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여름을 사랑합니다. 몸을 짓누르지 않는 가벼운 옷차림을 애정해요. 아홉 시가 꼬박 넘도록 넘어갈 줄 모르는 부족함 없는 태양을 애정하고요. 그 부족함 없이 이어지는 기나긴 낮 덕분에 끝날 줄 모르는 즐거운 대화와 대화가 열릴 기회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인 여름 칵테일과 맥주를 애정합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여름의 생명력을 사랑합니다. 훅 끼쳐오는 뜨거운 여름 바람은 마치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체들이 역동적으로 호흡함으로써 만들어낸 날숨의 총체 같아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생을 오롯이 살아내기 위해 애쓴 부산물이구나 생각하고 나면 숨이 턱턱 막히는 그 바람조차 종종 경이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토록 여름을 사랑하는 제가 어쩌다 겨울이 일 년의 절반인 체코에 오게 된 것인지. 역시 사람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에요.
8월 말. 이맘때 체코는 거의 매일 쉴 새 없이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두 달간 여름 햇살이 부지런히 달궈둔 대지에 그야말로 찬물을 끼얹는 때거든요. 제게 여름이란 아무리 길어도 모자람이 없는 존재일진대 겨우 두 달을 채울까 말까 한 체코의 짧은 여름은 그야말로 저에게 고역이었죠.
첫 해 체코에서 가을을 맞이한 저는 이대로는 이 나라에서 장기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어요. 터키*와 스페인. 내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내가 살았던 곳들, 9월에도 여름이 머무르는 그곳으로 매년 탈출을 감행했습니다. 그리고 2018년. 터키 동부가 고향인 친구 무흐신을 만나러 갔던 샨르우르파에서 저는 잔수와 아이벡을 만났어요.
출근을 해야 하는 무흐신이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오라며 태워 보낸 버스를 타고 대책 없이 도착한 곳. 예전에는 마을들이 있었으나 댐을 만드는 과정에서 수몰되어 버린 마을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흥미로운 장소였어요. 그곳에서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서 그야말로 꿀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나도 몰래 사진을 찍어버렸죠.
알고 보니 신혼여행으로 한 달간 터키 전국을 여행하는 두 사람은 터키 북부를 지나 동부까지 온 거였어요.** 연락처를 주고받은 우리는 결국 다음날 그다음 날까지 여행을 함께 하게 되었고, 이듬해 두 사람의 집에 초대를 받아 여름휴가를 몽땅 그곳에서 보내게 된 이후 저의 9월 휴가는 자연스레 매년 그들을 방문하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2.
지난 글에서 제가 등 뒤에 기대고 사는 세 가지 문장이 있다고 얘기를 했었지요. 모든 일이 일어나는 덴 이유가 있다. 마음이 무너질 때면 제가 붙잡고 되뇌는 두 번째 문장입니다. 해보기 전에는 모른다는, 첫사랑의 경험이 남기고 간 가르침이 저를 삶에서 많은 순간 용기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면 두 번째 문장은 제게 일희일비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인내하는 법과 단념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어요.
20대 초반은 제가 살면서 행복했던 기억들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시간입니다. 그때의 저는 비로소 난생처음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었습니다. 있는 그대로라 함은, 나의 기대에 못 미치는 부족하고 못난 내 모습까지도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 해당했어요. 가장 행복한 그 시절, 아이러니하게도 제 삶의 가장 어두웠던 시간이 떠올랐습니다. 떼어내려야 떼어낼 수도 없이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던, 가능하다면 아주 없던 일처럼 도려내버리고 싶었던 시절이었어요.
그런데 평소와는 달랐습니다. 매번 속을 울렁이게 하던 그 기억들이 제게 어떤 가해도 하지 못했어요. 그저 단 하나의 생각만이 머리와 마음 모두를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아. 이곳에 있기 위해서 그 모든 시간을 지나와야 했구나. 내가 살아온 그 모든 순간들 중 어느 단 하나라도 바뀐다면 지금 이곳의 나는 없었겠구나."
그 시절 그곳에서 맺은 인연들이 너무나 귀했고, 흘러가는 일분일초가 아까울 정도로 소중했었기에 저는 백 번 천 번이고 기꺼이 같은 과거를 걸어서라도 이곳에 도착하고 싶었어요. 과거의 암담했던 시간조차도 내게 남기고 간 배움이 있었고, 그런 배움들이 모여 이곳까지 저를 오게 했던 거니까요. 비로소 나쁜 기억을 부정하거나 미화하거나 도려내지 않고 그 또한 내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가장 아픈 상처가 가장 행복한 시간을 통해 치유된 셈이었어요.
이후로 저는 화가 나거나 억울하거나 부당함을 느끼는 수많은 순간들 앞에서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무력함을 느낄 때면 매번 같은 문장을 마음 가운데 올려놓습니다. "모든 일이 일어나는 덴 이유가 있어."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내 맘 같지 않을 때에도 말합니다. "모든 일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 한 달이든 수십 년이든 세월이 흘러 언젠가는 미래의 내가 오늘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해주길 믿으면서요. "거봐. 모든 일엔 다 이유가 있다니까?"
3.
[마지막 문장을 끝내는 손가락이 가볍습니다. 내일 드디어 쉬는 날이거든요. 그리고 모레부터는 본격적인 가을비 소식이 일주일을 꼬박 이어질 예정이고요. 아마도 올해의 마지막 체코의 여름날이 될 것 같습니다. 내일은 기필코 수영장으로 달려갈 거예요. 이 글을 발행하고 나면 내일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수영장으로 달려갈 수 있으니까요.]
원래라면 위의 문장이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이 될 예정이었는데, 왜인지 저는 수요일이 고작 두 시간밖에 남지 않은 지금도 글을 쓰고 있어요. 지난밤 결국 글의 시작과 마지막 사이를 모두 채워내지 못하고 잠들어버린 탓입니다. 오늘 하루 종일 뭐 했냐고요? 당연히 마지막 여름날을 놓칠 수 없으니 글은 잠시 미뤄두고 수영을 하고 왔습니다. 홀가분하진 않았지만 행복했으니 변명은 하지 않을게요.
곧 여름이 떠나겠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올해는 드디어 2년 만에 9월 여름휴가를 재개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목적지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망설임 없이 터키의 남부 지중해 지역으로 가는 티켓을 끊었어요. 그곳에 바로 잔수와 아이벡 부부가 살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제 이주만 있으면 두 사람을 만난다니 생각만 해도 미소가 떠오릅니다. 그저 지중해의 햇살 아래에서 누워 수다를 떨고, 수영을 하고, 밤늦도록 깔깔거리며 서로를 부둥켜안고, 우리가 함께하는 순간들을 있는 힘껏 사랑하는 게 이번 휴가 계획의 전부예요.
두 사람과의 만남은 내 생에 일어난 가장 근사한 우연 중 하나랍니다. 그들은 제가 아는 이들 중 가장 정의롭고 따뜻한 사람들입니다. 강한 자에게는 강하되 약하고 소외된 이들에겐 한없이 너그러운, 제가 마음 깊숙이 존경하는 친구들이에요. 문득 다음엔 두 사람에 대한 얘기를 제대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멋진 사람들을 체코의 궂은 날씨가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체코의 을씨년스러운 가을이 사랑스러워 보이려고도 하네요. 이 또한 제가 체코에 와야만 했던 이유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9월에 터키로 도망가지 않았었다면, 이 두 사람을 만날 일은 없었을 테니까요.
오늘 밤엔 꿈에서 체코의 우중충한 가을에 힘들어하던 7년 전 저를 찾아가 말해주고 와야겠어요.
"거봐. 모든 일엔 다 이유가 있다니까?"
아니 여러분 날씨 좀 보세요. 제가 수영을 안가고 배기겠어요?!
*이글에서는 과거 시점을 반영하기 위해 편의상 튀르키예 대신 구명칭인 터키를 사용하였습니다.
*튀르키예의 국토면적은 대한민국의 약 8배로, 자신의 거주지와 먼 지역을 한 번도 방문해본 적이 없는 튀르키예인 국민들도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