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만함을 경외시 했던 날들
나는 오랫동안 스스로 집중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었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면 딴생각에 잠기기 일쑤였고, 의자에 오래 앉아 있지 못하고 금세 일어나 배회하곤 했다.
이러한 산만함에 대해 스스로를 자책하며, 머릿속에 불쑥 튀어나오는 잡념들을 억누르려 애썼다.
그래서 한때 '집중력'을 다룬 수많은 책들을 탐독하며 "어떻게 하면 집중할 수 있을까?", "나는 왜 집중하지 못할까?"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헤맸다. 나는 산만함을 억제하고 집중력을 극대화하는 것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자 했었다.
그러던 중, 내가 그동안 가졌던 관념과 완전히 상반되는 『창조적 영감에 관하여』를 접하면서 공감가는 부분과 또 내 모습이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나는 답을 얻기 위해 마치 경주마처럼 시야를 제한하고 주변의 혼란과 내면의 혼돈을 배제한 채 오직 빠른 결과만을 추구하며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마치 '일반 법칙이나 객관적인 사실만을 도출해내는 기계적인 사고에 길들여진 듯이'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논리와 수학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는 답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시, 미술, 문학 등 비선형적인 창작과 감상, 그리고 미학을 탐색해야 하는 영역에서는 다른 종류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이 대목에서 나는 과거 전시회에서 회화를 감상하며 마주쳤던 한 할머니를 떠올렸다. 어느 한 전시회 회화 앞에서 묵묵히 작품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때 나이 드신 할머니께서 제게 말을 걸어오셨다. "너무 멋있지 않나요? 어떻게 이렇게 표현했을까요?" 할머니의 표정에는 어린 소녀처럼 순수한 감탄과 지적 탐구가 타오르고 있었다.
그때 나는 어렴풋이 느꼈다. 나이가 들어도 감정을 표현하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의 마음은 젊고 순수함을 간직한 청춘과 같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극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탐구하고자 하는 태도 또한 유연함을 키우는 일종의 훈련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께서 꾸준히 회화를 보고 배우며 관심을 표했기에, 시간이 흘러도 그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 책은 깊은 사색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것이 내가 어느 순간 놓쳤던 부분이 아닐까 싶다. 걷다가 햇살을 느끼며 푸릇푸릇하게 자란 나뭇잎이나 길가의 꽃들을 보는 대신, 작고 현란한 네모난 화면을 보며 감각의 자극을 차단하고 즉각적인 반응만을 추구했던 지난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 리뷰를 쓰고 있는 지금도 약간의 산만함이 함께하고 있다. 하지만 『창조적 영감에 관하여』에서 이야기하는 산만함에 대한 예찬을 읽으며, 집중력에 대한 강박감을 조금은 내려놓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더욱 산만하게 세상을 누리고 무한한 가능성을 예감하며 내일을 기대하길.
이 책의 추천사처럼, 우리는 조금 더 느슨하게 산만함을 받아들이고 생각을 더욱 넓게 유영할 자유가 있다. 혹시 모른다. 자유롭게 유영하다 보면 또 다른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을지.
이 책을 통해 당신은 산만함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자신만의 창조적 잠재력을 발견하는 여정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설사 그 사색이 가볍고, 쉽게 사라진다고 허탈해하지 마시길.
또 다른 사색은 끊임없이 찾아올 테니.
그러니 집중과 산만함을 모두 수용하며, 마음껏 읽고, 듣고, 바라보고, 그것으로부터 오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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