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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 쓰는 마음 Nov 16. 2023

[북클럽] 멀고도 가까운 당신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감상문 

아버지의 해방일지란 아버지의 일대기다. 죽음이라는 해방을 향한 투쟁과 그 투쟁의 길에서 만난 인연들을 조망하는 삶의 마지막 관문이 바로 장례식이다. 인생은 죽어서 끝이 아니라 죽어서야 비로소 완성된다. 저마다 아버지라는 사람을 담은 다양한 조각들이 기를 쓰고 모여든 그 자리에서, 딸은 아버지의 실체를 알게 되고 아버지의 인생을 이해하게 된다. 사람이 남들에게 베풀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내 주변의 모두는 결국 나를 담고 있기 때문에. 큰 조각이건 작은 조각이건 그들은 나와 인연을 맺음으로써 제 안에 나를 머금게 된다. 내가 너에게 잘해주는 것은 결국 내가 나 스스로에게 잘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내가 너를, 네가 나를 담고 내면화하면서 우리 사이에는 질긴 인연이 만들어진다. 이런 식으로 나와 주변이 촘촘히 얽혀있기 때문에 나만 뚝 떨어져 잘 먹고 잘 살 수가 없다. 이런 이치를 어렴풋이 깨달은 지금도 여전히, 성질대로 화를 내는 게 나를 위하고 지키는 방법인 것 같고 존중과 친절은 남한테만 좋은 일인 것처럼 어리석게 행동하니 큰일이다. 


고상욱 선생은 내가 참을 수 없었던 종류의 인간형이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고 엉뚱한 남들을 챙기면서 평생 사람 좋다는 소리를 듣는. 어린 시절, 가족들 외식 한 번 안 시켜준 자린고비 아버지가 실은 남몰래 고학생들을 돕는 독지가였다더라 하는 미담 기사를 읽을 때마다 나는 열불이 터지곤 했다. 대체 이게 무슨 미담이며 남들에게 추앙받을 일인가 말이다. 나한테 가깝고 소중한 순서대로 챙겨야지, 나머지 세상 사람들한테 의인 소리를 듣는 게 다 무슨 소용이람. 나는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나만 혹은 좁다란 내 주변만 위하려고 기를 쓰고 살았다. 그런데 그런 삶의 방식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고 자부하는 지금에 와서는, 내가 잘 산 것인지 모르겠다. 적어도 이제는 고 선생 같은 이를 비난은 못 하겠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 대로 살았던 것처럼 남들도 저마다 그럴 수 있지 싶어서. 게다가 '인심만 안 잃으면 난세에도 목심은 부지허는 것이여'라는 대목에 와서는, 같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내 처세 따위는 달랑 한 치 앞만 보는 얕은 수가 아니었나 싶어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이다. 


사투리는 비단 내 고향 말이 아니어도 푸근허니 사람을 무장해제하는 힘을 지녔다. 일가친척들이 둘러앉아 지난 세월을 사투리로 곱씹는 풍경을 마주하자, 시골에서 보냈던 명절들이 선연하게 떠오른다. 내 아버지는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자수성가한 개천 용이었다. 성공하기 위해 이를 악물었던 당신의 독기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자식들에게도 그런 독기를 심어주려고 애썼다. 그런 류의 일화를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남들한테 모질게 군 게 대단한 자랑인가' 싶어 입술을 비죽거리곤 했다. 그런 아버지가 시골 식구들에게는 유난히 너그러웠다. 명절 때마다 차 트렁크가 부족할 만큼 선물을 바리바리 싸가도, 할아버지 할머니 병원비를 우리가 도맡아도 시골 사람들한테 고맙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없다. 삼촌이며 고모들에게 아버지의 헌신은 그저 당연했다. 큰 형만 금이야 옥이야 키웠고, 큰 오빠 공부 시키느라 우리는 대학도 못 갔으니까 당연하다는 거다. 집에서는 자식들한테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매사에 생색을 내던 아버지가 시골만 가면, '형이 이 정도는 해야지, 우리한테 더 잘해줘야지' 같은 지청구를 듣고도 허허 웃기만 하는 게 나는 답답했다. 집안의 모든 지원을 몰아받은 뒤 결국 고향을 떠나 서울에 정착한 아버지의 책임감과 부채감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나도 이런 일을 겪게 될까 생각하면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혼자 잘 살겠다고 다 버릴 각오로 떠난 나로서는 장례를 치른다고 갔다가, 남겨진 사람들의 생활 터전에서 부평초처럼 겉돌게 될 것이 무섭다. 게다가 그 자리에서 부모의 어떤 실체를 마주치게 될까. 잃은 다음에야 되찾게 되는 관계를 혼자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또 한편으로는 내가 죽으면 대체 어떤 조각들이 모여 나의 어떤 실체가 완성될까도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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