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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고은 Jun 21. 2021

집에 오지 않는 남편, 그리고 우리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하원 하고 뭐하고 놀면 아이들이 재미있어할까?"


오늘은 남편이 집에 오지 않는 날이다.

지방으로 출장을 간 남편은 그곳에서 1박을 할 예정이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나. 우리 셋만의 시간이다.

본업인 육아로 돌아가 정말 신나게 놀아주고 싶었다.

'뭐 재미난 거 없을까?'


제일 먼저 키즈카페가 떠올랐다.

코로나19가 아직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키즈카페는 무서웠다. 야외 공간을 찾아봐야 했다.

'공원을 갈까? 그럼 자전거는? 킥보드는?'

공원도 패스다.


우선 놀이터에서 실컷 놀기로 계획했다.

나의 계획이었다.


서둘러 길을 나섰다. 일찍 오라는 아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나는 신나 있었고 들떠있었다.


아이들에게 물어봤더니 놀이터에서 논다고 했다. 계획대로 되어가는 듯했다.


놀이터에 도착하자마자 업무 전화가 왔다.

첫째는 어린이집에서 그린걸 내 얼굴에 들이밀면서 자랑하고 있다.

안 보이고 안 들린다. 난 일 때문에 통화 중이었다.

그러다 막내가 보였다. 쉬가 마려운 포즈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긴. 급. 상. 황이었다.


전화를 끊고 아이들 가방을 챙겨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로 향했다. 아뿔싸. 개방형 화장실이었는데 문이 잠겨있었다.

첫째는 보이지 않았다. 막내는 금방이라도 쌀 거 같았다.

노상방뇨를 했다. 그리고 첫째를 찾아보았다.


저기 나무 열매를 만지작 거리고 있는 아이가 보였다.


"왜 안 따라오고 그러고 있어 잃어버린 줄 알았잖아."

"엄마 나빠!"

"응?"

"내가 이거 그린 거 뭔지 보라고 했는 데 왜 계속 안 봐?"


나는 업무로 인해 통화 중이었고 막내가 화장실이 급해 첫째의 말은 듣지 못했다. 아이에게 설명한들 이해하지 못할 거였다. 힘이 빠졌다. 나쁜 엄마가 되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만 있다면 전화를 받지 않으리라 속으로만 이야기했다.


하원 후 지금까지 나도 첫째도 막내도 기분이 좋지 않다.


그때 아이들이 뭐 사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이스크림, 주스, 빵 중 고르라 했고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시원하게 먹으니 기분전환이 되었다. 개미도 보고 모래도 만지며 재미있게 놀았다. 갑자기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자는 막내. 휴관일이라 그럴 수 없다고 하자 다시 운다.

겨우 달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막내는 힘들다고 안아달라고 했다. 땡볕에 나도 힘들었다. 심지어 나는 가방도 3개나 들고 있었다. 안아줄 여력이 없었고 아이는 울었다.


그렇게 몇 번 반복되어 집 앞에 도착했다. 집 앞 놀이터에서 아쉬움을 달래고자 실컷 놀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엔 첫째가 화장실이 급하다고 했다. 집으로 왔다. 막내는 다시 나가자고 또 운다. 신발도 마스크도 벗지 않겠다며 현관에 서서 들어오지도 않는다.


아이를 달래기 위해 새로운 장난감을 꺼내 엄마표 미술놀이를 해주었다. 재미있게 잘 놀다 원하는 데로 되지 않자 또 운다.


......


지쳐버렸다. 하원 해서 지금까지 계속 우는 아이를 보며 엄마로서 길을 잃었다. 어떡하지?


아빠가 있었으면 훈육을 했을 것이다. 나는 "화"는 낼 수 있지만 "훈육"은 못한다.


계속 우는 아이와 지쳐가는 엄마.

그 안에서 같이 놀고 싶지만 말 못 하는 첫째

우리 셋

 어디서부터 어긋났을까?


남편이 막내 화장실만 데려가 줬어도

첫째가 그린 그림만 봐주었어도

내가 신나는 하루를 보낼 수 있었을 텐데


남편에게 전화했다.

"같이 한 잔 해 줄 사람이 없어서 너무 속상해"


잘하고 싶었다. 오늘 아이들과 행복하고 즐거운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오늘 재미있었어요! 이 한마디가 듣고 싶었다.  


현실은 잠들기 전까지 울었던 막내

혼자 놀다 잠든 첫째

그리고 엉켜버린 하루가 야속한 나


두 아이를 키우면 계획을 세우는 일이 무의미하다.

누굴 위한 계획인지도 모르겠다.

즉흥적인 아이들이게 처음부터 계획은 어울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불과 6시간 전의 파이팅 넘치던 나는 어디로 간 걸까?

내일은 더 재미있게 놀아줄 수 있을까?

계속 우는 아이 훈육이 필요하겠지? 내가 할 수 있을 까?


생각도 걱정도 많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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