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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Apr 06. 2021

혼자라서 더 나답게

비혼을 꿈꾸게 된 20대 직장 여성의 이야기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 절대 지고는 못사는, 승부욕 하나는 끝내주던 열네 살의 은지가 정한 인생의 좌우명이었다. 남들보다 두 뼘은 작아, 체육시간이면 맨 앞 줄을 면치 못했던 그 작은 꼬마가 무엇을 안다고 인생을 고민했을까. 중2병에 걸려 진지하게 몇 날 며칠을 썼다 지웠다 하며 좌우명을 정했을 모습을 떠올리니 우습기만 하다. 그 시간에 공부나 할 것이지.


딱 두 배만큼 인생을 경험한 스물 여덟. 2년차 직장인이 된 지금도 끝이 있다는 사실은 큰 위안으로 다가온다. 당장 제출해야 될 경영 실적 보고서, 국정감사 대응 등 이름만 들어도 어깨가 무거워지는 업무들도 반드시 끝이 있으니까. 끝나면 다시 마음의 평화가 찾아들 것이란 확신이 버거운 오늘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그런데 요즘은 왜인지 끝이라는 단어가 달갑지만은 않았다. 


기획재정부 업무연락방을 통해 급히 들어온 요청 자료를 제출하고, 점심식사를 하러 가려던 찰나 파티션 위로 손이 쑥 들어왔다.


“저 다음 달에 결혼해요.”


환하게 웃는 지우 씨의 얼굴에 설렘이 가득했다. 입사 동기인 지우 씨는 나보다 한 살 어리다는 사실을 잊고 지낼 만큼 싹싹하고 깔끔한 일 처리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어머, 지우 씨 축하해요. 야외 결혼식이라니 너무 예쁘겠다!”

“언니, 식사 진짜 맛있는 걸로 준비했으니 남자친구 분이랑 꼭 같이 오세요! ” 


짧은 대화를 끝으로 지우 씨는 청첩장 한 뭉치를 들고 사무실 곳곳을 돌아다녔다. 추운 겨울이 지나 봄이 성큼 다가오니, 내 자리에는 청첩장만 벌써 다섯 개가 쌓여있다. 어떻게 다들 평생 한 사람이랑 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는 건지 신기하기만 했다. 


제 아무리 죽고 못사는 연애라도 끝은 존재했다. 헤어지거나, 결혼하거나. 결혼을 연애의 끝이라고 단정짓기 어렵겠지만, 이런 말도 있지 않는가. 결혼은 연애의 무덤이라고. 


“이 선임, 김치찌개 별로야? 어제 회식 때 거하게 마셔서 그런지 속 풀리고 좋은데.”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자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나 보다. 

“아니에요, 잠깐 딴 생각을 좀 하느라…” 


쓸데없이 예리한 최 책임의 한 마디에 눈 앞의 김치찌개에 집중했다. 칼칼한 국물과 김치, 적당히 양념이 벤 돼지고기를 한 입에 넣었다. 깊은 감칠맛과 두툼한 돼지고기의 쫄깃한 식감까지. 그래, 이 맛이지. 김치찌개 위로 핑퐁 되는 대화의 화두는 지우 씨의 결혼이었다. 신랑 될 사람은 치과의사로, 둘은 궁합도 안보는 네 살 차이란다. 소개로 만나 8개월의 짧은 연애를 했고, 남편이 결혼 적령기에 다다라 결혼을 서둘렀다고 했다. 회사의 모든 소식은 차성민 주임을 통한다더니 역시나 모르는 게 없다. 벌써 모바일 청첩장까지 받았는지 제 스마트폰으로 둘의 웨딩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보여주었다. 평소 남의 일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탓에 ‘그렇구나.’ 하고 통통한 계란말이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은지는 남자친구랑 결혼 생각 없어?”

실장님의 한 마디에 식탁에 둘러앉은 여섯 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내게로 향한다.


“저요? 아직 멀었죠. 요즘은 다들 서른 넘어서 가잖아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보지만, 복잡한 마음이 얼굴에 드러날까 괜스레 냉수만 들이킨다. 


사실, 한 달 전 은수는 내게 프로포즈를 했다. 내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웠지만 그에게는 오래 전부터 준비된 일이었을 지 모른다. 승진을 했으니, 안정적인 가정을 꾸려 가장이 되는 것이 그에겐 당연한 수순이었을까. 휴학 한 번 없이 바로 취업을 한 덕분인지, 매번 그는 또래보다 조금 더 빨리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은수가 결혼을 서두른 것도. 한국과 인도를 오가며 진행되던 은수의 AI 자율주행 프로젝트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나 역시 사회인으로 성장하며 버거운 한 해를 버텨냈으니 재충전이 필요했다. 그렇게 둘은 겸사겸사 일주년을 기념해서 치앙마이로 떠났다. 


롱패딩으로 꽁꽁 싸매던 한국의 날씨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온화한 기후와 저렴한 물가에 행복한 휴가였다. 바다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굉장한 관광지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한 달 살기의 성지로 꼽히는 치앙마이. 슬로우 시티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도시였다. 바쁜 일상을 잊을 만큼 편안한 휴식과 호텔에서 제공되는 아침 요가 수업으로 마음의 평화까지 되찾았다. 얼마 만인가, 몸도 마음도 이렇게 최상의 상태였던 적이. 


여행 마지막 밤은 특별한 일정을 갖기 보다, 방안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내 오랜 습관이었다. 이번 여행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일찌감치 샤워를 하고 나와 일기를 쓰려던 차  은수는 맥주 한 캔을 건넸다. 머리가 띵할 만큼 차가운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고 나니, 행복이 따로 있나 싶다. 역시 은수는 내 소소한 즐거움까지 알고 있는 섬세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일기를 끄적이며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아쉬워, 간접 등만 켠 채 나란히 앉아 일주일 간의 여행을 되짚어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웃고 마시던 중, 등 뒤로 휴대폰 벨소리가 울린다. 내 것인가 하고 돌아보니 은수의 아이폰이 침대 위에서 빛나고 있다.


“부장님 전화. 나 전화 좀 받을게. 미안해.”


테라스로 향하는 은수의 뒷모습이 왠지 평소보다 더 단단하고 듬직하게 느껴졌다. 요새 체중이 조금 늘었다고 매일 저녁 크로스핏을 하고, 샐러드와 닭 가슴살로 연명하던 그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나 보다. 문득 첫 만남에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가던 그 훤칠하고 날렵한 사내가 떠올랐다. 통화가 길어지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테라스 쪽으로 몸을 일으켰다. 작게 들리는 은수의 목소리.


“부장님께서 신경 써주신 덕분입니다.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보답 드리겠습니다.”


은수는 대리급 승진은 근속년수로 결정된다고 말했지만, 안도하는 표정을 보니 꽤나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었다. 통화를 마치고 돌아서는 은수가 대견해서 두 팔 벌려 안아주었다.


“축하해. 지은수 대리님! 우리 은수 다 컸네 이제. 오구오구 장해.” 

“이은지 선임님, 말씀이 지나치시네요. 저 이제 스물아홉입니다. 예전이면 진즉 상투 틀었어요.”


장난스러운 표정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기쁜 날, 냉장고에 남은 맥주 두 캔으로 이 밤을 보낼 순 없었다. 우리는 호텔 25층에 위치한 라운지 바로 향했다.


짠-. 경쾌하게 샴페인 잔을 부딪치고 유리창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 너무 추리해서 웃음이 나왔다. 그 모습조차 참 우리답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은수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매 순간 은수의 표정에는 그의 생각과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은수의 가장 사랑스러운 면이지만, 때로는 그의 마음을 몰래 들여다본 것 같은 느낌에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잔뜩 긴장한 표정과 굳은 표정, 무엇인가 준비한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테이블 아래를 흘긋 보니 그의 손에 민트 박스가 들려있다. 


“나랑 결혼해줄래? 승진을 고대했던 이유는 하나였어. 은지랑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싶었어. 좋은 남편, 자상한 아빠가 되어줄게. 우리 결혼하자.”


나를 바라보는 은수의 시선이 너무 뜨거워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영화나 드라마에는 예상치 못한 프로포즈의 순간을 눈물과 함께 극적인 행복으로 묘사하던데, 정작 그 순간을 마주하니 무덤덤하기만 했다. 물론, 은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이 사람과 함께하는 안정적이고도 평화로운 미래가 그려지는 한 편, 나를 중심으로 돌던 세상의 축이 뒤틀려 변두리만을 떠도는 작은 위성이 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앞섰다. 기대감보다 걱정의 무게가 더 컸기 때문일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확신이 들지 않아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이며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미안해 은수야.”


그렇게 여행에서 돌아온 우리는 아직도 이렇다 할 연락 없이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완벽한 여행에서 가장 큰 오점이 되어 버린 은수의 프로포즈를 몇 주째 곱씹는 중이었다. 은수는 객관적으로 좋은 남자친구다. 내가 갖지 못한 장점들로 나의 세계를 확장하는데 일조하고 있고, 긍정적인 자극을 주는 사람이었다. 뼛속까지 이과, 공돌이임에도 그의 서제에는 김진명, 히가시노 게이고, 베르나르 베르베르 등 소위 다작한다는 작가들의 소설이 빼곡히 꽂혀있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문장에서는 항상 섬세한 감성이 묻어나왔다. 실용서 위주로 독서 편식을 하던 내게 그의 책장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퇴근하면 헬스장에 다녀와서 간단한 저녁과 함께 독서를 즐기는 그를 보며 나 역시도 한 달에 한두 권씩은 꼭 읽는 습관을 기르기 시작했다. 피로에 찌들어 늘어지는 주말에도, 새벽 6시면 눈을 떠 부지런히 아침식사를 준비하던 사람이었다. 평생을 과수원을 경영하시던 부모님을 닮아, 부지런함과 성실함이 몸에 베인 사람. 이렇게 보기 드문 남자인데, 무엇이 두려워 은수의 손을 잡지 못했을까. 머릿속이 복잡한 탓인지, 꽤나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 온 편두통이 또 시작이다. 첫번째 서랍을 열어 타이레놀 한 알을 삼키는데, 문득 엄마의 잔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환절기 마다 두통약을 달고 사는 나를 측은하게 여기는 세상에서 가장 말랑한 사람.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단 한 순간도 내 롤모델이 된 적 없는 사람, 문득 당신이 보고 싶어졌다. 


초등학교 시절이었던가, 미술 시간마다 집을 그려낼 때면 망설임없이 집 안에서 활짝 웃고 있는 엄마를 그려냈다. 경찰서에 경찰관이, 소방서에 소방관이 있는 것처럼 우리 집엔 항상 엄마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하교 후 대문을 열 때, 문이 한 번에 열리지 않으면 괜스레 마음이 서글펐다. 우유 구멍에서 비상 열쇠를 꺼내, 불 꺼진 집에 들어가는 날이면 잠깐의 외출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에게 온갖 짜증을 내곤 했다. 

“엄마 없는 집에 들어오기 싫다고!” 


34평 작은 아파트에 엄마를 가둬둔 못된 딸의 성화에 엄마는 그저 미안하다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나를 만나기 이전에 꿈꿨던 그 넓은 세계는 완전히 잊어버린 걸까. 92년 11월 27일 이래로 당신의 우주는 45.2cm, 2.49kg의 작은 생명으로 몇 곱절은 축소되었다. 


당신은 전남 영광에서 8남매 막내로 태어났다. 늦둥이에 막둥이였으니 얼마나 금지옥엽 자랐을까. 온 마을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중학교 때는 전남 대표로 영어 말하기 대회에 나갈 정도로 영어를 좋아했다. 영어를 잘하면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는 큰외삼촌의 한 마디에 영어 교과서를 달달 외웠다고 한다. 그렇게 더 넓은 세상을 꿈꾸던 스무 살의 당신은 4년 전액 장학금도 마다하고 서울로 상경했다. 모든 것이 새롭던 즐거운 나날 속에서 영문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S전자에 입사했다. 난생 처음 제 힘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업무의 대부분이 영어와 맞닿아 있다 보니 언젠간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갖게 되었다. 제주도도 한 번 못 가본 영광 촌뜨기였지만, 서른 다섯 즈음에는 최고의 석학들과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퇴근 후에도 공부를 손에 놓지 않았다.


총명하던 막둥이는 스물 다섯이 넘어가자, ‘공부 더 혀서 뭣에 쓴다냐. 인자 정신차리고 시집 가야할터인데, 은제 정신 차리까.’ 라는 잔소리와 함께 헛똑똑이 소리를 들었다. 네 살 차이라며 등 떠밀려 나간 선 자리에서, 축구를 좋아하던 사내를 만나 이렇다 할 연애없이 반 년 만에 화촉을 밝혔다. 그 때는 누구나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결혼 외의 다른 옵션이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어느 누구도 말해준 적 없었고, TV에서도, 영화에서도 결혼하지 않은 30대 넘은 미혼 여성은 본 적도 없었다. 2005년 방영된 MBC 드라마 ‘내 이름의 김삼순’의 노처녀 삼순이의 극 중 나이가 서른이었으니,  엄마 때는 알만 했다. 그렇게 스물일곱 어린 나이에, 허니문 베이비가 뱃속에 자리잡으면서 갑작스레 엄마가 되었다. 나보다도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된 당신은 어땠을까. 엄마가 된다는 행복도 분명 있었겠지만, 그 막중한 책임감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당신에게 묻고 싶어졌다. 당신이 지금 나라면, 어떤 선택을 내리게 되었을까. 문득 당신의 냄새가 그리워져 두 달 만에 본가로 퇴근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사실 본가에서 회사는 지하철로 1시간 20분 거리로 평균 직장인들의 출퇴근 거리였다. 단지 1시간이라도 더 자고 싶다는 간절한 수면욕 때문에 자취를 선택한 것이었다.  9호선 지옥철에서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다 보니 정신이 혼미해진 채로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이 열리기 무섭게 한걸음에 뛰어나오는 엄마. 꽤나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반가움이 가득하다. 


“아이고, 우리 개둥이 왔나. 먼 길 오느라 욕봤다. 얼른 옷 갈아입고 나와, 식기 전에 밥 먹자.”

“아유, 뭐 대단한 사람 왔다고 잔뜩 차렸대. 허리도 안좋은 양반이… 근데 엄마, 잡채도 있어?”

능글맞게 웃는 나를 보며 엄마는 잔뜩 의기양양해져서 답했다. 

“그럼, 잡채 귀신 먹으라고 잔뜩 해놨으니 걱정 말고 많이 먹어.” 


벌써 8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인데, 식탁 위로 나의 재잘거림을 제외하면 집안은 절간 마냥 고요하기만 했다. 그제서야 최근 몇 년간 당신의 저녁 풍경은 이렇게 적막했겠구나 싶었다. 정시 퇴근 한 번 한 적 없는 아빠, 지난해 대학교에 진학한 이래로 기숙사 생활을 하는 진혁이, 그리고 내가 없는 빈 집에서 여전히 당신은 언제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차, 나도 모르게 괜한 소리를 했다. 


“엄마는 그 때 회사 그만둔 거 후회 안 해?”

뜬금없는 질문에 가지 볶음을 집으려던 엄마의 젓가락이 순간 멈칫함을 느꼈다. 엄마의 아픈 곳을 찌른 건가 해서 애써 못본 체하며 괜히 냉수만 들이킨다. 잠깐의 정적 뒤로 당신이 답했다.


“때때로 후회한 적도 있지. 엄마도 사람인데… 그런데, 너희들을 만나면서 얻게 된 행복이 너무 커서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했겠다 싶어. ”


엄마의 대답은 나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한 착한 거짓말이 아닐까. 평생을 총명한 딸로, S전자에서 커리어 우먼으로 보낸 세월보다 더 긴 시간을 전업 주부로 보낸 삶에 만족하는 걸까. 우리 뒷바라지를 위해 희생한 시간은 자그마치 20년이 넘었고, 어떻게든 돌아오지 않을 가장 빛나던 엄마의 황금기인데 아쉬움이 남는 것이 당연했다. 어느새 팽팽했던 당신의 눈가에 깊은 세월의 흔적이 자리하고, 빛 바랜 청춘의 결과물은 무엇인가. 하나로 단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스스로 밥벌이를 할 만큼 성장한 지금의 내가 그 성과가 아닐까. 미안했다. 엄마의 청춘과 바꾼 결과물이 고작 ‘나’라니. 많은 동물들과 달리 양육 기간이 몇 십 배는 족히 길게 진화한 인류가 새삼 원망스러워졌다. 코가 시큰해져, 재빨리 조금 식은 밥을 뜨끈한 미역국에 말아 한 숟가락 가득 입안에 넣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털어놓았다.


“엄마.. 사실 나 은수한테 프로포즈 받았어. 오빠를 놓고 싶지는 않은데, 결혼은 하고 싶지 않아. 몇 년 뒤에 하고 싶다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아무리 생각해도 여자한테 너무 손해야.” 

갑작스레 방문한 딸은 복잡한 속내를 두서 없이 풀어내고 있었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생각에 잠긴 듯한,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십여 년 전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아빠는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K자동차를 그만두고 냉혹한 현실로 뛰어들었다. 평생 안정을 최우선 가치로 생각하던 서른 초반의 사내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이듬해 IMF가 터졌고, 아빠의 전 회사는 H자동차로 합병되었다.(당시 동기들은 야근과 주말 출근을 반복했다고는 하지만, 현재는 한 자리씩 임원 자리까지 차지하며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IMF의 여파로 아빠의 사업은 자리를 잡기도 전에 휘청였고, 우리 네 식구는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빌라로 내쫓기 듯 이사했다. 당시 새카맣게 타버렸을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기에는 너무나도 천진했던 터라, 우리 집 마당을 동네 친구들과 함께 쓸 수 있다며 해맑게 웃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계 경제가 기울어진 이후, 엄마는 5년의 공백을 깨고 두 번째 직업을 갖고자 했다. 고작 서른 둘, 지금 내게 언니뻘인 엄마에게 주어진 일자리는 색칠 부업, 인형 바느질이 전부였다. 서울 유수의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한 때는 잘나가는 커리어 우먼으로 두려울 게 없었던 야무진 모습은 그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았다. 개천에서 용 났다며 온 가족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똑쟁이 막내는 어디로 갔을까. 그녀가 실존했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현실은 달라져있었다. 단지 5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마다 베개를 적시며 그 때를 그리워하며 처한 현실을 부정하진 않았을까.  


그 무렵 부모님은 자주 다퉜고 그 때마다 내 세계의 전부인 당신이 나를 두고 떠날까 두려웠다. 그래서 큰 소리가 나던 밤이면 우는 동생을 숨죽이게 만들고, 방문 밖으로 귀를 쫑긋하며 동태를 살폈던 기억이 생생했다. 가난이 대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창문으로 도망친다는 말마따나, 예전 같지 않은 상황 속에서 서른 남짓한 부부의 인내심은 바닥 난 지 오래였다. 부부싸움의 이유는 거창하지 않았다. 청소가 되어 있지 않는 집안, 다려지지 않은 아빠의 셔츠, 내 생일을 기억하지 못한 아빠라든지. 


그 때 당신에게 나와 진혁이가 없었다면, 엄마의 삶은 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았을까. 미국에서 박사를 하고 돌아왔을 지도,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며 여성 임원이 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마음 한 켠에 엄마가 훗날 나를 원망하지 않았을까 겁이 났고, 세상 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하지만 당신처럼 주체성을 잃은 삶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해왔다. 


오랜만에 본가에서 출근하는 아침, 새벽 댓바람부터 눈을 떠서 부산스레 움직였다. 회사까지 엎드리면 코 닿을 거리에 살고 있는 나로써는, 아침 7시의 출근길 풍경이 낯설기만 했다. 어제 괜한 소리로 엄마 마음을 복잡한 게 한 건 아닐까 고민하던 차, 주머니 속 진동이 느껴진다. 


'은지는 엄마 딸로 평생 살자. 누구 엄마, 누구 와이프 말고 은지로, 엄마 딸로만 살아.' 


나보다 나를 더 아끼는 당신의 진심 어린 한 마디에, 왠지 모를 용기가 솟았다. 오늘은 은수와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근 한 달 만에 은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은수야, 잘 지냈니..? 오늘 퇴근하고 시간 괜찮아?’ 1분 1초가 오늘따라 굉장히 더디게 느껴져 작은 진동에도 수도 없이 핸드폰에 눈이 갔다. 오전 업무를 처리하는 중, 틈틈이 휴대폰을 확인했지만 몇 시간이고 고요하기만 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가도록 은수는 내게 답장을 주지 않았다. 그 때였다, 벨소리가 울린 것이.


“여보세요.”

“은지야, 나 은수. 나 근처 볼 일이 있어 나왔는데, 점심에 보는 건 어때?”


이렇게 빨리 상황을 마주하기엔 마음에 준비가 덜 되었던 터라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황급히 시계를 올려다보니 벌써 12시가 가까워져 있었다. 망설임으로 정적이 길어지자 은수의 낮은 목소리가 그 공백을 채웠다.


“너무.. 갑작스러웠지? 미안해.”

아무렇지 않은 척 호기롭게 점심을 제안하고는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는 그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 모습이 아른거리니 쉽게 거절하기 힘들었다. 


“점심 좋지. 안 그래도 오후 반차라 여유 있을 것 같아. 브런치 어때?”

“그래, 간단히 먹자. 10분 뒤에 회사 앞으로 데리러 갈게.”


아름다운 마지막을 준비하고자, 옷 매무새를 한 번 다듬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두 볼이 움푹 패이곤 하는 은수의 모습이 떠올라 걱정스러웠고,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네가 상처받지 않을 지 고민스러웠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적당히 따뜻한 햇살과 포근한 구름까지 자연스레 기분 좋은 날씨였다. 저기 신호등에 걸려있는 은수의 차가 보였다. 6개월 전, 은수의 첫 차를 고를 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헤어질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었다. 예상치 못하게 함께했던 시간들을 마주하게 되니 목구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쉼 호흡으로 간신히 진정시킨 뒤 차에 올랐다. 


“은지야, 잘 지냈어? 피곤해 보이네. 어제 늦게 잤어?”

엊그제 본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은 듯 덤덤한 네 말투에 당황스러운 건 내 쪽이었다. 

“아, 요즘 일이 좀 많았어.. 오빠는, 어떻게 지냈어?”

“허전했어, 많이. 결혼으로 행복한 인생 2막을 기대했는데, 나 혼자 꾸는 꿈이었다는 상실감이 크더라. 이런 말 하면 안되지만.. 혹시 다른 남자가 생겼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은수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내가 너 말고 다른 남자 만날 사람이야?”

“그럼 뭔데.. 그동안 잘 만나왔으면서 왜 결혼은 안한다는 건데.”


평소 침착한 은수가 이렇게 언성을 높이는 모습은 처음인지라 편두통이 또 시작되는 것만 같았다. 그 때였다. 앞차와의 안전거리를 유지하지 못한 것이. 은수가 급히 브레이크를 밟아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앞 차 번호판을 찌그러트릴 뻔 했다. 


“차 세워. 이렇게 운전하다 사고 나겠다.”

대답은 없었지만 은수도 동의했는지, 다음 골목으로 들어가 갓길에 차를 세웠다. 

“은수야..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나는 한 번도 결혼을 꿈꿔본 적이 없어. 그게 너 뿐만이 아니라, 그 누구와도 말이야.”

“그런 생각이면 연애는 왜 했니? 나는.. 가지고 논거야?”

“연애의 끝이 반드시 결혼인 것은 아니야. 프랑스에서는 동거인으로 평생을 살기도 하고, 서로를 파트너로 삼고 살아가는 제도들도 많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그럼 우리 관계는. 평생을 반쪽짜리처럼 이렇게 여자친구, 남자친구로 살자고? 당연히 사랑하면 결혼하고 너랑 나 닮은 아이 낳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니야? 도대체 뭐가 문제야.”

“사실 나는..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 살아가는 미래를 그려본 적이 없어. 우리 엄마처럼 그렇게 희생할 자신도 없어. 각자의 삶을 살아내는데 함께하는 파트너. 딱 그 정도면 좋을 것 같은데… 이번에 알게 되었어. 그게 내 욕심일 수 있다는 것을.”

“이기적인 생각이지 그럼. 손자도 안겨드리고 제대로 효도해야지. 엄마 아빠한테 안 미안해? 다들 이렇게 살아. 왜 너만 특별하다고 생각해. 왜 너만…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혀서 결혼을 안하겠다는 거야. 도통 이해를 할 수가 없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은수는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은수는 왜 결혼을 당연한 것이라고 강하게 믿고 있는 것일까. 하나의 제도일 뿐인데, 답답하기만 했다. 

“오빠 입장에서는 이기적일 수 있지만, 내 입장에서는 하나의 선택일 뿐이야. 더 이상 이야기해도 답이 없을 것 같네.”

허망한 표정의 은수를 뒤로 하고 차에서 내렸다. 식욕을 잃어서 인지, 목적지 없이 정처없이 걸었다. 그러던 중, 수제 맥주도 함께 취급한다는 한 카페의 입간판을 보고 주저 없이 들어갔다. 1년 남짓의 연애를 끝마쳤고, 금요일 오후 황금같은 반차까지. 청량한 IPA를 들이키기에 완벽한 날이었다. 


맥주를 주문하고, 다이어리를 꺼내 2x4 모양의 표를 하나 그렸다. 세로축에는 10년 단위로 38살, 48살, 58살, 68살을 적어 넣고, 가로축에는 결혼, 비혼을 적었다. 결혼한 나의 미래에는 아이 초등학교 입학, 대학교 입학, 아이 결혼, 손자 돌보기 등 뻔한 미래로 한 칸씩 채워졌다. 그 외에 육아 휴직, 복직, 승진 등 선택 가능한 옵션들을 추가적으로 넣었다. 누구도 기억할 리 없는 지극히 평범하고 뻔한 미래. 소설의 끝 페이지를 벌써 보고 온 느낌이었다. 자발적 비혼을 선택한 나는 과연 이기적인 것일까. 아이는 꼭 낳아야 하는 것일까. 가족을 이루고, 내 아이를 돌보는 것이 내게 진정한 행복을 줄 수 있을까? 그보다는 내 인생의 한계를 지워내고, 나의 성장을 마주하는 일이 내게는 더 가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주문하신 맥주 나왔습니다.”


키치한 그림의 맥주잔에 담긴 황금빛 맥주, 은은한 자몽향이 느껴졌다. 복잡했던 일들을 뒤로 하고 한 모금 깊게 들이마셨다. 알싸한 향긋함이 입 안 가득 퍼지자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한 모금 더 마시고, 다이어리를 보니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났다. 스무 살에 적었던 허무맹랑한 버킷리스트들까지도 이루어낼 수 있을 것 같단 용기가 솟아나는 것 같았다. 38살에 10년  직장생활로 모은 돈으로 세계여행을 떠나, 여행기를 담은 작가가 될 수도. 대학에서 새로운 학문을 배우는 것도 가능했다. 유연근무제를 활용해서 환경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휴직하고 영국에서 기후변화 박사학위를 받아 귀국한다면 그것 역시 멋진 삶일 것이다. 마흔여덟에는 경험을 십분 발휘하여, 나처럼 비혼으로 살고자 하는 여성들과 연대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어볼 수도 있다. 쉰여덟에는 꾸준히 내 몸을 가꾸고 단련해서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해볼 수 있는 멋진 할머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와의 시간이 늘어난 만큼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늘의 다짐을 마음에 깊게 새기고, 단단하게 살아가고자 한다. 혼자라서 더 나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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