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로 스톡홀름에 삽니다 1
스톡홀름대학교 사회학과가 23년도 가을학기를 여는 첫날, 스웨덴을 떠나는 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스웨덴에 온 지 5년 하고도 1주일이 흘렀다. 석사 공부를 마친 후 뭘 할지 아무런 계획이 없이 한국을 떠났던 5년 전의 나는 내가 2023년 8월 21일에 스톡홀름에 있는 작은 원룸형 기숙사 (흔히 말하는 Studio)에서 박사과정 4년 차를 맞이할 것이라고 짐작이나 했을까? 다른 건 몰라도 석사과정을 마친 후 스웨덴에서 계속 공부를 하도록 한 결정적인 계기 중 하나인 코로나 19 사태에 관해서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 코로나 19로 스웨덴에 사실상 발이 묶인 상태에서 박사 과정을 준비하지 않았다면, 내 손에 쥐어진 확실한 선택지가 박사과정 진학 이외에도 있었다면 나의 선택은 달랐을까? 이 질문을 담은 상자를 열어보고 싶을 때마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라며 밀봉했던 나는 어느 날 상자 안을 들여다보다 묵혀 놨던 질문이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닳아 없어진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 물음에는 답이 없다.
스톡홀름에 온 것은 2020년 7월. 엄밀히 말하면 처음 온 것은 아니고, 교환학생을 끝낸 이후 3년 만에 다시 스톡홀름에 돌아왔다. 겨우 6개월 남짓 머무른 곳을 '돌아왔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나에게 이곳은 제2의 고향처럼 느껴졌다. 2020년 봄 스웨덴에서 코로나 19가 유행할 당시 학생들의 천국만 같았던 스웨덴 남부의 대학도시 룬드에서의 내 삶은 완전히 붕괴되었다. 이따금씩 같이 저녁을 먹고 영화를 보던 기숙사라는 공동체는 감염병 위험으로 와해되었고, 모든 대인 관계는 화상회의로 대체되었으며, 많은 친구들은 졸업도 하기 전에, 그나마 남아 있던 사람들은 졸업 후에 내 곁을 떠났다. 졸업식조차 30분 남짓한 Zoom 화상회의로 했던 2020년 6월의 나에게 유일한 희망은 스톡홀름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박사과정이었다. 그래서 도시의 곳곳은 이미 기억 속에서 희미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톡홀름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무척 가볍고 설렜다.
3년이 흘렀고, 내 박사과정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든지 확실히 절반을 넘었다. 박사 과정을 시작한 이후 좋은 일과 안 좋은 일이 모두 있었지만, 내가 졸업 후에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일은 거의 일정하게 한 방향을 가리키로 있다. 스톡홀름을, 그리고 아마도 스웨덴을 떠나는 방향이다. 2021년 여름 영주권 법이 바뀌면서 박사과정을 마친 새로운 박사들에게 쉽게 발급되던 영주권을 받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다. 게다가 현 보수정권은 점차 영주권 제도를 없애고 계속해서 단기 거주 허가증을 발급받거나 스웨덴 시민이 되는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이민자가 선택하는 방향의 정책 개혁을 추구한다. 난 대한민국 시민이고, 내 여권을 포기할 마음이 없다. 사실 대한민국이 대부분의 자국민에게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스웨덴 영주권 제도 변화 훨씬 이전부터 엄연히 존재하던 사실이었지만, 이를 확실히 각인시킨 사건은 분명 21년도 여름의 이 사건이었다.
물론 영주권 신청이 불가능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학계에서 박사후과정 (Postdoc, 이하 포닥)을 밟을 때 바뀐 영주권제도가 요구하는 18개월 이상의, 영주권 심사 기간을 고려하면 2년 이상의 계약서를 써주는 곳은 얼마 없을뿐더러, 이를 스웨덴 대학 (물론 공기업이나 사기업으로의 취직도 가능하겠지만 현재 내 목표는 학계에 좀 더 있어보는 것이기에 이는 우선 선택 사항이 아니다)에서 받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가 공부하는 사회인구학 분야에서 가장 쉽게 포닥 자리를 얻을 수 있는 우리 학과의 재정 상황은 몇 년째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 기적적인 일이 생기지 않는 이상 졸업한 이후 나를 고용해 줄 신규 프로젝트가 생기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아무런 배경 설명 없이 지루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늘어놓았다면 사과드린다. 한 줄로 짧게 요약하자면, 거의 모든 신호가 나보고 졸업 후에 스톡홀름을, 그리고 스웨덴을 떠날 준비를 하라는 쪽으로 향해 있고, 나의 박사 과정 연구원 계약이 끝나는 25년 3월 말 이후 아마도 나는 스톡홀름에 없을 것 같다.
이제 겨우 이 도시가 익숙해진 것 같은데 여기를 나갈 준비를 하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 순간이 닥쳤을 때 우왕좌왕하지 않고 웃으면서 떠나려면 지금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졸업 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더 적극적으로 알아봐야 한다. 밖으로 더 눈을 돌려야 하는 시기에 공교롭게도 지난 6월에 학과장의 결정으로 인해 그동안 관례적으로 박사 과정 학생들에게 지원되었던 해외 학회와 워크숍을 나가기 위한 큰 규모의 펀딩 지원이 끊겼다. 영주권 제도의 변화나 학과 펀딩 사정이 나날이 나빠지는 것은 점진적이고 예측 가능한 위기였기에 천천히 받아들였지만, 학과 재정 상황과 관계없는 학교 차원의 펀딩 우선순위를 학회와 워크숍 참석이 아닌 '자료수집'에 배당하는 바람에 나를 비롯해 사회인구학 과정 박사과정생들이 한 푼도 받지 못한 일은 뒤통수를 세게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고, 공짜 점심처럼 보이는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냉정한 현실을 졸업 전에 일깨워준 찬물 샤워 같은 것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덕분에 나는 이번 가을과 내년 봄 학기에 한 군데의 학회라도 더 가기 위해서 학과 담당자를 적극적으로 설득할 투지를 얻었다. 노동 시장에 나가기 전에 투지부터 키워주는 학과에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매거진의 첫 번째 글에서 잠시 말했듯이 스톡홀름에 들어와서 지난 3년 동안 어떤 생활을 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느꼈는지 꾸준히 적고자 했지만 여러 핑계로 그러지 못했기에, 스톡홀름을 천천히 떠나는 과정은, 그리고 이별을 준비하면서 든 생각,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익숙해진 스톡홀름대학교 박사과정 학생의 생활을 조금씩 정리하며 든 생각은 좀 더 잘 남기고 싶다는 마음에 새로운 매거진을 열었다. 이전까지 내가 썼던 신변잡기적인 글은 때로는 솔직하지 못했고, 때로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을 담지 못해서 재미가 없었지만, 이번만큼은 내 생각에 좀 더 솔직해지고, 솔직한 내 생각을 토대로 조금 더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거의 달린 적이 없는) 댓글이 무서워서, 혹은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의견을 꺼내는 것이 두려워서 머릿속에서 기획만 했거나, 펜을 (키보드를) 잡고 나서도 용두사미로 끝낸 글들이 꽤 있었다. 지금의 나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걱정을 극복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매우 특수한 경우인 내 유학 생활의 이모저모를 좀 더 많은 분들이 구경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스톡홀름대학교 사회학과가 23년도 가을학기를 여는 첫날, 이곳을 떠나는 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커버 이미지: 집에서 10분 정도 걷다 보면 작은 바닷가가 나온다. 바닷가의 왼쪽 산책로를 걷다 보면 요트와 석양이 제법 잘 어우러지는 풍경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