷 사진들을 보여주며 '이거 어때? 이거는?' 의견을 물어보며 인터넷 쇼핑도 함께 그리고 매일 하던 때가 있었죠. 덕분에 집 앞에는 항상 택배 상자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자 혼자 벌어서 혼자 소비할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어요. 내가 번 돈으로 내가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벌어 함께 소비한다고 생각하니 그전처럼 즉흥적으로 쇼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장바구니에 마구마구 담아놓고 중간중간 들어가 결제를 했을 텐데, 이젠 장바구니에 담는 것조차도 쉽지 않습니다. 장바구니 버튼에 마우스를 올리고 한참을 생각해요.


'이게 정말 나에게 필요한 물건인가?'

'정말 필요해서 사는 건가? 그냥 이뻐서 사는 건가?'


한 템포 쉬고 생각을 하기 시작하자 장바구니에 담기는 것들이 점점 줄어들었어요.

그렇다고 택배가 줄어든 건 아니었어요. 이제는 정말 필요한 생활용품을 사야 했으니까요. 

나를 치장했던 액세서리를 사지 않아도 사야 할 것은 많았어요. 

휴지. 칫솔. 치약. 이불. 주방용품 등


내가 사고 싶은 걸 살 때와 내가 필요한 것을 살 때의 쇼핑은 분명 차이가 있었습니다. 생활용품을 검색하고 주문하는 일은 저에게 일처럼 느껴졌어요.

아이가 태어나자 쇼핑은 점점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되었습니다.


"여보. 물티슈 사야 하는 데 자기가 좀 사줄래?" 

"자기야. 기저귀도 한 팩 남아서 슬슬 사야 할 거 같아" 


저는 일처럼 느껴졌던 쇼핑을 하나 둘 남편에게 넘기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쇼핑에 완전히 흥미를 잃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제가 쇼핑을 하지 않아도 집 앞 택배 상자는 줄지가  않는다는 거예요. 흥미를 잃은 저와 반대로 신랑은 쇼핑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한 두 개의 택배가 올 때는 궁금한 마음에 뜯어봤어요. 그런데 박스를 개봉하는 그 기쁨을 뺏는 거 같아서 그냥 부엌 한편에 두었습니다. 택배가 많은 날에는 가지고 들어오기도 귀찮아서 그냥 현관에 쌓아 놉니다. 퇴근하는 남편이 들고 들어오면 되니까요. 그러다 보니 저는 점점 쌓여있는 박스에도 무뎌지더라고요.


어느 날, 현관문이 열리고 바스락바스락 소리와 함께 남편이 거실로 아주 큰 물건을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놀란 저는 남편에게 물었어요.


"뭐야? 이거 도대체 뭐야?"

"배야"

"엥? 배? 무슨 배?"

"응. 카약이야"


테스트를 해봐야 한다며 열심히 바람을 넣고 있는 데,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아빠 이게 뭐야?"

"우와 아빠 이게 뭐예요?"

"우리 여기서 놀래요"

"이게 배야? 이거 배래"

"우리 이거 타자"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니 선뜻 화를 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어요.

멍하니 거실을 바라보았습니다.


"자기야 이게 뭐야. 왜 가정집에 이런 게 있어? 아니.. 하하 하하 하하"


거실 한가운데 자리한 카약을 보고 웃음이 났습니다. 

화를 내고 싶었어요. 당장 환불하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어요. 

말 문이 턱 막혀서 입 밖으로 웃음뿐이 나오지 않았을 뿐입니다.


"얘들아 아빠랑 주말에 배 타러 갈까?"

"네네네!!"


남편은 노를 집어 들며

"이걸로 배가 앞으로 나가는 거야, 방향을 바꿀 수도 있어. 얘들아 여기 앉아서 아빠 따라 연습해봐"

아빠를 따라 하는 아이들 얼굴에는 미소가 아니, 함박웃음이 떠나질 않습니다.

꺄르르르르 꺄르르르르


나만 제외하고 모두가 신난 이 상황


그 상황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뜩 캠핑을 다닐 때마다 항상 배를 타고 싶다고 말했던 그의 말이 떠올랐어요. 

머리로는 화를 내고 싶었지만 마음이 시키는 말로 대신했습니다.                                              


"그래. 우리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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