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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 쓰는 마음 Mar 19. 2024

[수강생작품] 다 가진 여자

상상해서 글쓰기 by 오현미 님(쓰는 시간 1-2기 수강생)  

오늘도 현주랑 현영이가 학교에서 늦는가 보다. 아까부터 목을 길게 빼 들고 애들이 오길 이제나저제나 기다린 게 헛수고다. 벌써 4시 30분이 넘어 조금 있으면 포장마차 준비하러 시장 보러 나가야 하니, 아무래도 오늘도 애들 얼굴을 못 보고 나가야 할 것 같다. 저녁으로 준비해 놓은 김치찌개와 계란말이, 장조림 반찬 위에 손 편지를 올려놓고 아쉬운 마음으로 시장길에 오른다. 

현주야, 엄마가 오늘도 현주와 현영이 얼굴 못 보고 일하러 간다. 현영이 잘 챙겨서 밥 다 먹고, 9시 넘으면 텔리비젼 보지 말고, 이 닦고, 불 꼭 끄고 자야 돼. 현영이가 무섭다 그럼 너가 현영이 좋아하는 찬송가 불러주는 거 잊지 말고, 추우면 전기장판 히터 6으로 올리구... 사랑해 우리 큰딸...

나는 오늘도 경동시장에 들러서 홍합이랑 동태 7마리, 어묵 5팩, 대파 7단을 사 들고 버스에 올랐다. 생선 냄새가 진동을 하니 옆에 있는 학생이 나를 흘끗 쳐다본다. 이젠 익숙해져서 아무렇지도 않지만, 처음에는 누가 싫은 기색이라도 하면 눈을 어디 둬야 할지 몸 둘 바를 몰랐다.  


166번 종점에 다다라서 새 아파트 짓고 있는 공사판. 얼마 전부터 시작한 포장마차가 추운 한겨울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떡하니 천막을 펄럭이며 나를 반긴다. 남편이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도 1년이 지났다. 애만 키우다 갑자기 나가서 돈 벌려고 하니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형제들 도움으로 이래저래 몇 개월은 버텼지만, 밖에서 일해야 하는 게 현실이었다. 작은 애가 초등학교를 입학하자마자 동생이 소개시켜준 아파트 단지에 포장마차를 시작한 지 3개월이 되었다. 


전기와 물을 설치해야 하는데, 그 선 받아내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인정 많은 쌍과부댁 아줌마네들이 자기들 전기랑 물 끌어다 써도 좋다고 선뜻 허락을 해 주셔서 일이 쉬워졌다. 김치냉장고 한 대, 설거지대, 개수대를 설치하고 이전에 호떡장수 아저씨가 쓰던 불판을 인수받아서 총 150만 원의 자본으로 그럴듯한 포장마차가 완성되었다. 족발하고 순대는 집에서 손수 만들어서 일요일마다 일주일 치를 준비해 놓았다. 처음에 순대 씻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던지... 알고 보니 요새는 모두 비닐순대 주머니를 쓰면 되는 건데, 그것도 모르고 내장을 사다 씻느라 진땀 낸 걸 지금 생각해 보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족발도 털을 족집게로 뽑느라 몇 시간씩 씨름을 했었는데 유튜브에서 보니 그냥 불에 2-3분만 그슬리면 되는 걸 모르고 생고생을 몇 달을 했더랬다. 3개월이 지나니 이제는 좀 일에 자신이 붙는다. 처음에는 술주정하는 손님들을 대하는 것이 곤욕이었는데, 그것도 익숙해져서 농담도 제법 잘 받아친다. 


오늘도 김가 할아버지가 첫 손님이시다. 항상 6시면 시계처럼 정확하게 오뎅우동에 소주 반병을 시키신다. 나는 재빨리 펄펄 끓는 오뎅우동을 말아서 할아버지께 건넨다. 상처하신 지가 오래되셔서 혼자가 익숙하신 할아버지는 어딘지 돌아가신 우리 아빠를 연상시켜서 잘해드리고 싶다. 그저께 쒀놓은 도토리묵을 서비스로 드리면서 할아버지한테 소주를 한 잔 따라드린다. 할아버지는 빈 병과 폐휴지를 모아서 재활용센터에 가져가는 일거리로 생활을 하신다. 가끔 밀고 다니는 리어카를 보면 저리 무거운 걸 저 노인네가 어떻게 밀고 올라갈까 싶은데도, 항상 변함없이 꼬장꼬장 잘도 버텨내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힘을 얻을 때가 많다. 


공사판 직원 5명이 시끌벅적 들어온다. 그네들도 하루종일 추운 데서 시멘트 가루 들이마시면서 일했으니 어지간히 배도 고프고 춥기도 했을 거다. 


"아줌마! 동태찌개 대짜 하나, 파전 두 개, 족발 3인분에 소주 2병, 빨리빨리 해주이소. 겁나 배고픙께로..."


나는 파전을 먼저 후딱 만들어서 소주랑 내놓는다. 그들은 왁자지껄, 힘들었던 하루를 따끈한 동태찌개 앞에서 풀어내는 것 같다. 4병째 소주를 시킬 때쯤이면 목소리가 어찌나 커지는지, 그래도 밉지 않고 여기 와 준 발걸음이 고맙기만 하다. 들락날락 손님들이 이제 좀 조용해지나 싶어 시계를 보니 자정이다. 빨리 설거지를 마치고 뒷정리를 하고 나니 12시 30분. 옆에 과일가게 아주머니가 가시면서 곯아서 팔지 못했던 배를 나한테 주셨다. 그냥 받기가 미안해서 나도 오뎅국 남은 걸 얼른 한 그릇 싸드리고 마지막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현주가 뛰어나온다. 속으로는 너무 보고 싶었으면서도 나는 이렇게 말하고 만다. 


"왜 아직도 안 자고 뭐 해, 빨리 자야 내일 학교 갈 때 짜증 안 내고 일어나잖아."


현주가 날 보면서 대꾸한다. 


"엄마, 나 내일 산수하고 자연과학 시험 보는 날이야. 그래서 지금까지 공부하고 있었어. 엄마 좋지? 나 그리고 엄마 보고 자려고 안 잤어. 낮에도 못 봤잖아."


나는 너무 기특해서 현주를 꼭 안아줬다. 9살인 현주는 다른 애들에 비해 무척이나 성숙했다. 아빠가 아플 때도 아빠 다리를 주물러드리겠다고, 열나면 물수건까지 바꿔가면서 옆에 꼭 붙어서 얼마나 애를 쓰던지.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 어린애가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나를 위로한답시고 연신 옆에서 떠나지 않던 모습이 대견하고 안쓰러웠다. 지금은 초등학교 3학년인데 전교에서 1등을 놓친 적이 없다. 현영이가 학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아침에 동생 손을 꼭 붙잡고 찻길을 살피며 걷는 모습이 고맙기도 했지만, 너무 빨리 커버린 그 애가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했다.  


현주를 꼭 안으면서 잠든 것 같은데 어느새 7시다. 밥 안치고 아침 준비해서 애들 학교 보내고 나서는 어제 약속을 잡아놓은 한외과로 바로 향했다. 얼마 전부터 위궤양이 다시 도진 건지, 먹어도 왠지 뭐가 걸린 것 같고 소화가 안 되고 더부룩했다. 처녀 적부터 신경성 위궤양이 있었던지라 별 신경도 안 쓰고, 애들 키우느라 남편 병 바라지 하느라 내 몸 돌볼 새는 없었던 것 같다. 약국에서 처방받아 쓰던 위궤양약도 이젠 잘 듣지 않고, 며칠 전에 찾아온 동생 성화에 못 이겨 끌려오다시피 해서 동네 한외과에 들렀다. 위내시경을 하자마자 한외과 원장이 나한테 말했다. 


"사모님, 아무래도 큰 병원 가보셔야겠어요. 혹시 보호자 같이 오셨나요? 조직검사를 해야지 100% 확신할 수 있겠지만, 모양과 부위로 받을 때 암이 거의 확실합니다."


난 갑자기 둔기로 머리를 맞은 듯이 어지러워서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넘어질 뻔했다. 너무 놀라니까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암이라고? 난 안 되는데, 나 지금 아플 수가 없는데? 애들 너무 어린데... 옆에서 같이 온 동생은 벌써 눈에 눈물이 가득해서 펑펑 울기 시작했다. 


"언니 어떡해, 어머, 애들 불쌍해서 어떡해, 우리 언니 불쌍해서 어떡해..."


며칠 후 대학병원에서 나온 결과는 역시 위암 말기. 벌써 암이 전이가 되어서 키모를 하기에도 너무 무리가 갈 것 같다는 말씀이셨다. 


"키모하면 6개월 정도 연장은 가능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 키모 과정이 무척 힘들 거예요. 키모하시면서 6개월 연장하실 건지, 아님 안 하시고 그냥 가족과 편안한 시간을 몇 개월이라도 지내실지는 본인의 결정입니다."


의사는 아주 자세히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내가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될지 말해주기 시작했지만 내 머릿속은 오로지 현주와 현영이 생각으로 가득했다. 현주와 현영이, 내가 없음 누가 돌보지? 동생이 우리 애들을 봐줄 거라고 걱정 말라고 했지만, 동생 형편도 편치 않고, 제부가 하는 철물점이 코비드 이후로 예전만큼 손님이 많지 않아 고전하고 있다. 자기 애들도 4살, 6살, 고만고만한 애들에 우리 애들 둘까지 떠맡아서 우리 애들이 혹시라도 천덕꾸러기가 될 걸 생각하니 가슴이 무너진다. 


지금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나 말고 이 상황을 헤쳐나갈 사람은 없으니까. 벌렁거리는 가슴을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그동안 생각만 하고 현주랑 현영이한테 못 사줬던 하얀색 어그부츠를 주문했다. 워낙 가격이 있어서 그동안 차일피일 미뤄왔었는데, 이젠 더 이상 미룰 날도 얼마 없다고 생각하니... 나한테도 선심을 쓰기로 했다. 그동안 인터넷 쇼핑몰에서 눈독 들여왔던 2만 9천 원하는 보라색 원피스를 주저 없이 시켰다. 


이번주 금요일은 삼일절이라 하루 쉬는 날이다. 나는 김밥을 싸고 따끈한 오뎅국을 보온병에 담아서 애들이 가고 싶어 했던 서울랜드 동물원으로 향했다. 


입춘이 지나 다행히 오늘은 따듯한 햇살 덕분에 봄이 온 것처럼 느껴졌다. 새로 산 부츠를 신고 신나서 총총 걷는 우리 애들, 김밥에 따끈한 오뎅 국물을 담아주는 나의 손은 왜 이리 떨리는 걸까? 바람이 차지도 않은데 왜 자꾸 눈에서는 시린 눈물이 나는 걸까? 애들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내가 이런 순간을 몇 번이나 맞을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이 순간들이 언젠가 얼마나 그리울 건지... 늘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여름, 가을, 겨울이 오는 데 익숙했는데, 이번에 올 봄은 왠지 다른 느낌이겠다 싶었다. 내가 여름을 맞을 수 있을까? 내가 42세의 가을을 맞을 수 있을까? 


아이들과 서울랜드에서 온종일 보내고 싶었지만,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도저히 자신이 없다. 택시 타본 적이 언제인가 싶은데 오늘은 카카오 택시를 대절해서 편안히 집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애들 씻기고 나도 뜨거운 전기장판 위에 온몸을 늘어뜨린다. 


죽기 전에 애들한테 작은 영상 편지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너무 어려서 내가 하는 말을 잘 알아듣기 힘들어할 것 같고, 애들이 성년이 되었을 때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고 너희들이 어떻게 자라주었으면 하는지 이야기해주고 싶은데 그때 곁에 있어 주질 못할 테니 이 방법을 택해보고 싶었다. 전화기를 집어 들고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을 비디오에 녹화하기 시작했다. 


현주야, 현영아, 잘 자라줘서 정말 고마워. 지금쯤은 어엿한 숙녀가 되었을 우리 큰딸. 언니보다 더 먼저 숙녀가 되어 남자 친구가 벌써 있을 법도 한 우리 애교 덩어리 작은딸. 너무 보고 싶구나... 너희들이 이 영상을 볼 때쯤이면 엄마는 옆에 있진 못할 것 같다. 그래도 너희들 위에서 살펴보고 있을 테니 그걸 잊으면 안 돼. 
엄마가 너희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은 참 너무 많은데, 이 짧은 영상에 담으려니 뭣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어. 두서없지만 시작해 볼게...
첫째, 인생에서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 인간은 모두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이고,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란다. 너가 존중받고, 사랑받고, 이해받고 싶은 만큼 다른 사람한테도 그렇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 아마 너희들은 벌써 그런 사람이 되었을 거라고 믿는다. 
둘째, 너무 뭐가 되려고 기 쓰고 아등바등하지 않길 바라.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자기 스펙을 쌓느라고 바쁘지. 세상은 너희들을 향해서 많은 걸 요구할 거야. 세상은 너희들한테 성공하라고 뭔가를 쫓으라고 계속해서 비교하게 할 거고, 계속해서 저울질하게 할 거고, 계속해서 뭔가가 더 부족하다고 더 채워야 한다고 속삭일 거야. 거기 대항할 수 있는 너희들이면 좋겠다. 다른 세상의 어떤 가치들도 너희를 판단할 수 없다는 걸 기억해. 그런 것들은 다 속임수란 걸, 너희들은 이미 사랑받는 존재이고 소중한 존재라는 걸, 그걸 그 사람들이 원하는 잣대에 맞춰 굳이 세상에 증명해 보일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세상이 하는 거짓과 속임수에는 귀 기울일 필요가 없단다. 너희들이 무슨 일을 하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그게 너희의 정체성을 결정하지 않거든. 어떤 자세로 그 일을 대하는지, 어떤 삶에 태도로 이 인생을 대하는지 그게 더 중요하거든. 지금 너희들이 있는 그 자리에서, 같이 있는 옆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오늘 일어나는 지금 순간의 일에 집중하고 정성 들이고 감사하면서 사는 게 인생이란 걸. 
세 번째는 아모르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를 기억하란 걸. 엄마가 어렸을 때는 너무 많은 게 두려웠단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걸 잃을까 봐 두려웠었고, 너희들이 자라면서는 너희들이 아프거나 다칠 것도 두려웠고, 너희들 아빠가 아팠을 때는 너희들 두고 아빠가 먼저 돌아가실까 두려웠단다. 
두려운 일은 피하고 도망치고 싶었어. 한편 옆에 밀어 두고 미루며 보지 않기도 해 봤고, 없다고 나 자신을 속여보기도 했었지. 여러 가지 해봤지만 그게 결국은 날 피해 가지 않더라구.
인생에서 너한테 떨어진 일이면 내 몫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 그걸 즐기라구. 이건 내 몫이 아닌데, 이건 좀 불공평한데,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지? 하면서 너희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지 마. 좀 잔인한 표현일까? 아니야, 그게 인생이야. 뭐라도 나한테 떨어진 카드가 내 인생에 떨어진 몫이니까. 언젠가 축구선수 이영표 씨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구. 심판이 경기에서 부당하게 행동하더라도 그게 그 경기의 일부라고, 바로 그게 축구라고.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왠지 정당하지 않게 느껴지는 카드가 나한테 던져지더라도 그걸 기꺼이 얼싸안고, 받아들이고, 내 몫이니 살아내고, 오롯이 즐기겠노라고. 인생이란 건 패키지딜이라서 너가 좋아하고 이쁜 것만 따로 뽑아 쓸 수 없다는 걸. 알겠지?
사랑합니다... 우리 귀염둥이들...


영상편지를 마치고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뭘 하면서 보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친척과 친구들의 명단을 적어보았다. 이 사람들한테 저녁 한 끼씩 사주고, 따끈한 커피 한 잔씩만 같이 마시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작은 선물을 준비하고 싶다. 옆에 있어 줘서 너무 고마웠으니까. 동네 산책길을 죽기 전까지 매일 걸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하얀 눈밭에 있는 오리들과 아름드리나무들이 너무 이뻤는데, 그동안 수많은 세월을 그냥 지나친 걸 미안해하면서... 아침에 돋는 해를 매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매일매일의 새로운 날이란 기적을 나한테 선물로 줬는데, 그걸 깨닫지 못한걸 조금은 아쉬워하면서... 우리 애들 얼굴을 매일 보고 쓰다듬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조그맣고 보드라운 볼을 비빌 수 있으면 좋겠다... 이거만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크게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뭔가 크고 대단한 걸 하고 싶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한테 필요한 것들은 벌써 나한테 다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존재들이 내 곁에 있었고, 나는 그 사랑을 주고 누릴 수 있어서 행복한 삶이었다는 걸. 죽음의 순간이 내 눈앞에 오면 그 순간엔 무섭고 떨릴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나는 내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노라고... 이제는 준비되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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