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자의 삶을 추구하련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준다.
노후 대비를 해야 하건만 부모는 앞날이 창창한 자식 걱정이 먼저다.
부모를 모시고 살겠다는 자식이나 제사를 지내야 하는 장남에게 재산이 몰리기도 한다.
하지만 믿었던 자식에게 발등 찍히거나 뒤통수를 맞는 경우가 허다하다.
쓸쓸하게 노후를 맞이하거나 심하면 뉴스에 등장하기도 한다.
시대착오적 유교 사상과 부모의 어긋난 기대 그리고 자식의 과욕이 부른 참극!
극단적인 예를 들긴 했지만 우리네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는 현실이다.
평생을 아름드리나무처럼 그 자리에서 굳건하게 버티며 자식에게 내어주기 바빴던 부모님 세대의 헌신적이었던 나날들~
그 누가 알아주랴!
허나 난!! 있어도 안 주겠지만 물질적으로 줄 게 없다. 다행인 건가?
더울 때 그늘이 되어주거나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하고 풍성한 잎사귀도, 그넷줄을 매달만 한 튼튼한 나뭇가지도 없으며, 아리따운 새들이 놀러 올만큼 매력적이지도 않다.
다만 피는 못 속인다고 했던가?
엄마의 세상을 대하고 바라보는 자세, 역경을 이겨내는 과정과 멘탈을 닮았다.
둘째가 한창 등교 거부하던 어느 날, 참다 참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감정을 분출할 곳이 필요했다.
맘 편히 울 곳이 마땅치 않아 맘껏 꺼이꺼이 울 요량으로 한강을 찾았다.
어라? 평일 출근 시간대인데 한강에 왜 이리 사람이 많은 거야?
한강을 대신할 분출구가 필요했다.
부랴부랴 인터넷 검색하고 저녁 6시 30분이 되기를 기다렸다.
“맨 뒷좌석이어도 좋으니 응원석이랑 가장 가까운 쪽으로 주세요!!”
도착한 곳은 잠실 야구장!!
맥주와 각종 먹을거리도 야무지게 챙겨서 착석!
운이 좋게도 맨 뒷좌석 가장자리다.
응원단장과 치어리더들을 보며 유튜브 벼락치기로 외운 기아 응원가와 안무를 따라 해 본다.
“호! 기아 박찬~호! 호! 기아 박찬~호! 호! 승리를 위~해! 타! 이! 거! 즈! 박! 찬! 호!”
“타이거즈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 워어어어어~”
손 위로 양팔을 ㅅ자로 만들었다가, 양팔을 휘저었다가, 안타나 홈런 치면 제자리 방방 뛰며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고, 박수 치느라 흥분의 도가니였다. 괴성을 지를수록 정신이 맑아진다.
역시 엄마 딸이다.
1남 4녀 우리 집. 막내인 내가 기저귀 찰 때도 부모님께서는 야구장이나 씨름장 등에 자식을 다 데리고 다니셨다.
어느 날 혼자 야구장 가셨다가 날아오는 파울볼에 코뼈를 맞아 구단 전문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OB 야구장 표를 10장 넘게 받으셨다며 해맑게 좋아하셨다던 엄마!
엄마도 삶의 힘듦을 야구장에서 위로받으셨던 건 아닐까?
그래서 지금도 가끔 엄마 아빠와 함께 야구장 데이트를 한다.
그렇~게 좋아하신다.
엄마 손잡고 시장 갈 때면 행여 포장마차 떡볶이를 얻어먹을 수 있을까 오매불망 기다리며 설렜던 하루하루,
특별한 날에만 사주신 요거트와 집 숟가락을 주머니에 챙겨 신난 발걸음으로 엄마와 함께 향했던 공개방송 일요 큰 잔치와 가요톱 10,
돈이 없어 눈으로만 먹고, 상상으로만 옷을 입어보더라도 영등포 백화점 구경 후 엄마 무릎에 앉아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매주 토요일!
그때 그 시절 유일하게 손꼽아 기다리던 날들이었다.
어린 시절 어느 날, 뒤척이다 슬며시 눈을 떴다.
엉겨 붙어 자는 자식들 사이에서 무릎 한쪽을 세우고 구부정하게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입을 틀어막고 울음 삼키던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캄캄한 어둠 속 달빛 아래 희미하게 비친 엄마의 형태가 마치 그림자처럼 보였다.
자식 앞에서는 한 번도 속을 토해내지 않았던 엄마!
자는 척, 못 본 척할 수밖에 없었던 그때가 오랜 시간 잔상으로 남아있다.
지워지는 않는, 잊고 싶지만 기억해야 할 엄마의 한 페이지.
커가면서 알게 모르게 엄마의 그런 모습이 나에게 스며들었다.
힘듦을 말하면 상대에게 짐을 지우는 것 같아 차라리 이야기를 들어줄지언정 내 속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괴로울 때면 그냥 울음을 삼키며 되뇌는 문장이 있다.
‘인간이 살면서 겪는 불행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는데, 나는 말년에 얼마나 행복하려고 이다지도 괴로운가’
아르튀르 랭보의 말이다.
이 문장을 떠올리며 현 상황을 어찌어찌 넘기게 된다.
이뿐이랴!
엄마께서 전화하시거나 만날 때마다 항상 해주시는 말씀 덕분에 흔들리는 멘탈을 부여잡게 된다.
“막내딸, 아무리 힘든 일 있어도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잘 풀려. 그러니까 힘내. 엄마가 막내딸 항상 사랑하는 거 알지?”
엄마의 말씀은 닥친 상황을 포기하거나 놓아버리고 싶을 때면 생각 회로를 긍정적으로 바꿔준다.
간혹 긍정의 탈을 쓴 회피라는 이름으로 핑곗거리를 만들어 가슴속 켜켜이 쌓아둘 때도 있지만...
요리 못하고 집안일보다 내가 배우고 싶은 일이 우선순위인 나,
애들 공부 학원은 한 번도 안 보내면서 하고 싶은 영어 공부에는 즉시 카드 긁는 나,
혼자 애들 데리고 새벽 5시에 나가 만 원대, 이만 원대 전국 방방곡곡 당일 버스 투어 여행하고 밤에 돌아오는 걸 즐기는 나!
한때는 육아에 있어 극도의 방임과 통제 사이에서 갈등했다.
중도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육아에 일관성이 없어 사사건건 남편과 부딪치기 일쑤였다.
전보다 덜해지긴 했지만 지금도 아이들을 물가에 떠밀며 방법을 찾는 중이다.
엄마는 없는 살림에도 자식을 건강하게 키우겠다는 책임감과 더불어 당신만의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소소한 재미를 추구하셨다.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했던 숱한 경험들이 지금의 내가 깊은 뿌리를 내리고 버틸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었다.
오죽하면 남편도 인정한다.
자신보다 멘탈이 강하다며, 당신이 무너지면 우리 가족 무너질 거라며 화딱지 나는 사실만을 말한다.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 있었던 일들을 자주 얘기해 준다.
추억을 먹고 자란 그 힘을 알기에 아이들에게 누누이 강조하는 게 있다.
경! 험!
쓰레기 같은 경험도 해 보고, 똥물도 뒤집어써 보라고...
그래야 흙길을 걸어도 감사함을 안다고...
듣는 아들들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흘려듣지만 잊을만하면 반복하며 이야기해 준다.
어차피 안될 공부 부여잡지 말고 기본만 하라고, 아이템 구상해서 이른 나이에 사업해서 빨리 망해보라고 얼토당토아니한 권유를 하는 엄마다.
수다쟁이 아들이지만 훗날 엄마에게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 왔을 때 자신의 답답함을 해소하는 장치는 있었으면 한다.
해서 중학생 때부터 블로그 쓰기를 하고 있다.
글쓰기의 순기능을 알기에 선뜻 따라와 주는 아들이 고맙기도 하다.
살포시 바라본다.
내가 바라는 엄마상이란...
기대고 싶은 엄마도 아니요, 바람막이 엄마도 아니다.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다가 지칠 때 잠시 앉아 쉬었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그루터기 같은 엄마이고 싶다.
누군가는 나에게 이기적인 엄마라 할지도 모르겠다.
엄마라는 위치에서 보면 그럴 수 있지만 나라는 개인으로 보면 마땅한 처사가 아닌가 싶다.
남은 인생!
이기주의 말고 후회 없는 개인주의자의 삶을 만끽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