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름이를 떠나 보내며
오랜만에 글이 무척 쓰고 싶었다. 사실 며칠이나 되었다. 써야지, 써놔야지. 그렇게 그 글자들이 머릿속을 돌아다닌지는. 글이 쓰고 싶다는 것은 회복의 과정일지도 몰랐다. 요즘 부쩍 내가 다시 움직이고 있고, 돌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언제나 그랬듯 신속하게 재빠르게 적기 시작하지 않았던 것은 무언가를 고르고자한 마음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근 몇 달 내 마음을 폭풍처럼 휩쓸고 간 어떤 재해같은 바람이, 이제 다시 솔솔 기분좋게 불어오기 시작해서였을까. 바람에서 좋은 향이 나기 시작해서 였을까.
나에게 지금 이 순간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것을 고르라면 나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한 신경을 끄고 모든 행동과 말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그들은 나의 고려 대상이었고, 나는 기쁘게 그 반응들을 참고했다. 오랜 내 역사와도 관련된 습관이지만, 이 얘긴 잠깐 집어 넣어두고.
그렇기에 나는 내가 힘든 일을 겪고 있을 때 나누는 것을 언제나 어려워했다. 나의 좋은 기분을 전하는 것은 기쁜일이 되지만, 내 고통을 나누는 것은 짐이 된다 생각이 들었기에. 그래서 힘듦을 혼자 소화시키고 가다듬는 것엔 조금 능해졌다. 나름 기특한 부분이다. 그러다보니 깨달은 건, 힘듦을 나눠본 경험이 적어서, 누군가를 위로할 순간에 내가 대단히 서툴다는 것이었다.
위로받을 상황을 겪어본 적 없으니, 어떤 것이 위로가 되는지를 몰랐다. 몇 년에 거쳐 깨달은 사실을 통해 나는 아주 조금씩 내 약한 부분, 고통, 힘듦을 공유하기 시작했더랬다.
감사하게도 신은 내 삶에 견딜만큼의 고통만을 주셔서, 별탈없이 잘 지내왔다. 엄살쟁이인 나를 성장시키듯 조금씩 조금씩 경험을 주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푸름이와의 이별도 몇 달이 지난 지금, 다행히 씩씩히 잘 견뎌내고 이겨내는 중이다. 푸름이는 고맙게도 영원한 내 마음의 별이되어 나에게 몇 배의 감사를 주고, 언제고 책갈피처럼 지금을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줄 이정표가 될 것이다.
작년 9월 너무 감사한 아이들 구름이 푸름이가 우리에게 찾아왔다. 쌍둥이라니. 우리가 쌍둥이 부모가 된다니. 얼떨떨함과 동시에 그 특별함에 나는 많이 설레었다. 자연임신에 이란성 쌍둥이는 정말 흔치 않다고 해서 말하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언제나 1순위의 이야기거리가 되었다. 초음파를 볼때에도 두배의 기쁨 설렘, 내 뱃속에서 움직이는 꼬물꼬물한 두 형체를 보고 있으면 내가 동화속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았다.
두려움보다는 설렘, 신남, 즐거움이 컸다. 12주까지 몸에 무리가 많이 가서 입원도 하고 불안이 적은 나에게 매일매일 작은 불안을 선물하는 일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어쨌건 나는 구름이 푸름이가 참 좋았다. 둘이라서 좋았고, 영원한 친구를 갖게될 둘이 부럽기도 했다.
처음부터 아기집도 크기도 작았던 푸름이로, 병원에서 베니싱트윈에 대한 이야기를 수차례들었지만 기특하게도 푸름이는 계속 잘 따라와줬다. 12주면 보통은 안정기에 들어간다 하는데, 쌍둥이는 안정기가 없다는 말을 들으며 그래도 16주까지 크기차이에도 불구하고 따라와줬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너무 고맙다.
나에게 꽉 찬 네달이라는 쌍둥이엄마 체험을 주고, 푸름이는 별이 되었지만 나는 푸름이 덕분에 정말 많은 위로를 경험했다. 저마다 다른 위로의 형태가 내 마음을 울렸다. 그 말이 어떤 말이든 어떤 표현이든 다 내 마음에 와 닿았다. 너무너무 깊이 와 닿았다. 나는 푸름이 덕분에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조차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마침 그 이별하기 한달전 읽었던 상실수업이라는 책에서, 30분 울 것을 10분만 울지 말 것이라는 글을 기억해 눈물이 나면 나는대로 울었다. 그럴때마다 지치지도 않고 옆에서 하염없는 위로를 나누어준 남편에게도 평생 써도 못 쓸 감사가 남았다. 나도 그에게 위로가 되고싶단 결심도 남았다.
어떤 이들은 같이 울어주고, 시간을 내주었으며, 어떤 이들은 차마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몰라하는 모습으로 나를 위로했다. 그 모든 위로가 나의 등을 토닥였고, 그덕에 나는 슬픔을 잘 삼켜 소화시키는 중이다.
이제 꽤 울지 않고도 푸름이 얘기를 할 수 있게 된 요즘인데, 이상하게 글을 적는 내 눈물이 쏟아진다. 이것도 또 다시 내가 나에게 주는 위로일 것이다. 배부르게 위로를 받아보아서, 이제 나는 위로도 잘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푸름이가 아니었으면, 나는 구름이의 소중함도 이토록 크게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구름이가 없었다면 이번 이별을 지나는덴 더 오랜 깊은 슬픔과 좌절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너희가 쌍둥이로 태어나지는 못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연결되어 나의 오늘을 완성시켜주고 있는지, 내가 기억 할게. 내가 오래 오래 기억할게.
너무 무던하게 살아와서 불안도 모르고 위로도 몰랐던 나에게 이토록 큰 선물을 준 것에.
또 이 슬픔과 위로를 기록할 용기를 준 것에.
수많은 위로를 담은 끝에, 그 끝엔 아주 커다란 감사가 남았다.
평생 내 삶속에서 이 감사를 또 다른 감사로, 위로로, 또 다른 사랑으로 나누며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