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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고은 Jul 15. 2021

결혼 7주년, 5월의 신부였던 나는 변했다.




여러분은 기념일을 얼마큼 챙기는 편이신가요?     


저는 기념일을 꼭 챙기는 편이에요. 어릴 때부터 가족의 생일이나 부모님의 결혼기념일,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이면 온 가족들이 모여 케이크에 불을 켜고 기념일을 축하하며 함께 저녁을 먹었어요.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케이크 하나로 분위기를 내고 다 같이 모여 저녁을 먹으면 그게 이벤트였지요.     

그런 제가 만난 남편은 기념일을 챙기지 않는 사람이에요. 연애할 때도 밸런타인데이 빼빼로데이 등 모든 날을 챙기는 저와 달리 모든 날에 관심이 없는 무관심한 애인이었지요. 당시에는 그런 애인에게 참 많이 서운했습니다. 친구 남자 친구는 무슨 날이면 이벤트도 크게 열어주고 학교로 꽃바구니로 배달 오고 하던데, 나의 애인은 그런 거에는 전혀 무관심한 사람이었으니까요.     


매번 기대했다가 기대가 무너지자 이제 먼저 물어보기로 작정합니다.     

"오빠 내일 화이트 데이인데 뭐 없어? 뭐 해줄 거야?"     

"뭐? 뭐 갖고 싶은 거 있어?"     

갖고 싶다는 걸 사줄 수 있는 사람이지만, 기념일이라고 먼저 무엇을 사줄지 고민하고 깜짝 놀라게 하는 이벤트를 열어주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 뒤로는 기념일이 다가오면 갖고 싶은 걸 먼저 이야기했죠. 그런 사람과 오래 연애를 하다 보니 빼빼로데이에 편의점에서 아몬드빼빼로를 하나 사주면 그게 큰 감동이었덥니다.      

'이 사람 빼빼로 데이라는 걸 알고 준비했구나.'     

기념일 챙기는 방법부터 아주 많이 다른 우리 두 사람은 9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하기로 합니다. 5월의 신부를 꿈꾸며 힘들게 예식장을 예약하고 결혼날을 잡았지요.     

'이 남자 프러포즈는 해주겠지?'     

오랜 시간 만난 그에게 크나큰 이벤트는 이제 기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남자는 그런 저에게 크나큰 이벤트를 해주고 싶었을까요?     

퇴근하고 한강으로 데이트를 가자는 그는 따라갔고 잠시 후 저는 요트를 타고 한강 위에 있습니다.     

요트 안에는 드라마에서만 보던 데로 꽃과 와인, 케이크가 준비되어있었어요. 그 안에서 또 다른 이벤트를 준비한 이 남자. 프러포즈를 위해 요트를 대여한 이 남자와     

한강의 야경을 바라보며 우리 둘은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했습니다.     


2014년 5월 10일     

우리는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7년 뒤 2021년 5월 10일     

이제껏 한 번도 기념일을 잊은 적 없던 저는     

결혼기념일인 것을 까맣게 잃어버렸습니다.     


결혼기념일 축하해

즐거운 시간 보내 ~ ♡

친정엄마의 문자가 도착했어요.     


이 문자로 알게 되었습니다. 7년 전 오늘 내가 신부였단 사실을..     

기분이 좋은 것보다 한숨이 먼저 나왔어요. 어버이날 기념해서 여행 갔다 어제 집에 와서 아직 짐도 제대로 풀지 못했는 데, 오늘은  좀 아무것도 안 하면서 쉬고 싶었는데,,   또 기념일이 다가온 거예요.     

나는 왜 5월에 결혼을 해서 연달아 기념일을 만들었을까?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우리 결혼기념일이다!! 축하해~~~~"


밝은 목소리로 기념일을 축하는 남편에게 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 세상에 모든 기념일이란 기념일은 다 없어졌으면 좋겠어!

그래야 기념일 챙기느라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아도 되잖아. 

매일매일 그냥 평범한 하루였으면 좋겠어.     


저는 왜 이렇게 변하게 되었을까요? 기념일을 꼬박꼬박 챙기던 저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기념일이라고 해도 챙기고 안 챙기고는 본인의 선택인데 무엇이 저를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잠시 생각해보니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었어요.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낀 저는 그 한계를 뛰어넘지 못해 스스로에게 화가 났던 거예요.     

이날은 무려 10시간 넘게 잠에서 깨지 못하고 미라클 모닝에 실패한 날이기도 해요. 미라클 모닝에 실패하는 날은 개인적으로 할 일을 할 수가 없어 일이 밀리게 돼요. 그렇게 일은 쌓여가는 데,     

왜 나는 내 시간을 갖기가 이리도 힘든 건지.. 기념일 파티고 뭐고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욕심에 잠시 결혼기념일을 "짐"처럼 여겼습니다. 순전히 저의 욕심 때문에 결혼기념일 따위 그냥 넘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해보았어요.     

그래도 사람 마음이란 게 그냥 넘어가기에는 또 아쉬운 거 있죠?     

근데 또 뭘 하기에는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고 또, 많이 지쳐있었어요.      

그. 때! 저희 집으로 케이크와 꽃, 족발이 배달되었습니다.     

"또 기념일이야? 피곤하네~" 라며 우스갯소리로 말했을 뿐인데, 엄마는 저의 마음속을 들어왔다가신 걸까요? 기념일 축하한다고 맛있게 먹고 기념일 파티하라며 주고 가셨어요. 같이 먹자고 했지만, 결혼기념일이니까 둘이 먹으라고 하셨어요.     


탯줄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나의 뇌 어딘가가 엄마의 뇌 어딘가와 연결이 되어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정엄마는 어쩜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속을 꿰뚫고 계시는 건지, 엄마가 아니었다면 오늘은 그냥 넘어가고 다음날 바로 후회했을 거예요. 그래도 간단하게 파티라도 할걸 그랬나? 하면서..     

     

평소 같으면 우리 결혼기념일인데 엄마가 왜 이런 걸 준비했냐고

힘들게 뭐하러 이런 걸 사다주냐고 했을 텐데,

그런데, 오늘은 인증사진과 함께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엄마, 고마워

... 엄마 딸이라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사랑해.          

차마 보내지 못한 말도 마음에 담아 보냈습니다.

어쩌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우리 엄마.

     

사랑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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