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도
- 이해인
적어도 하루에
여섯 번은 감사하자고
예쁜 공책에 적었다
하늘을 보는 것
바다를 보는 것
숲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기쁨이라고
그래서 새롭게
노래하자고.......
먼 길을 함께 갈 벗이 있음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기쁜 일이 있으면
기뻐서 감사하고
슬픈 일이 있으면
슬픔 중에도 감사하자고
그러면 다시 새 힘이 생긴다고
내 마음의 공책에
오늘도 다시 쓴다
초등학교 때 엄마가 예쁜 공책을 선물해 주며 앞표지에 적어줬던 이해인 수녀님의 시가 종종 생각난다. 공책을 받아서 시를 읽어 보았을 때는 '어른이 되면 이렇게 자연스레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종종 다시 이 시를 꺼내 읽으면서 '나는 어른이 되었고, 감사하는 마음은 여전히 나에게 자꾸 상기시켜줘야 한다'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최근에 '해인 글방'이라는 방송에서 처음 수녀님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내가 읽어 온 소녀 같은 수녀님의 시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따뜻하지만 참 씩씩한 수녀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인 수녀님 말씀을 들으며 작년에 내가 힘들어했을 때 나를 안아주신 크리스티나 수녀님 생각도 참 많이 났다.
내 마음에 뭘 품고 사는지 가장 궁금한 요즘, 기도 속의 나의 마음을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나의 기도가 그래도 조금 철이 든 것 같다.
나의 기도
하느님, 제발 오늘 인터뷰 보는 회사에 꼭 합격하게 해 주세요.
하느님, 제발 제가 이번 시험 잘 보게 해 주세요.
하느님, 제발 제 기도를 들어주세요. 소원을 들어주세요.
어떤 기도는 제발 원하는 것을 보내달라는 기도로 가득했다. 소원을 들어달라고 부탁하면서도 나는 '이번 한 번만'이라는 조건은 절대 붙이지 않았다. 욕심이 참 많은 한 인간으로서 앞으로도 하느님께 부탁할 일이 많다는 것은 하느님도 알고 나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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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내 손으로, 내 의지로 묵주기도, 그것도 구일기도를 시작한 것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3년 차쯤 되었을 때인 것 같다. 나는 여기저기 도시를 옮겨 다니며 다양한 사람들과 일을 하며 회사라는 공동체가 녹록지 않다는 것도 느끼기 시작했다. 이왕 이렇게 힘들게 돈 버는 거라면 내가 물질적,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존중받는 느낌을 주는 공동체에서 일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나에게는 익숙한 그 치열함으로 이를 악물고 이직 준비를 했다.
치열하게 묵주 기도를 함께 시작했다.
그 시기를 회상하면 나는 매일 하루하루를 긴장 속에 살았다. 그렇다고 그 매일이 지치고 힘들게 느껴졌다기보다는 내가 그리는 목표를 향해 뛰느라 뜀박질 준비 자세를 풀 수 없었다. 언제나 뛸 준비를 하고 있느라 내 마음에 찾아오는 이런저런 희로애락을 못 본 척했던 것 같다. "내가 지금 목표하는 회사에 들어가면 그때 좀 여유 있게 내 마음을 돌볼게. 어쩌면 이 시기를 잘 보내고 나면 상처가 아물듯이 아무렇지 않을 것이니 조금만 참자."라고 했던 것 같다.
이때 첫 묵주기도는 내 마음을 위해 드린 기도는 전혀 아니었다. 내가 소망하는 그 목표가 이루어지도록 간절하고 더 간절히 기도했다. 공부나 일 때문에 기도할 시간을 못 찾거나 너무 피곤해서 묵주기도가 하기 싫은 날에도 역시 '이를 악물고' 묵주기도를 드렸다.
하느님 제발 제가 원하는 것을 빨리 보내주세요.
저 이렇게 꼬박꼬박 기도드리고 있잖아요.
하느님은 또 들어주셨다. 그 당시 느끼기에는 내가 원하는 시간보다 더디게 소망이 현실로 찾아왔지만 ‘어떻게든 하느님은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시는구나'하고 생각했다. 입사 계약서를 보며, 달라진 월급 명세서를 보면서 찰나의 감사를 드렸던 것 같다. 감사 기도는 청원 기도에 비하면 참 미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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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성취가 부족한 것 같다고, 힘들다고 찡찡대면 엄마는 늘 "유진아, 갖고 있는 감사한 것들을 한 번 봐봐. 이미 감사한 게 얼마나 많은데." 했다. 여태껏 찡찡댄 만큼 엄마한테 저 얘기를 들었으니까 아마 만 번쯤은 들었을 거다. '반복의 은총' 덕분에 어느덧 나의 일상 속에 주어진 크고 작은 풍요와 행복에 감사하는 짧은 기도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한동안 내 소망과 염원을 위한 의무적인 기도를 놓지 못했다. 물론 내가 정한 '의무'였다.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을 나에게 되새기며 나의 일상을 어떤 틀에 맞추어 열심히 살았고, 규칙을 만들어 기도했다. 구일기도가 끝나면 사실 해방감이 들었다.
내가 정한 엄격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내 소망이 너무 아득하게 느껴질 때 크나큰 감정의 동요도 같이 찾아왔었다. 그럴 때 면 나는 어김없이 소망을 담아 구일기도를 시작했었다.
제발 제 마음 좀 알아주세요. 저 이렇게 힘들어요.
제게 없는 이것 때문에 제가 힘든데 이걸 보내 주시면 제가 괜찮아질 것 같아요.
제가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고 기도도 하고 있어요.
어느 날은 기도마저 지친다고 생각했다. 삶의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과 걷잡을 수 없는 공허함이 들었다. 내 기도가 잘못된 건지, 아니면 내가 잘못된 소망을 기도하는 건지, 왜 내가 원하는 것이 현실에 오지 않을까 답답했다. 도대체 언제쯤 들어주실 거냐며 기도 중 하소연했던 기억이 난다. 이 무렵 성당에서 항상 감사와 보람을 느끼며 했던 해설 전례 봉사도 마음의 부담과 함께 버겁게 느껴졌다. 부질없다는 말이 이 시기 내 마음을 잘 표현하는 말이었을 것 같다.
쉼이 필요했다. 나는 이 모든 게 내 마음 안에 있음을 직감했다. 신앙에 대한 회의감보다는, 지금 이렇게 나에게 찾아온 마음의 시련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도도, 봉사도 휴식기를 가졌다.
지나고 보니 이 시기부터 조금씩 내 마음을 위한 기도가 생겨났던 것도 같다. 물질, 명예, 성취에 대한 청원이 있었지만 그 와중에 제 마음이 힘드니 무거운 이 마음도 좀 들어달라고 기도를 드린 걸 보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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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기도와 봉사의 휴식기 속, 깜깜하게 어두운 밤을 지나면서 나는 어쩌면 내 마음을 달래는 방법을 좀 배운 것 같다. 나의 기도가 어쩐지 좀 달라진 것 같았다.
기도 휴식기가 본의 아니게 끝난 건, 크리스티나 수녀님이 주신 숙제 때문이었다. 사실 수녀님께서 내주신 숙제는 기도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어떤 형태가 있는 숙제도 아니었다.
"조용한 성당에 가서 내 마음을 예수님께 말해보기"
사실상은 밑도 끝도 없는 질문, 하소연, 찡찡거림이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싶었다. 수녀님이 내주신 숙제이니까 일단 해보긴 하겠다만, 수녀님의 의도도 처음에는 잘 이해 가지 않았다.
내 방 보다 훨씬 큰 성당 안에서 온전히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익숙하고 고요하고 널찍한 어떤 방에서는 마음의 긴장이 풀린다. 긴장이 풀리니 안쓰러운 내 마음이 더 잘 보인다. 열심히 살면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어린 내 마음을 내가 단 한 번도 알아주거나 칭찬해 준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소리 없이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 그 누군가가 아니고 내가 자꾸 나를 외면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동반한 억울함 같은 게 밀려왔던 것 같다. 마치 어린아이가 넘어졌을 때, 엄마가 주변에 없으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지만, 엄마가 넘어진 아이를 보았다고 아이가 느끼는 순간 그 아이는 세상 서럽게 우는 것처럼. 그런 심리 같았다.
나 말고 진짜 또 이 마음을 누군가 듣고 있기는 한 걸까 싶으면서도 신기하게 점점 회복되는 마음에 감사했다. 어찌 보면 이미 정답을 알고 있었지 않았던가. 모든 건 내 마음 안에 있음을.
이 하소연과 주절거림의 기도를 시작하면서부터 내 기도가 한 번 더 바뀌기 시작한 것 같다. 내 마음의 생각과 감정을 소원, 소망 대신 솔직하게 꺼내 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느님 저 지금 불안해요. 제가 인정받지 못한 것 같아요.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정말 미워요.
이 사람의 이런 행동 때문에 내가 상처받았어요. 나는 언제나 이렇게 인청 받고 싶은 사람인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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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기도가 하고 싶어졌다.
마음은 언제나 맑기만 할 수 없으며 관계 속에서 자꾸 흐려지고 복잡해진다. 그 마음을 인정하고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기로 한다. 일상과 관계 속에서 마음의 회오리가 생길 때마다 '나는 성인은 못 되는구나.' 하며 깨닫는다. 머리로 알게 된 진리가 행동으로는 참 어렵다. 나는 사람이니까 어떠한 감정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여 본다. 그리고 기도한다.
제가 하느님이 주시는 행복의 길을 잘 걸어갈 수 있게 이끌어 주세요. 지금 여기에 있는 그 행복을 감사히 볼 줄 아는 지혜를 주세요. 마음속 고집, 욕심, 아집을 내려놓을 수 있는 현명함과 인내, 용기를 주세요.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마음의 힘을 주세요. 저는 많이 부족합니다. 욕심도, 아집도, 불만도 불안도 자꾸 생깁니다.
내 마음을 향한 기도를 하다가도 여전히 나는 기도 속에서 온전히 내려놓지 못 한 나를 보곤 한다. 간절하고 더 간절히 원하는 것을 달라고 애원한다. 마치 내가 엄마 아빠한테 조잘조잘 '나 이런 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어.' 하면서 내 소망을 털어놓듯이 그렇게 내 기도를 읽어주는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늘 주신 작은 기쁨과 행복들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받고 누리고 있는 행복에 모두 감사드립니다.
제 모든 마음을 털어 둘 곳을 마련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