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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yer Jan 08. 2023

예술학교 입시 도전을 후회하지 않는 이유

예술학교 입시에서 알게 된 즉흥 연기의 맛!

'이게 내 생에 마지막 공연전문가 도전기이다!'라고 각 잡고 노력하던 시기가 있었다.

타지에서 문화예술 교육을 받고 훈련하면서 이 후의 진로에 대해서 굉장히 고민했다.

동료들은 저마다 일자리를 구하거나, 진학을 고려했다.

마음같아서는 바로 이 계열의 일자리를 구하고 싶었지만, 프로의 무대로 나가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공연 전문가의 길을 계속 가려거든, 실력을 더 쌓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는 못했던 예술학교 진학을 도전해보고 싶었다.

오랜 열망에 열망이 더해졌는데 누가 날 막으리?

그래 도전해보자!하고 예술학교 입시에 지원했다.

마음 먹은 시기에 이미 학사 모집 기간은 놓쳐서, 대학원 모집에 지원했다. 대학 졸업 학위가 있어서 대학원 지원이 가능했다. 어떤 전공이라도 가능하다는 점이 참 신기했다.


입시는 서류, 영어시험, 현장 워크숍 및 면접으로 진행되었다.


시험 당시 메모처럼 간단히 써둔 일기를 보면, 영어시험이 끝나고 '어렵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렸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이게....왜....?'라는 반응이었다. 대학에서 경영학에 대해 영어로 시험보고 강의듣고 발표했던 터라, 간단한 내용에 대한 번역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 강하게 컸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했다(라고 당시 일기에 써있다.).


실기 시험은 마치 무슨 캠프 프로그램같이 구성되어 있었다.

크게 연기 워크숍과 면접으로 구성되는데, 워크숍은 연기를 위한 몸 움직이기 훈련(내 몸 인지하는 명상과 걷기 포함 여러가지), 즉흥연기 등으로 구성되었다. 면접은 1분 개인연기 후 자소서 기반 면접을 했다.

책을 읽고 시험을 보거나 성적을 겨루는 게 아닌 시험. 지식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없는 면접. 그 모든 것이 신기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워크숍 내용 중 하나였던 즉흥연기였다.


즉흥연기가 입시 시험으로서 운영되는 방식은 이렇다.

시험 당일 모두에게 같은 내용의 짧은 대본을 나눠준다.
대본이 공개된 직후, 15~20분간 휴식시간을 준다. 그런데, 휴식이 휴식이 아니다.
그 시간 동안 워크숍 참가자들끼리 알아서 2인 1조를 꾸리고, 대본을 토대로 짧은 공연을 만든다.

휴식시간이 끝나면 바로 시험감독(교수)님들과 워크숍 참가자(사실상 경쟁자들) 앞에서 짤막한 공연을 실연해야 한다.

즉흥연기를 위한 대본과 휴식시간 중 해야 할 것이 안내된 직후, 단번에 눈이 마주친 사람이 있었다.

솔직히 나는 '어, 저사람 잘 맞을 듯'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상대도 그랬을까? 서로 다가가서 '저와 함께 준비하실래요?'하고 바로 대본 숙지, 극 짜기를 시작했다. 나는 이런 극 구성 경험이 없으니 파트너가 하자는 의견을 그대로 따라가다시피 했는데, 정말 신기했다. 극 구성이 나도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짧디짧은 휴식시간이 끝나고, 참가자 모두의 공연을 관람하는 시간이 돌아왔다.

결과물을 보며 내 속 마음은 이랬다.

다들 괴물인가?
어째 그 짧은 순간에
자기와 결이 맞는 사람을 찾아 파트너를 맺었냐?
ㅋㅋㅋㅋ


분명 같은 내용의 대본인데 어떤 팀은 스릴러 중의 스릴러가 되고, 어느 팀은 로맨스, 누군 개그가 되고, 누군 아침드라마같은 씬을 보여주었다. 각자 개성있었고, 흥미로웠다.

예체능 공부를 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청강'에 열려있다는 것이었다. 입시에서조차 다른 사람들의 연기를 보며 참고하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피드백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좋았다.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목적의식을 갖고 파트너가 되어 짧은 시간동안 몰입해서 만들어낸 찰나의 공연들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분명 합불의 당락이 결정되는 입시 시험이었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추억으로 남았다.

워크숍을 통해 예술학교의 교육을 맛보았던 것이 정말 좋았다.


내게 음악, 보컬, 공연 훈련에 대해 많은 가르침과 큰 깨달음을 주신 음악감독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있다.

전문적인 예술 교육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누구든 전문 예술 교육을 받을 기회가 주어지면, 달라질 수 있다.


시험을 마치고 학교에서 역까지 골목길을 걸으면서, 그 말씀을 되새겼다. 이 이상의 교육을 받으니 그만큼 호연 하는 배우들이 나오는 거구나. 실감할 수 있었다.

꿈만 꾸지 않고 예술학교 입시에 도전 해보길 잘했다는 생각도 했다.

공연 전문가로서의 길에서는 벗어났지만, 지금도 그 도전을 후회하지 않는다.

:D


* 도전했던 예술학교는 한국예술종합학교였다.

* 불합격 했다.

* 즉흥연기 대본의 대략적 내용은 A는 떠나려는 사람, B는 A가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다.


커버 이미지 출처: Photo by Miguel Ángel Hernández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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