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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way Jul 11. 2022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헤어질 결심(2022,한국)

*영화 스포일러와 여러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백하자면, 영화 기쁨을 잊고 산 오래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변명을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창궐하는 전염병은 영화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었고, 께 도래한  OTT 서비스의 전성기는 영화 티켓 대신 손 뻗으면 닿을 곳의 리모컨을 쥐게 했. 오랜만에 영화 관련 글을 쓰는 머쓱함에 혓바닥이 좀 길어졌는데, 쉽게 말해 그동안 영화를 많이 못 봤단 뜻입니다.


그러나, 영화 <헤어질 결심>의 개봉 소식은 잠깐 냉담해진 영화신도를 다시 극장으로 불러내기에 충분했습니다. 박찬욱, 박해일, 탕웨이, 깐느 영화제 같은 몇 가지 키워드를 기도문처럼 외우는 것만으로도 신앙심이 샘솟는 기분. 때마침 선물처럼 집 앞 영화관에 <헤어질 결심>의 감독과 배우들이 무대인사를 아온다는 소식까지 들려왔고요. 할렐루야. 이건 못 참지.


한때 박찬욱 감독 동경하여 영화학도의 길을 걸었던 동행과, 탕웨이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필명마저도 충동적으로 수웨이라 지어버린(물론 저와 탕웨이 사이의 공통점은 동아시아 여성이라는 외에 1도 없습니다..) 저는, 마치 잔칫날이면 곱게 차려입고 루즈를 바르시던 우리 할머니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그렇게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오로지 영화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있죠. 티켓을 손에 쥐고, 더듬더듬 내 자리를 찾아 자리를 잡서는, 불이 꺼지는 순간 기분 좋은 긴장과 함께 자를 고쳐 앉으며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하는 일련의 과정. 제게 <헤어질 결심>은 그 모든 과정이 아깝지 않은, '시네마'가 주는 기쁨을 듬뿍 선사하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날 무대에 오른 박찬욱 감독의 인사말대로 '작은 소리 하나, 화면의 귀퉁이 하나까지' 한 땀 한 땀 세심하게 세공된, 넷플릭스 시대에 잠깐 잊고 있 중한 무엇을 다시 되찾은 기분이었까요.



탕웨이.. 워아이니...



동의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제가 내뱉은 첫 감상은 이랬습니다. "뭐야 너무 달달한데? 너무 해피엔딩인데?" 전작 <박쥐>와 <아가씨>를 거치면서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사랑의 함량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박찬욱 감독에게 이 정도거의 <너는 내 운명>이나 <이프 온리>급의 순도 100% 로맨스가 아닌가, 혹은 드라마 <신사와 아가씨> 급의 해피엔딩이 아닌가, 그렇게 동행에게 말하며 웃었습니다.


기묘하고 뒤틀린 인간 본성을 조형적인 아름다움으로 표현해 온 박찬욱 감독은, 이번에의도적으로 '기묘함과 뒤틀림'을 덜어내고, 빈 공간 사랑하는 이들의 감정으로 채웁니다. 그럼에도 감독 특유의 조형미는 영화 내내 아름답게 살아 숨쉬고, 자칫 진부지기 쉬운 '용의자와 사랑에 빠지는 형사'는 스토리는 클래식하면서도 독특한 미장센을 타고 부드럽게 관객에게 가 닿습니다. "이건 대중을 위한 상업영화"라던 박찬욱 감독의 말 뒤에는, "근데 예술적이지 않다고는 안 했다"는 덧붙임이 생략 게 아닐까요.


서로에게 빠져들던 형사 해준(박해일 분)과 서래(탕웨이 분)은 결국 물리적으로 맺어지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가 대단한 해피엔딩이라고 확신.  두 사람이 끝끝내 서로에게 원던 것을 이루기 때문니다.


서래는 스스로 해준의 영원한 '미결 사건'이 되기를 바랍니다. 해준이 영원히 그녀를 잊지 않길, 녀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길, 그녀를 향한 사랑에 히고 잠식되길 원합니다. 결국 서래는 세상에서 존재를 감추는 방식으로 완벽하게 그 바람을 달성합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해질녘 바닷가에서 서래를 찾아 헤매는 해준의 모습, 앞으로 그의 운명이 그와 같으리라는 것을 잔인할 정도로 명확히 못박습니다. 그는 아마 평생 래와의 사랑의 기억에서 벗어날 수 없겠지요. 밀려드는 파도에 갇혀 속수무책 허우적대며.


한편 해준은, 서래의 마음이 알고 싶었을 겁니다. 의자이자 연인으로서, 해준에게 서래는 하나의 거대한 수수께끼니까요. 그래서 해준은 서래에게 계속 질문합니다. 취조실에서, 서로의 집에서, 그리고 그녀를 잊으려 숨은 소도시에서. "이포엔 왜 왔어요?" "왜 그런 남자랑 결혼했어요?"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그 모든 질문들은,  모두 한 가지 의문에서 비롯되었을 테고요. '당신도 나를 사랑니까?'


영화 중반까지도 긴가민가 알 수 없던 서래의 마음은, 그래서 언뜻 많은 범죄 영화의 팜므파탈-매력으로 상대방을 이용하고 도망치는-과 비슷해 보이던 서래의 정체는, 마침내 영화 후반부에 들어서야 확실해집니다. 녀 역시 사랑에 빠진,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참 불쌍한 여자'일 따름이라고요.


서래는 '당신의 사랑이 끝나자 나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고백한 뒤 자취를 추고, 해준은 서래를 삼켜버린 해변에 서서 그녀가 남긴 파일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 사랑의 증거를 듣는 해준의 표정에서 슬픔과 더불어 묘한 환희가 느껴지는 건 그 이유겠지요. 서래 역시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것이야말로 해준이 그토록 원하던 답이었을 테니까요.





무너지고 깨어짐. 이 영화에서 '붕괴'란 '사랑'의 다른 이름이죠. 저는 이것이 <헤어질 결심>을 아주 특별한 멜로 영화로 만들어주는 지점이라 생각했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화자들성장과 구원, 고귀한 어떤 것으로서의 사랑을 다룰 때, 이 영화 이면에 숨은 사랑의 속성을 냅다 까발려 버리거든요.


절망에 빠진 해준의 "나는 완전히 붕괴되었어요"란 탄식이, 서래에게 달콤한 사랑고백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붕괴'라는 말이 이 영화를 관통하는 사랑의 언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사랑이 가진, 한 사람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파괴적인  때문일 겁니다. 때로 우리는  파괴됨의 정도가 클수록 사랑의 크실감 하고요. 쉽게 예를 들 이런 거죠. 툰 애인이 내 얼굴 한 번 보려고 우리집 앞에서 밤새 비를 맞으며 기다 때, 헤어진 옛 연인이 수화기 너머로 "너 때문에 요즘 밥도 잘 못 먹고 잠도 잘 못 자" 하며 울먹거릴 때. 이 사람 나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의 존재가 군가 바닥부터 하늘까지 뒤흔들고 있구나- 하는 야릇한 실감 같은 것.


토록 반듯하고 든든해 보이던 남자가 나로 인해 무너지고 깨어졌노라 는 순간, 그녀에게 그의 사랑은 그 어떤 표현보다도 깊게 가 닿았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든든히 옆에서 챙겨주거나 그녀의 범죄를 은닉해 줄 때보다도 말이죠.


누구나 조금씩은 품고 있지만 쉽사리 꺼내보이지 못하는, 사랑의 잔인하고도 비열한 속성. 그것을 이토록 우아하게 그 영화가 또 있었던가. 역시 방심할 수 없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함께 만든 사람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요.


아, 역시나 나의 탕웨이. 이 영화에서 <만추>의 삶에 지친 이방인과 <색,계>의 유혹자의 눈빛을 동시에 띈 그녀는, 고유의 얼굴과 목소리를 하고 그녀가 아니면 도저히 성립될 수 없었을 세계로 우리를 이끕니다. 특히 해준이 래에게 빠져드는 감정선을 따라가는 영화의 초중반에는, 그녀가 마치 중국 고대 설화 속 등장하는 사람 리는 여우 같다고 생각될 정도였어요.


개인적으로 배우 탕웨이 엄청난 강점은 목소리라고 생각하는데요(녀가 언어에 상관없이 얼마나 천부적인 대사 톤을 가졌는지는 영어로 연기한 <추> 등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특유의 단단한 중음과 이국적인 발음이, 의도된 번역투의 한국어 대사를 만나 빚어내는 오묘한 화학작용이랄까, 풍미랄까. 그런 것들이 영화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사랑하는 여자가 결혼하면 사랑하기를 중단합니까?" 같은 대사를, 중국 혹은 한국의 다른 어떤 배우가 그토록 심장 아프게 소화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탕웨이가 없었어도 <헤어질 결심>은 훌륭한 영화였겠지만, 단언컨대 탕웨이가 없었다면 이만큼 매혹적인 영화는 아니었을 겁니다.


역시나 제가 애정하는 배우 박해일은, <모던보이>와 <은교>에서도 그랬듯이, 다른 세상의 사람을 사랑해버리고 만 남자의 당혹감을 가장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배우가 아닐까 싶습니. 해준과 서래의 첫 만남, 상대를 바라보는 박해일의 눈빛부터 이미 '게임 끝'이죠. 그가 그녀를 지긋이 바라볼 때 둘 사이에는 어떤 구구절절한 당위도 필요 없어집니다. 그 순간 해준이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만이 , 우리는 모두 그것을 납득하게 됩니다. 오로지 박해일의 눈빛 덕분에.


무엇보다 저는 시나리오를 집필한 정서경 작가의 존재에 주목하고 싶어요. 정서경 작가는 <친절한 금자씨>와 <박쥐>, <아가씨>에 이어 <헤어질 결심>까지 박찬욱 감독과 공동 각본을 진행했고, 한 대의 하드에 두 대의 모니터와 키보드를 놓고 박찬욱 감독과 함께 실시간으로 작업하는 방식으로 유명하죠. (저 위에 얘기한 대로) 박찬욱 감독의 작품세계에서 '사랑'의 함량이 늘어나기 시작한 시점이, 정서경 작가와 협업을 시작하면서부터라는 사실은, 제 무척 흥미롭습니다. 찬욱 감독 역시 '내 영화에도 여성성, 아이다운 천진함, 동화적인 아름다움, 낙관주의, 설렘, 감사하는 마음, 쓸데없는 공상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면 그건 정서경에게서 비롯한 것이다'라는 말로 정서경 작가 '샤라웃'  있. 


그래요, 그 말에 공감합니다. 감독의 다른 영화와 비교되는 <헤어질 결심>만의 미묘하고 섬세한 결, 남자 감독의 시선만으로는 절대 나올 수 없었을 듯한 사랑에 대한 해석들, 저는 이 영화를 아름답게 만드는 많은 부분이 정서경 작가로부터 흘러나왔으리라 예상해요. 두 분이서 앞으로도 사랑 얘기 좀 많이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박쥐>와 <아가씨>가 그랬듯, 또 <헤어질 결심>이 그렇듯, 너무 낙관적이지 않지만 충분히 낭만적인 방식으로, 어딘가 낯설고 불편한 사랑의 본질을 이리저리 좀 많이 다뤄 주세요. 그때마다 사랑 이야기를 사랑하는 저 같은 사람은 영혼 깊이 행복해질 겁니다.





 내가 아직 읽지 못한 수많은 상징과 기호가 이 영화에 숨어 있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며칠 뒤에 관람하기로 했는데, 그때는 좀 더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겠죠(그 때까지 이 영화에 대해 범람하고 있는 수많은 해석들을 일부러 한 줄도 읽지 않으려 합니다). 그냥 왠지 이 영화 대해 폭죽처럼 떠오르는 생각들을, 미완의 감상일지언정 지금 꼭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을 나서는 순간부터 하고 싶은 말이 넘쳐나는 영화가 너무 오랜만이라, 그날 밤 동행과 여섯 시간 넘게 오직 이  영화에 대해서만 떠들었음에도 좀처럼 마음이 가라앉지 않습니다. 간만에 느끼는 이 흥분감이 얼마나 소중한지 르겠어요(심지어 지금 노트북이 없어 핸드폰으로 쓰고 있습니다. 아이고 내 엄지손가락).



우린 사실 모두 알고 있죠. 이런 영화 몇 편이 얼마나 인생을 풍성하게 만드는지.


다음 차 관람 후에 만나요.

그럼 우린 또 다른 이야기를 밤새 나눌 수 있을 겁니다. 마침내.




- 2022. 7. 9. 6:00 PM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5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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