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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짓는애 May 08. 2022

일단, 내가 먼저 살아야겠다

노력형 인간의 셀프 챙김 생존 일기 



남의 일 말고 내 일, 내 밥 먼저 챙기기로 결심한 파워 J 노력형 인간이 살아남으며 느끼고, 먹고, 경험하고, 생각한 모든 것들을 공유합니다. 5월 첫째 주도 잘 살아내셨나요? 저는 이렇게 살았습니다.




Diary / 오늘도 살아남았습니다 - 취향입니다, 축하해주시죠.

Movie / 나를 살게 한 영화들 - 닥터 스트레인지 2 - 대혼돈의 멀티버스

Food / 나를 살게 한 음식 - 돌나물과 우렁쌈장이 만나면




Diary

취향입니다, 축하해주시죠.


(이번 주 생존일기는 높임말로 글을 적어 보았어요.

감사했던 이 주의 마음을 더 다정하게 전하고 싶었거든요.)


한국의 5월엔 생일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사계절이 참 뚜렷한(했던..) 이 나라에서 4~5월, 그러니까 봄은 결혼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이니까요. 거기에 출산율이 참 높았던 90년대 언저리에 태어난 저는 5월만 되면 생일인 분들이 참 많아요. 그리고 그 생일자 중 한 사람이 바로 접니다. 네, 저는 5월 6일에 태어났어요.


매 년 생일 첫 끼는 늘 엄마가 끓여주신 미역국이었어요. 기억이 나지 않는 아주 어린 시절에도 생일날 사진을 보면 케이크와 각종 음식들 사이에 엄마표 미역국은 언제나 빠지지 않았어요. 고등학생, 대학생 때 부모님과 떨어져 살 때에도 엄마는 생일 주간이 되면 꼭 미역국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 냉장고에 넣어주시고, 생일 당일날 꼭 먹고 나가라고 신신당부하시곤 했어요. 늘 그렇게 매일 생일 아침이 되면 가족들 중 그 누구도 축하한다, 사랑한다는 간지러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보글보글 끓으며 온 집안에 퍼진 미역국 향기가 눈을 뜨자마자 요란하게 생일을 축하해주곤 했어요. 어느덧 서른한 번째가 되어버린 올해 생일 아침도 그렇게 엄마의 미역국을 먹었어요. 역시, 엄마의 미역국은 너무도 맛있었어요. 딱 제 취향을 저격하는 참기름 둥둥 뜬 맑지 않고 진한 국물의 미역국. 뜨끈한 밥을 말아 잘 익은 엄마표 김치를 턱턱 올려가며 한 그릇을 뚝딱했어요. 그렇게 용하지만, 요란한 엄마식 축하와 함께 몸도 마음도 든든하게 생일의 하루를 시작했어요.


제가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아빠 엄마는 당시 안산의 한 대형 백화점에서 홍삼 전문 판매점을 하셨는데, 아빠 매장 바로 옆에 장난감 매장이 있었어요. 그 장난감 매장은 4월 말부터 어린이들이 그 시절 가장 좋아하던 장난감들을 잔뜩 진열해 놓았었죠. 엄마 아빠는 생일이 다가오면 늘 그 가게에서 생일 선물을 고를 수 있게 해 주셨어요. (물론 1개입니다. 어린이날 선물과 생일 선물 한 번에 해결! 역시 우리 부모님 다 계획이 있으셨다.) 온 세상 어린이들이 다 선물을 받는 시기이니, 그 가게에는 온 세상 어린이들의 취향을 저격할 수 있는 상품들이 가득했어요. 장난감뿐 아니라 롤러브레이드, 킥보드, 한 때 유행했던 힐리스까지.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건 거기 다 있었으니까요. 그러니 저 역시도 늘 그중에서 골라도 좋았다고, 늘 나는 가지고 싶었던 선물을 받았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언젠가 머리가 크고 나서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가게의 선물들 말고 내가 다른 데서, 아예 다른 선물을 받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생일이 다가오면 저는 늘 그 가게에 가서 이 중에서 뭘 사지? 만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 당시의 제 생일 선물은 주관식이 아니라 선택지가 상당히 많은 객관식이었던 거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생일 선물은 주관식, 그것도 답이 한 개가 아닌 주관식이 되었어요. 언젠가부터 생일날 받고 싶은 선물에는 제 삶이 담긴 취향이 녹아들어 있더라고요. 아이돌을 좋아하던 사춘기 시절엔 아이돌 굿즈를, 꾸미기를 좋아하던 시기에는 화장품과 옷을, 요리를 하게 된 후에는 테이블 웨어를, 장군이가 오고 난 후부터는 장군이 선물을(!)... 그렇게 취향이 생기고, 그 취향을 알아주시는, 그러니까 저라는 사람을 참 잘 알고 계시는 고마운 분들의 섬세한 챙김 덕분에 생일이 더 행복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엄마 아빠의 객관식 선물만으로도 그 시절의 아름이는 정말 행복했지만요.)


고소하고 엄청 달달했던 비건 케이크


올해 생일날 밤, 저는 제 가장 소중한 친구들을 만났어요. 식사를 마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친구들이 깜짝 케이크를 준비해 주었어요. 무려, 비건 케이크로. 저는 완전한 비건은 아니지만, 페스코 비건을 지향하고 있는데요. 그런 저를 잘 알고 있던 친구들이 준비한 깜짝 선물이었죠. 케이크에 적힌 'vegan'이라는 글자를 보고 저는 케이크의 크림처럼 녹아버리고 말았어요. 이 아이들이 늘 나를 지켜보고, 참 섬세하게도 날 생각해주었구나 하는 고마움과 이렇게까지 나를 배려해주는 내 편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서 오는 안도감으로 바쁜 하루에 치여 경직되어있던 몸과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어요. 


언제나 그랬듯이 엄마의 미역국으로 시작해, 비건 케이크로 마무리 한 서른한 살의 생일. 늘 여전하구나 하고 시작했지만, 여전하지 않았던 생일. 31년간 변함없는 엄마의 생일 축하 방식도, 매년 달라지는 저의 취향을 알아주시고 섬세하게 지켜봐 주셨던 고마운 분들의 다정한 축하 메시지와 선물도 모두 참 감사했어요. 덕분에 5월 첫 주 저는 쉼 없이 취향을 저격당하며 특별히 행복하게 살아남았답니다.





Movie

닥터 스트레인지 2 - 대혼돈의 멀티버스



스티븐은 닥터 스트레인지가 아니라 시터 스트레인지였다.

지구 유니버스에 오은영 선생님이 있다면, 마블 유니버스엔 닥터 스트레인지가 있었다. 스파이더맨 (아, 삼스파 중 피터 파커)부터 이번 시리즈의 아메리카까지 마블 속 금쪽이 들에 게 정체성을 찾아주고, 사고를 치면 수습해주고, 성장시켜서 진짜 히어로가 될 수 있게 도와주는.

 

시터... 아니 닥터 스트레인지 2는 확실히 지금까지의 마블의 분위기와는 확실히 달랐다. 문과 서러울 정도로 이과 향기 물씬 풍기던 지난 마블 시리즈와는 달리 미스터리하고 공포스러운 고어물 같았고, 그건 솔직히 나의 개인적인 취향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취향을 떠나 마블은 역시 마블 했고, 화려한 CG와 '다정함이 세상을 구한다'는 맥락의 스토리로 또 생각거리를 남겼다. 이를테면 다른 메타버스의 내가 어떤 실수나 고의로 열린 포털에 의해 나를 보게 되었을 때 이 유니버스의 송아름은 행복하게 잘 살고 있구나 하고 돌아갈 수 있게 살아야겠다는 생각. 흑화 되는 것, 그러니까 악인이 된다는 건 무언가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한다는 생각. 선에 있어 최선은 무엇인가 같은 것들. 


재밌게 잘 보고 극장을 나왔지만, 왜인지 닥터 스트레인지는 다시 돌아온다는 엔딩이 전처럼 그렇게 심장을 뛰게 하진 않았다. 기존의 주요 마블 등장인물과는 다른 새로운 인물들이 여전히 낯설어서인지, 눈이 세 개가 된 스티븐부터, 고어한 느낌의 마블이 취향에 맞지 않아서 인지. (아마 둘 다 일듯) 


확실한 건, 기존의 마블 시리즈를 보고 나면 그래도 히어로가 우리를 구한다는 쾌감과 등장인물들에 대한 애정이 더 생기는 것 같았는데, 점점 히어로들이 대환장.. 아니 대혼돈을 더 만들고 등장인물의 희생을 시리즈마다 이어가며 그 혼돈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 같다는 것. (왜 마블은 내가 좋아하는 언니들을 다 내게서 앗아가는 거죠?)


아 물론, 이렇게 말하고 또 다음 시리즈가 나오면 극장에 바로 달려가겠지만.




Food

돌나물과 우렁쌈장이 만나면


우렁을 아낌없이 넣어 모든 숟가락마다 우렁이 가득하도록

1층 아주머니가 서해 시장에 다녀오셨다며 싱싱한 우렁을 한 봉지 주셨다. 푸릇푸릇한 채소들의 전성기에 우렁이 집에 생긴다면, 다른 선택지는 없다. 무조건 우렁쌈장. 골뱅이보다 조금 더 단단하고 쫄깃한 식감의 우렁과 콩이 살아있는 꼬순내 나는 된장, 매콤한 청양고추와 각종 양념이 하나가 되면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다른 반찬 없이 흰 밥에 우렁쌈장만 쓱쓱 비벼먹어도 한 그릇 뚝딱. 짜지 않아 푹푹 떠먹다 보니 한 냄비 가득 우렁쌈장을 만들었는데도 금방 바닥을 보이고 만다.


완벽한 한 숟가락

사실 우렁쌈장 냄비를 빈 통으로 만든 범인은 흰 밥만이 아니다. 공동정범(?) 돌나물이 있다. 지난주 고추장과 함께 비벼 먹었던 돌나물은 다시 또 우렁쌈장과 함께 이번 주 식탁의 주연이 되었다. 뜨거운 흰 밥에 차가운 돌나물 듬뿍, 우렁쌈장 한 숟가락 가득 넣고, 참기름 둘둘둘. 우렁이가 쫄깃하다가, 돌나물이 아삭하다가, 참기름이 고소하다가, 밥알이 달큰하게 씹히는 완벽한 한 숟가락! 엄마랑 둘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흔한 클리셰의 한 장면처럼 스뎅(스테인레스 아니고 스뎅이라고 해야 맛이 사는) 큰 그릇에 쓱쓱 비벼서 푹푹. 다른 반찬 없이 그냥 그 그릇 하나로 완성되는 완벽한 식탁.


참 사진 찍기 힘든 비주얼이지만 저 비주얼로도 충분히 군침을 나게 하는, 특별한 레시피가 필요 없는 이런 요리, 아니 요리랄 것도 없지만 그 어떤 요리보다 편안하고 맛있는 이런 음식들이 나는 참 좋다. 


우렁쌈장은 이렇게! 
- 우렁은 깨끗하게 씻어 살짝 데쳐두고, 종종 썬 청양고추와 양파 대파 통마늘을 참기름 살짝 두른 팬에서 볶아주다가 다시마 우린 물을 넣고, 집된장 반 시판 된장 반 잘 풀어주고, 다진 마늘, 고춧가루를 넣고 쿰쿰한 맛이 세다 싶으면 설탕을 조금 넣고 잘 섞이게 저어준 후, 보글보글 하면 데친 우렁을 넣고 잘 졸여주면 완성! (우렁을 넣고 너무 오래 끓이면 질겨지니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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