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렌트하기
나고야에서 시즈오카로 이동했던 건, 도쿄로 가기 전에 한 군데를 더 들르기 위함도 있었다. 바로 후지산을 가까이서 보는 것. 시즈오카 시내에서도 날씨가 좋으면 후지산이 보이고, 미호노마츠바라 같은 곳도 후지산을 보기에 좋지만 목적지는 조금 더 가까운 곳에 있었다. 최종적으로는 가와구치코 호수에 가는 거였는데, 그 전날엔 차를 렌트해서 시즈오카 현의 곳곳을 둘러볼 예정이었다. 시즈오카 시를 지나 대부분은 '후지노미야 시'에 있는 곳들이었다.
일본에서 렌트를 한 적도, 운전을 한 적도 물론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과정에서 한국에서 렌트했던 경험과 달랐던 몇 가지를 적어보자면 아래와 같다.
1) 연료는 Full to Full 원칙
연료는 무조건 가득찬 상태에서 다시 가득찬 상태로 반납해야 한다는 점. 과거엔 우리나라도 이랬다고 하고, 현재도 '원칙상'으로는 그렇게 하는게 맞다고 들었다. 다만 그간 일반 렌트카 업체나 쏘카/그린카와 같은 공유차량 서비스를 이용했을 땐 한번도 그렇게 했던 적은 없었다. 대부분 '수령했을 때와 비슷한 연료 정도'로 반납을 하는 형태였고, 연료 상태에 그렇게 신경을 쓴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특히 공유 차량 서비스를 빌렸을 땐 바로 연료를 넣어줘야 하는 상태인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일본에선 이걸 정말 꼼꼼히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렌트카 업체 인근의 주유소 지도를 보여주며 이런 곳에서 연료를 주유하고 돌아오라고 안내하기도 했다.
2) 렌트하는 차량의 상태가 굉장히 좋았다
차량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차량의 상태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외관의 경우 비교적 한국은 자잘한 흠집이나 상처가 난 상태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그걸 굳이 신경쓰는 타입도 아니긴 했지만, 때로는 누가봐도 사고의 흔적이 남아있는 경우도 있었고. 결국 한국에선 받자마자 차량의 사진을 찍어서 나중에 '내가 한 게 아니'라는 증거로 삼곤 했는데, 여긴 애초에 받을 때 외관이 완벽하게 깔끔해서 사진을 찍을 필요도 없었다. 한국에선 자잘하게 상처가 나도 '이미 있는 거에 한 줄 추가하는' 수준이라 별 부담감을 느끼지 않았는데, 너무 깔끔하다 보니 오히려 '정말 조심하게 운전해야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3) 좋게 말하면 꼼꼼하고 확실했고, 나쁘게 보자면 과정이 복잡하다고 느낄 법도 했다
일본을 여행하며 구석구석에서 느낀 거지만, 정말 매뉴얼을 중시하고 또 그걸 지키려고 한다. 최근에 한국에선 아예 비대면으로 빌리고 반납하는 일이 잦아서 몇 가지 주요 안내사항들을 휴대폰으로 전달받고 또 알아서 반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차를 빌리는 과정에서 다양한 규칙이나 원칙을 익힐 일도 거의 없었다. 물론 내가 외국인이라는 점, 일본에서 운전이 처음이라는 것 때문에 더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정말 꼼꼼하고 상세하게 일본에서 운전하는 원칙과 차량을 빌리고 반납하는 매뉴얼을 보여주며(생각보다 상세한 부분들이 적혀있었는데, 일본답게 '그림'으로 표현한 게 많았다) 교육을 받았다. 물론 일본에서의 운전이 처음이니 만큼 그런 설명을 듣고 싶기도 했다.
4) 일본 특유의 안내 방식을 만날 수 있었다
3과 이어지는 것인데, 일단 빽빽이 인쇄된 종이 책들이 많았다. 그것을 통해 직접 넘겨보면서 확인을 주로 했다. 빌리는 사람 입장에서 보이는 화면을 띄워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서류 기반이었다. 대부분의 내용을 휴대폰으로 전달받고, 화면을 통해 렌트카 계약에 사인하고, 휴대폰에서 다시 링크를 통해 사용 방법이나 규칙 등을 전달받거나 하는 한국과 달리 휴대폰을 통해서 전달받는 건 거의 없었다. 일일이 서류를 보고 대조하며 넘어가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ETC카드 대여 여부와 보험을 체크하게 되는데, ETC는 이해하기로는 고속도로 하이패스 카드와 같다.대여하는데 한국돈으로 3천원 가량 했던 것 같다. 해당 카드를 대여하면 고속도로 이용시 하이패스와 같이 전용 도로로 다닐 수 있다. 물론 차후에 고속도로 이용료는 렌트카를 반납하며 추가로 정산했다. 보험의 경우 한국과 비슷하게 3단계 정도에서 고를 수 있었는데, 한국에선 주로 부담금을 올려서 완전 자차로 했었는데(그래도 2-3만원 정도 추가되는 정도라), 여기선 보험 옵션에 따라 단가 차이가 큰 부분이 있어서 기본형 정도로 했던 것 같다.
차량에도 다른 점이 있었는데, 우측에 운전석이 있다는 대표적인 걸 제외하면 기억나는 건 아래와 같다.
1) 차량 내부에 있는 내비게이션은 P 모드에서만 작동이 가능했다. 정확히 P모드였는지는 확실하지는 않은데, 명확한 건 '차량 운행 중'엔 작동이 불가하다. 나는 휴대폰 거치대를 들고가서 휴대폰 구글 맵을 통해 내비게이션으로 썼기 때문에 내비를 쓸 일은 잘 없었지만 신기한 경험이었다.
2) 대신 블루투스를 통해 음악을 틀었는데, '동승자 수면'이라는 버튼이 있었다. 말 그대로 조수석이 자고 있을 때 그 버튼을 켜면 조수석 쪽엔 음악이 잘 들리지 않는다.
목적지는 아래였다. 대부분 시즈오카 현에서 오른쪽/위쪽에 위치한 후지노미야 시에 있는 곳들.
1) 타누키 호수
2) 시라이토 폭포
3) 후지산 세계유산센터
그 외에도 갈까했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방문하지 못했다. 숙소 인근에서 도시락을 파는 곳이 있어서 타누키 호수에서 먹을 요량으로 미리 구매했다. 원래는 시즈오카 역에 가서 에끼벤을 살까 싶었는데, 더 가깝기도 하고 더 맘에 들어서 방문했던 곳. 결과적으론 꽤 만족스러웠다.
1) 타누키 호수
후지산을 잘 볼 수 있는 곳이래서 갔다. 게다가 캠핑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도시락을 사서 나름의 피크닉을 즐길 요량이었다. 다만 날씨가 흐려서 후지산은 보이지 않았다. 구글에 등록된 아래 사진에 따르면 이렇게나 선명하게 보여야 하는데... 전혀 아니었다.
타누키 호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평일이라 그런 것도 있을 것이다. 종종 사이트에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고, 낚시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큰 건 아니라서 20분 정도면 60% 정도를 둘러볼 수 있었다. 중간에 데크에 앉아 사온 도시락을 먹었다.
2) 시라이토 폭포
시라이토 폭포는 나름 일본 내에서도 유명한 곳이라고 하는데, 후지산 주변에 있는 여러 폭포들 중에서도 잘 알려진 곳인 것 같다. 아무래도 후지산 주변에 후지산에서 내려온 물들로 만들어진 호수와 폭포들이 많다 보니 후지산 주변 폭포관광도 잘 만들어져 있다는 생각. 타누키 호수와 멀지 않다.
규모가 꽤 큰편인데, 사진보다 오른쪽에도 작은 지류로 이루어진 폭포들이 있었다. 그래서 꽤 멀리서부터 폭포 소리가 나고(멀어지면 꽤 시끄러운 곳에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굉장히 더운 한여름이었는데 폭포 인근은 시원했다. 시라이토 폭포 옆에는 다른 폭포도 있어서 함께 구경이 가능하다. 다만 인근은 산길인데, 아래 사진처럼 길은 좁은 편. 사실 여기만 그런 건 아니고 대부분 길이 좁은 편이었다.
3) 후지산 세계유산 센터
큰 감명이 있을 만한 곳은 아니고, 적당히 구경하기 좋은 박물관 같은 곳이다. 사람이 많지 않아서 들어가자마자 이목을 끌었는데, 여기 역시 한국인이 많이 오는 곳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원형 구조를 걸어올라가는 식인데, 후지산을 함께 오르는 것처럼 꾸며놔서 높이별 후지산의 생태를 알 수 있고 중간중간 후지산에 관련된 역사/문화를 알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있었다. 다만 내부는 대부분 촬영이 불가. 영상을 상영하는 곳도 있었는데 시간에 맞춰 한 편을 봤다. 후지산의 종교적 의미를 다룬 내용이었다. 기념품을 판매하는데, 그냥 흔한 관광객 센터라고 생각했던 만큼 사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꽤 괜찮은 기념품들을 팔고 있어서 하나 샀다(초콜릿)
다만 이곳에 방문하고자 했던 건 여기 역시 후지산을 바라보는 뷰가 있어서인데.... 역시 보이지 않았다.
아래 사진이 바로 그 스팟인데, 창밖으로 아래와 같은 모습이 보여야 하지만 보이지 않았더라는 후문.
그 이후엔 차를 타고 운전해서 반납했다. 운전을 꽤 많이했는데, 재밌는 모습도 많았다. 일단 고속도로에 생각보다 차가 별로 없었다. 물론 평일이라고는 하지만, 나고야-시즈오카-도쿄를 잇는 고속도로였는데 이따금 지나는 차들도 화물차였고 국내와 비교해서 차가 굉장히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고속도로에 속도 카메라가 없는데, 처음엔 아무 생각없이 다니다가 꽤 당황했다. 다만 찾아보니 일본은 주로 '현장적발'이 주를 이룬다고 하는데, 일반 차로 위장한 경찰들이 고속도로를 다니면서 적발하는 시스템이라고. 해외까지 와서 벌금을 내고 싶지는 않아서 자동으로 속도를 지키게 됐는데, 어디에 있을지 모르니 오히려 계속 신경쓰게 되더라.
그리고 많이 걱정했던 방식인 운전 방향이 반대라는 점은, 생각보다는 할 만 했다. 물론 일반 도로에서 그렇다는 것인데, 고속도로나 시내에서는 나의 방향-내가 가야할 방향이 비교적 뚜렷해서 크게 헷갈리지는 않았다. 다만 별로 차가 없는 일반 도로를 오갈 때는 헷갈리곤 했는데, 좌회전을 통해 들어갔을 때 반대차선에 들어갈 뻔한다거나 하는 일이었다. 차가 많은 시내에선 상대 차가 있으니 자연스레 구분이 되는데, 도로 자체가 텅 비어있으니 헷갈린달까.
하지만 그런 걸 감안해도 일본에서 운전은 꽤 쉬운 편이었는데, 기본적으로 양보운전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차 자체가 많지 않고, 마주하는 차들은 양보운전이나 규칙 준수가 생활화되어 있다보니 말 그대로 규칙에 따라 운전만 하면 되니 오히려 편했던 느낌. 그리고 정말 작은 차들이 많은데, 후지노미야 시의 도로들을 다니다 보니 이해가 됐다. 길들이 좁은 만큼 폭이 넓은 차를 타면 그만큼 운전 난이도가 올라갈 것 같았다. 그 외 신호들이나 여러가지가 낯설긴 했지만 이해를 못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꽤 다닐만했다.
시내로 돌아와 인근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고 반납하는 것으로 시즈오카 현 렌트카 여행을 마무리했다. 현대적인 주유소들이 많았는데, 어째 옛날 방식인 주유소를 이용하게 됐다. 차 한대가 정비하는 것 같은 공간에 올라가서 차에 앉아 눈 앞에 보이는 상황판(?)을 보며 주유 현황을 확인하는 방식이었는데, 할아버지가 '요새 외국 사람이 많이 온다. 최근엔 독일인이 자주 왔다'라는 잡담을 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시즈오카 여행을 한다면 차를 렌트해서 후지산을 볼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을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여기엔 다루지 못했지만, 최근 sns 상에서 인기를 끈 후지노미야 시의 육교(아래 구글 사진)나, 조금 더 오른쪽으로 가면 이즈시의 이즈 파노라마 파크도 후지산을 보기에 꽤 적합한 것 같다. 그리고 나름 한적한 일본 동네를 다니는 맛도 나고, 후지산을 따라다니는 여정이 꽤 나쁘지 않았다. 물론 나는 날이 흐려서 후지산이 보이지도 않고, 여름 철이라 눈이 쌓인 모습을 볼 수 없는데도 그랬으니, 눈이 쌓인 후지산을 볼 수 있다면 가는 장소마다 재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
물론 길을 잘못 드는 일도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 경험들 자체- 일본에서 운전을 해본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 기억이다. 하지만 번잡한 도쿄 같은 곳에서보단 훨씬 운전하기 여러모로 낫다는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