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 덕 본 사람들은 해외 여행 떠나더라.
벌써, 추석.
밤 10시가 돼서 전화벨이 울렸다. 시간이 오해하기 좋은 시간이었다.
'무슨 일이 있나?'
엄마는 일을 마치고 지금 집에 왔다며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기운 없다는 것을 한껏 느끼게.
"벌써 추석이드라."
아빠는 독수리 오형제 중에 셋째다. 그래서 엄마는 큰엄마가 살아계셨을 때, 명절 전부터 이리저리 불려 다녔다.
"동서, 생선 사러 자갈치 가자."
"동서, 나물 사러 시장 가자."
혼자 일하지 않겠다는 큰엄마의 굳은 결의를 다 받아주는 건 엄마뿐이었고, 다른 숙모들은 명절 전날에만 왔다.
아무것도 모를 땐 나도 엄마 손을 잡고 같이 시장을 따라다녔다. 오뎅도 사달라 조르고, 과자도 사달라 조르기 위해서지만, 시장 구경이 재밌기도 했다.
사춘기가 오고, 성인이 되면서, 엄마가 마냥 좋은 마음으로 다닌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니 큰엄마는 왜 엄마를 그렇게 귀찮게 하나 몰라."
"제사비용을 집집마다 다 챙겨주는데, 돈 남겨먹을라고 음식 작게 하는 거 봐라. 젓가락 갈게 읍따."
엄마의 푸념을 알아들을 나이가 되면서부터 따라다니지 않았다.
'그럼 엄마도 나가지 않으면 되잖아. 나가면서 왜 자꾸 구시렁거려. 아, 진짜 듣기 싫어. 짜증 나.'
명절은 그 시절 며느리에게도 귀찮고 힘든 일이었고, 그걸 이해하기에 내 나이는 어렸다.
하지만, 지금은 엄마의 '곧 추석이드라'라는 표현에 담긴 뜻을 알아 드를 나이가 되었다.
'비록 제사를 하지 않지만, 명절이니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니? 명절 기분도 좀 내야지. 뭘 좀 해 먹을까?'
저의를 알지만, 못 알아듣는 척, 되물었다.
"엄마, 엄마도 힘들다고 제사를 절에 올렸잖아. 그럼 전이랑 튀김 같은 거 안 해도 되는 거 아냐?"
"..."
"요즘 세상에 더 맛있고 좋은 게 많은데 명절이라고 꼭 튀김하고 전을 굳이 할 필요가 있냐고?"
"조상 덕 본 사람들은 일 년 전부터 해외여행 예약하고, 펜션 잡아 놀 생각하드라."
"엄마도 좀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 이제 안 해도 되는데, 뭘 굳이 또 하려고 해!!"
"..."
아무 대답도 없다는 건 이미 마음 상했고, 엄마 생각과 다른 내 말에 동의하지 않겠다는 리액션이다. 다 알지만 또 모른 체 했다.
엄마에게 좀 더 다정하게 말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작년까지 두 번의 명절과 두 번의 기제사를 위해 튀기고 부치기 위해 칠순을 넘긴 나이까지 고생했으니, 이젠 안 해도 된다는 걸 엄마도 알았으면 했다.
처음으로 쉬는 명절이 엄마에겐 어색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결혼과 동시에 시작된 제사 음식이지만, 엄마는 이제 좀 벗어나도 되지 않을까.
나 몰래 혼자 장보고 있을지도 모르니, 연휴 전에 미리 친정에 들러야겠다. 못다 한 이야기를 전하러.
튀김하고 전 부칠 돈으로 고기 사 왔으니, 고기나 맛나게 먹자고.
튀김하고 전이 먹고 싶으면 튀김옷 바삭한데 있으니 오일장이나 다녀오자고. 시원한 막걸리랑 먹으면 그게 완전 꿀맛이라고.
이젠 좀 편하게 즐겨도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