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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 쓰는 마음 Sep 06. 2024

[북클럽] 시대의 폭력, 살아남은 사람들

공터에서 (김훈) 감상문 

이 책은 할머니의 이야기와 역사 교과서의 중간쯤에 자리한다. 버둥대며 헤쳐 나온 경험담보다는 건조하고, 연도와 사건, 낯선 이름들로 가득한 역사책보다는 생생하다. 이야기의 흐름은 사진첩을 훌훌 넘기는 것처럼 진행된다. 인물들의 마음속 풍경 묘사는 극도로 절제하고, 시대의 요청으로 포장한 폭력에 머리채를 잡혀 질질 끌려가는 개인사를 흘러가는 듯이 묘사한다. 그들의 구구절절한 내면이 감춰진 덕분에 오히려 내 안의 서사가 이끌려 나온다. 일본군의 징용을 피해 뒤주에 숨었다던 할아버지, 전쟁통에 애가 울면 인민군한테 걸려 다 죽는다고 버려지는 갓난아기들이 숱한 와중에 아버지를 버리지 않고 악착같이 피난길을 걸었다던 할머니. 깊이 잠들었던 옛이야기들이 그때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에게 어떤 질곡이었을지 실감 나게 되살아나는 경험을 했다. 


1980년 전두환의 언론통폐합으로 마차세는 직장을 잃었다. 내 아버지 역시 해직 기자가 됐고, 먹고살 방편으로 전두환 동생이 운영하는 새마을운동본부에 취직했다. 나는 아빠가 저녁마다 일찍 들어오고, 새마을본부에서 발행하는 어린이 잡지를 꼬박꼬박 가져다주는 게 좋았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가 언론사에 복직했을 때는 내심 섭섭했던 기억도 난다. 그로부터 27년 후, 나는 언론통폐합 덕분에 독점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메이저로 성장한 언론사에 취직해 기자가 됐다. 정론직필로 알고 몸담았던 회사가 알고 보니 죄악의 부산물이었다. 다시 수년이 지나, 우리 회사 기자들은 정부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공정 보도를 하겠다며 파업에 나섰으니 참 세상은 요지경이다. 


작가는 인간이 인간 이하로 내몰리는 극한상황도, 참혹하고 못 견딜 일들도 무심히 써 내려간다. 하지만 인간성을 잃었던 혹은 빼앗겼던 경험은 인물들에게 깊은 상흔을 남긴다. 이도순은 흥남 부두에서 사지가 떨어져 나가는 듯이 뜯겨진 젖먹이를 잊고 못하고 치매에 걸려서까지 찾아 헤맨다. 마장세는 김정팔을 '정리'했던 베트남의 전장 이후로 세상 어느 곳도 집으로 삼지 못한 채 외지를 전전한다. 바다는 늘 새 바다인데 사람은 어째서 옛사람을, 세월을, 혈통을 벗어나지 못할까. 장세처럼 나 역시도 한국이 싫어서 떠났다. 못 견딜 사람들이, 적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실은 너무 가까운 것을 알아 버려서. 


"저 사람들은 그만큼 보상받았으면 됐지, 언제까지 저럴 셈이야." 


생때같은 자식들을 눈앞에서 잃고 가시방석 같은 집으로도, 시퍼런 물속으로도, 어디로도 갈 수 없어 궂은비 뿌리는 광장에 모인 세월호 피해자들을 비난하는 말을 집에서 들었던 날, 나는 떠나기로 결심했다. 사람은 거대한 상처를 안은 채로도 살아갈 수 있지만, 과연 어디까지 회복될 수 있는 걸까.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씨랜드 청소년수련원이 불에 타고, 세월호가 가라앉은 그 나라는 아픔이 없는 것처럼 살아간다. 딱하게도 혹은 무섭게도. 


한국어라는 연장을 붙들고 자신만의 성채를 지으며 수십 년을 보낸 중견 작가의 손맛은 범상치 않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공들여 세공한 언어를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팽팽한 밤하늘에서 별들은 추위에 영글어갔다. 
빛이 닿는 자리마다 색이 열려서 꽃들은 원색으로 피어났다. 
일상의 사소한 것들의 질감이 마음속에 쟁여지기를 바랐다. 

장인이 펼쳐 보이는 국어의 아름다움. 하지만 작가의 필력은 기교에 그치지 않고 그 너머로 나아간다. 차세에게 보내는 상희의 위문편지를 읽는 순간 대학 시절 동아리방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위로는 띠동갑에 가까운 대학원생까지 있었던 풍물패는 시간과 사람이 고인 공간이었다. 불빛이 적어 으슥했던 학교 근처의 찻집들과 허리만 간신히 펴고 앉을 수 있었던 다락방, 대단한 의미를 숨긴 듯이 있어 보이는 말들로 가득했던 날적이. 현학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말을 인생의 비의인 양 내뱉던 선배들을 동경하고 우러러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구질구질한 현실에 차츰 눈을 떴다. 그럴싸한 말만 하면서 행동하지 않는 룸펜 부르주아 같은 군상들. 그들은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구제불능인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진력이 나서 빠져나왔던 그곳이 떠올랐다. 내 안에 그 풍경이 고스란히 묻혀 있었던 것도 놀랍고, 글 몇 줄로 뇌주름 깊이 숨었던 과거를 생생하게 불러내는 것도 놀랍다. 영매 같은 솜씨라고 할 수밖에. 


이미지즘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벌컥대는 아가미와 김정팔의 상처, 마차세의 오토바이에 이르기까지 이미지는 여러 번을 겹쳐 선명하게 떠오른다. 정갈한 글씨체로 눌러쓴 편지 같은 소설을 읽으며 시종일관 덤덤한 전개에도 드문드문 눈물이 차오르곤 했다. 그들의 신산한 삶이 안타까워서, 그러면서도 조용히 쌓여가는 질감이 애틋해서. 손안에 맞춤한 작은 한 권에 얼마만큼의 시간과 설움이 담겨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워, 읽다가 덮기를 반복했다. 세상에는 술술 읽어서는 알 수 없고, 거친 밥처럼 시간을 들여 천천히 씹어야 하는 이야기가 있다. 


책에서 가장 마음 붙일 구석은 차세와 상희 커플이었다. 보이는 것을 그리기 위해 보이지 않는 것을 마음에 담아야 하는 이치와 생활의 질감이 몸속 깊이 스며야 한다는 상희의 지혜에 공감하며 이 부부가 잘 살기를 응원했다. 연고에서 벗어나려고 그토록 애를 쓴 장세는 결국 쇠사슬에 묶여 돌아온다. 근본 없는 연놈들에게 버림받은 채. 흘러가는 대로 머물렀던 차세 역시 길바닥의 오토바이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의 삶은 계속된다. 빙 돌아가건 멀리 가건 피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삶의 철학처럼. 얼핏 보면 같은 자리지만, 차세에게는 아내와 딸과 집과 그간 차근차근히 덧발라 질감을 확보한 생활이 남았다. 그는 여전히 달릴 수 있다. 사슬에 묶이지 않고. 


마음이 어려운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거대한 산을 오른 듯이, 끝없는 바다를 마주한 듯이 마음이 차분해질 테니까. 인간이 인간 이하로 내몰리는 '시대의 요청' 앞에 개인사 자잘한 희로애락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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