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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한 Feb 01. 2017

8. 날카로운 첫 강의의 추억2

강의는 아무나 하는가

시작은 호기로웠다...쓸데없이...

 일생에 첫 강의를 위한 준비 단계를 마쳤다. 관련 교육을 이수하고 자격증 취득을 했다. 강의 준비에 최선을 다했다. 청소년들이 갖추어야할 리더십의 덕목을 나열하고 사례를 정리하고 프레젠테이션에 상세히 작성하여 청소년들이 양질의 의미를 얻어가게끔 하려고 노력을 했다. 


 대상이 초등생이니 만큼 재미있는 애니메이션 기법을 총동원하여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였다. 점점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완벽한 강의를 마치고 모든 사람들이 나를 칭찬하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이것이 나중에 나에게 독이 되리라는 것은 그때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사업의 취지와 참가자들의 열의가 강의에 대한 관심을 최고조로 올려놓았다. 강의장은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지속되고 강의안과 강의 목차 등을 점검했다. 이윽고 강의 시간인 오후 2시가 되었다. 첫 강의가 시작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인사에 모두가 답했다.


“안녕하세요!” 


강사는 청중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 때 희열을 느낀다.


“네.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리더십에 대해서 강의를 해드릴 거예요. 모두들 잘 따라 올 수 있지요?”

“네!”

“좋습니다.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모두가 집중을 해주었고 경청을 해주었고 한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정확히 강의시작 후 8분까지는…….


“자! 리더십이라는 것은 리더와 쉽, 즉 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는 한배를 탄 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멘트들을 어떻게 그렇게 뻔뻔하게 구사하였는지 의문이다. 이윽고 배 모양의 사진이 PPT에 나타났다. 밤새 준비한 화려한 에니메이션 기법들을 사용하여 PPT를 넘겼다. 하지만 청소년들에게 지루함을 주지 않기 위해 삽입한 애니메이션 효과는 익숙하지 않아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왔다. 애니메이션 효과의 타이밍에 익숙지 않은 나는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에......그러니까......그렇지. 이 부분입니다. 여러분.”

“음......그래서 이렇게 되는 겁니다.”


게다가 빽빽하게 채워 넣은 텍스트들은 지루함을 주기에 충분했다. 강의시작 8분 만에 한 친구가 손을 들었다. 


“선생님!”

“어? 질문 있니?”


“선생님, 이거 언제 끝나요?”


그 한마디에 정신의 스위치가 저 멀리서부터 꺼져오는 것을 느꼈다.


“흠..그건... 흠흠... 2시간 뒤에 끝나지.”

“선생님 그럼 축구하러 나가요.”


 그 한마디에 강의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한사람의 요구는 곧 모두의 아우성으로 번졌다. 모두가 축구하러 가자며 외쳤다. 그래도 강의를 진행하려 프레젠테이션의 다음 페이지를 클릭했다. 그 순간 설상가상 빔프로젝터 전원이 꺼졌다. 그리고 내 정신의 마지막 스위치도 함께 꺼졌다. 


빔프로젝트가 꺼졌다.


 등에서는 식은땀 몇 줄기가 목덜미부터 등의 중간지점까지 훑고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저 멀리 한심한 듯이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취재하러온 기자들, 참관하러 온 학부모와 교사들 동시에 그 옆에 동료들의 안타까워하는 눈빛이 동시에 들어왔다. 순간 하지 말아야할 말이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미처 막지도 못했다.


“강의는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 나가서 노세요.”


청소년들은 ‘앗싸!’ 소리와 함께 뛰어 나갔다. 

모두의 눈이 똥그래졌다. 영화 식스센스 못지않은 종료에 담당 선생님들은 당황하여 이리저리 뛰는 청소년들을 인솔하기에 바빴고 강의 시작 15분 만에 생수의 2병의 마지막을 비워냈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두 손에서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하마터면 포인터가 떨어질 뻔했다. PPT 화면에서는 닉부이치치가 희망을 잃지 말라고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첫 강의는 그렇게 의도와 정반대로 흘러갔다.


자포자기 해버렸다.


 회사에서는 난리가 났다. 아닌 게 아니라 학교 선생님, 학부모와 기자들을 모아놓고 강의를 그렇게 끝내 버렸으니 기관장의 체면도 말이 아니었다. 조금 전의 강의장의 책상들은 신속이 디귿(ㄷ)자로 배치되었고 어느새 그 중간에 내가 앉아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 강의 PPT가 나오던 빔프로젝트 스크린에서는 나의 모습이 재방송으로 땀을 또 흘리고 있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말 좀 해보세요. 이 상황을 어떻게 할겁니까?”

“그렇게 못 할 거면 하지나 말던가 이게 무슨 X망신 입니까?”

“경위서 쓰세요. 경위서. 내일 오전 중으로 제출하세요. 원 창피해서...”


그렇다. X망신 이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경위서를 1,000장이라도 쓰고 싶었다. 번화가에서 벌거벗겨진 느낌이었다. 그러게 왜 강사를 한다고 들쑤시고 다녔는지 예전의 내 행동까지 모두 잘못된 행동으로 느껴졌다.

 그 날 밤, 낮의 일에 대해 전화 통화로 동생에게 털어 놓았다. 한참을 듣고 있던 동생이 툭 던진 말이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어쨌든 한번 해보기는 한 거 아니야? 그럼 나중에라도 할 말은 있겠네. 난 또 큰일이라고. 끊어 나 바빠.”


 한동안은 강의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서 다시는 강단에 설 용기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부끄러움이 자신에 대해 화가 났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다. 그때 동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부끄러웠지만, 실패했지만 이대로 받아들이고 낙담해버리면 끝인 것이고 진정 내가 해야 할 일은 원인을 파악하고 다시 한 번 수정해서 도전하는 것이라 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끊고 난 후 곰곰이 생각해보니 큰 경험을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번 강의에(만약 다음이라는 것이 있다면)는 다른 내용으로 더 재밌는 구성을 해서 청소년들에게 강의를 할 수 있는 것이고 나를 두 번 죽였던 평가회에서는 다시 실수하지 말아야겠다는 굳은 다짐을 갖게 해주었다.


 달리 생각했더니 좋은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같은 일에 대해서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발판으로 삼을 수도 있고 끝없이 추락 시킬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잘하기 위해선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지금도 긴장되고 떨리긴 마찬가지지만 매번 나아지고 있다.


나는 날마다 좋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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