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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둥맘 Aug 30. 2020

못난이 복숭아의 달콤한 변신은 무죄

복숭아청 만들기

남편이 2주 전 시댁에 다녀오면서 복숭아, 사과, 거봉 포도를 각각 한 박스씩 바리바리 사 가지고 왔다. 대부분 흠집이 있는 못난이들이었다. 장마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가를 도우려는 깊은 뜻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 왜 이렇게 많이 사 가지고 왔냐고 잔소리를 하고 싶었지만 꾸욱 참았다. 그래 서로 돕고 살아야지! 사과는 아오리 사과라 모양은 우둘투둘하고 흠집이 있었지만 달콤하고 아삭 거리는 것이 맛은 괜찮았다. 그래서 2주가 지난 현재 사과는 바닥을 보이고 있다. 거봉도 긴 장마 때문 인지 보기보다 시긴 했지만 그런대로 먹을만해서 다 처치를 해가는 중이다.


그런데 문제는 복숭아였다. 냉장고에는 사과와 포도를 넣어야 해서 보관할 데가 없어 김치냉장고 한 칸에 넣어놨었다. 처음에는 막내가 한 두 알씩 복숭아를 꺼내 먹더니 그다음부터는 먹는 사람이 없다. 긴장마를 이겨낸 복숭아는 안타깝게도 단 맛이 별로 없었다. 2주가 지나서 김치냉장고를 열어보았더니 몇 개는 얼어 있고 또 몇 개는 물러서 섞기 직전이었다. 그냥 두다가는 복숭아 한 박스를 다 버릴 지경이 되었다.


"복숭아 이거 다 어떡하지?"

"엄마, 복숭아잼 어때?"

"쨈은 너무 힘들어! 날씨도 더운데~~"

"그럼, 복숭아청은 어때?"


바로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다. 생각보다 방법이 간단했다. 일단 복숭아를 베이킹소다와 식초 등을 이용해 깨끗이 씻는다. 씻은 복숭아를 깍둑썰기로 자른다. 복숭아와 같은 양의 설탕을 준비한 후 깍둑 썰기한 복숭아에 한 켜씩 뿌리기만 하면 끝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향긋한 풍미를 위해 레몬즙을 뿌리는 것이었다.


집에 사다 놓은 설탕이 없었다. 태풍 끝자락이라 그런지 폭우가 쏟아지는 데도 불구하고 둘째와 막내를 꼬셔서 마트로 향했다.

"엄마가 먹고 싶은 거 다 사주께. 같이 마트 가자."

"그래."

마트에서 설탕이랑 레몬, 막내의 간식거리를 잔뜩 사 가지고 와서는 바로 복숭아 변신에 도전했다.


복숭아 한 박스를 다 자르다가는 내 팔이 아작이 날 것 같아 식구들에게 순번과 할당량을 정했다.

"자, 빨리 와서 썰어라. 한 사람 당 다섯 개씩이다."

막내가 잽싸게 와서는 다섯 개를 자르고 간다. 다음으로는 첫째가 그리고 소파에 누워있던 남편도 마지못해 와서는 깍둑썰기가 아니라 그냥 사등분을 해놓고는 가버린다. 항상 뺀질거리는 둘째가 마지막이다. 우여곡절 끝에 복숭아 한 박스를 그래도 다 잘랐다. 큰 플라스틱 통에 한 통이 가득 찼다. 복숭아와 설탕을 번갈아가며 한켜씩 부었다. 하루를 상온에서 숙성시켰다.

복숭아청 만들기


다음날 아침에 뚜껑을 열어보니 설탕이 다 녹고 복숭아에서 물이 나와서 국물이 찰랑거렸다. 컵에 복숭아청 세 스푼에 차가운 물을 섞어서 먹어보았더니 맛이 괜찮았다. 숟가락으로 복숭아 건더기를 같이 떠먹었다. 설탕으로 물기가 쪽 빠진 복숭아를 씹었더니 쫄깃거리면서 달콤한 젤리 맛이 났다. 떠먹는 요구르트에 섞어 먹으면 별미일 것 같았다. 인터넷에서는 복숭아청에 탄산수를 부어서 마시면 복숭아 에이드가 된다고 한다. 


못난이 복숭아의 달콤한 변신은 무죄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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