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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고은 Sep 19. 2021

딸 같은 며느리는 없다

명절 증후군


나는 시누이가 둘이다.


명절이면 큰 시누, 작은시누네 식구들이 모두 모인다.

 동네 친척들까지 오게 되면 그야말로 대 가족이다.


온 가족이 모이는 자리는 며느리인 나만 불편한가보다.

모두 자기 형제, 자매들이 모이기에 화기애애하다.

신나고 좋아 보인다.


객식구인 며느리와 사위는 그들처럼 신나지 않는다.

더구나 며느리인 나는 어딘가 계속 불편하다.

손님이 한 명 올 때마다 앞접시, 젓가락, 컵을 새로 챙겨드려 한다. 앉아서 밥을 먹는 데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먹으면서도 계속 배고픈 기분이다.


술도 잘 못 먹는 나는 분위기에 맞춰 술 한잔하고 나면 취해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는 게 힘든 건 당연했다. 남자들처럼 취해서 늦게까지 자면 안대는 나는 이 집 안의 며느리였다.

취해서도 안돼며 취할 수도 없는 시가의 술자리다. 


처음 몇 번의 명절은 적응하느라 힘들었다.

나름 며느리의 역할을 해내느라 스트레스를 받았다. 

명절이 싫었고  시가가 불편했다.


이곳은 남편이 지금까지 살아온 곳이고 그의 가족이다.  안 만날 수 없으며 그들이 나보다 남편과 산 세월이 더 길다. 시가 식구들은 싫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가족이다.


나는 잘하지도 못하는 며느리 노릇을 한다고 애썼다.

요리를 못하니 밥상이라도 차렸으며, 딱히 잘하는 게 없으니 어울려 놀기라도 했다.


노력을 했지만 그 누구도 만족할만한 '며느리 노릇'은 하지 못했다.


그렇다. 나는 잘하지도 못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다.


다 같은 가족인데 며느리라고 왜 더 일을 해야하는가.

가 시킨 것도 아닌데 '며느리'란 단어가 주는 압박감에 왜 스트레스를 받는가.

딸 같은 며느리 친 자매 같은 시누와 올케 사이로 지낼 수는 없는가.


분명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내가 불편할 꺼봐 더 챙겨주는 가족들이다. 


그런데  이토록 불편할 걸까?


아주 오랜 세월 '며느리'라는 단어에 스며든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나를 아직도 압박한다.


딸 같은 며느리도 결국은 며느리다.

자매 같은 시누 사이도 결국은 시누다.


딸이 될 수도 친 자매가 될 수도 없다.


정녕, 딸로 또 친 자매로 살 수는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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