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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Apr 05. 2018

애엄마여도 괜찮아:
나는 왜 공부하는가

10개월 아기 엄마의 스위스 유학기 03


퇴사하고 서른 넘어 시작한 공부, 포기할 수 없었다.


이곳에 오기까지 10년을 돌아 돌아왔다. 대학시절은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데에 열중했다. 자연과학도가 걸핏하면 예술대학 전공수업을 기웃거리다 인문학을 복수전공까지 했다. 해외에서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싶어 취업도 미루고 국비지원로 장기 봉사활동도 다녀왔다. 대학원 진학 준비를 하려고 서울로 갔으나 얼떨결에 공공기관 기간제 직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공부 욕심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학위 욕심이었고, 제대로 공부하는 방법을 몰라 시험엔 번번이 낙방을 했다. 나의 20대를 되돌아보면 성실히 살았으나 요령이 부족했고, 탁월하길 원했으나 지극히 평범했다.   




그나마 20대에 내가 잘했다 생각한 일은 꾸준히 책을 읽어온 것이었다. 시작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SNS에서 유행처럼 번지던 1년에 책 100권읽기 운동. 뭐든 output이 있으려면 input이 압도적으로 많아야 한다는 논리에 따라 다독 행렬에 동참했다. 처음에는 읽은 책 리스트만 한두 줄씩 모으다가, 밑줄 친 구절을 옮겨 적었고, 짤막한 감상평을 남기기 시작하다가, 책읽기 10년쯤 되니 서평을 써야 읽은 책을 기억하게 되었다. 독서를 통해 알게 된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은 커져가고,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저자의 의견에 설득당하면서 더 넓은 세상에 대한 갈증이 생겨났다. 하지만 평범한 서민층 부모님의 주머니 사정을 알기에 유학은 감히 꿈꿀 수 없었다. 전환점이 된 계기는 신랑의 한마디였다.

 

넌 시험을 위한 공부보다는 연구 쪽이 맞는 것 같은데? 


몰랐다. 공부에도 종류가 있다는 걸. 고시공부처럼 단시간에 집중적으로 공부해서 시험에서 고득점을 받는 류의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관심분야의 다양한 문헌 탐독을 통해 장기간 공부 내공을 쌓아 올리는 사람이 있다 (물론 둘 다 잘하는 똑쟁이들도 많다). 나는 전자에 속하는 사람은 아닌 건 확실했다. 시험에 떨어질 때마다 난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내가 잘하는 공부는 따로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가능성을 인정해준 신랑에게 고마웠다.


시험 공부와 연구를 위한 공부 방법은 다르다. 시험을 위한 공부가 연구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유학와서야 깨달았지만.



일단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나한테 연구가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했다. 두 번째 학기 중간 무렵, 직장을 그만두고 풀타임 학생으로 돌아섰다. 세 번째 학기에 마음을 굳히고 유학 준비를 시작했다. 전공에 대한 흥미와 확신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나이도 많고 유부녀인 내가 출산까지 겪고 나면 경력 공백이 생겨 동종업계 재취업이 쉽지 않을 거란 두려움도 있었다. 당시의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둘 뿐이었다. 한 우물을 파서 끝장을 볼 것이냐, 공부는 적당히 하고 사회가 내게 '여성'으로서 요구하는 역할에 순응할 것이냐. 여기에도 확실한 건 있었다. 


살림에는 재능도 취미도 없다는 사실

관심분야 새로운 지식을 접했을 때의 기쁨

알고 있는 것을 글로 옮기고 나서 느끼는 성취감

상명하복의 조직생활보다는 어느 정도 자율성이 보장되는 환경에 편안함을 느낀다는 점


회사의 이름표를 달고 6년을 보낸 후 깨달았다. 내겐 진짜 공부가 필요했다. 





유학을 결심하고 (+ 임신 사실을 알게 되고) 나니 나보다 먼저 이 길을 택한 선배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미국으로 유학 가서 아기가 생겨 한국의 친정으로 1년간 보냈다는 선배 엄마, 유학중 아기가 생겨 남편이 1년간 육아휴직을 내고 육아를 전담했다는 선배 엄마, 박사 학위를 받고 국제기구에서 job offer가 와서 백일 아가와 출국해 기관에 맡기고 일했다는 선배 엄마. 유학생 남편을 살림, 육아로 성공적으로 서포트하고 돌아와 고이 접어뒀던 자신의 꿈을 다시 펼치고 있는 엄마도 있었다. 모두 내 결심을 존중하고 격려해주셨다. 이 길을 가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애엄마도 할 수 있어!
오히려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쓰는 법을 터득하게 될 거야.    



부활절 연휴인 오늘도 하루 종일 아기와 씨름하다 밤 열 시가 되어서야 잠든 아이를 두고 책상 앞에 앉았다. 이제야 나만의 시간이 생겼다. 남들보다 생산성이 배로 높아야 주어진 시간 내에 과제며 시험공부를 끝낼 텐데, 언제쯤 시간을 압축적으로 쓸 수 있는 스킬이 생기려나. 어떻게든 버티다 보면 알게 되겠지.


내겐 공부해야 할 이유가 있다, 오늘도 마인드 컨트롤. 




브런치 메인에 소개되었어요. 라이킷해주시고 구독해 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더 생생한 유학기,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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